청주 산성 옛길 아끼고 가꾸면 가능성 무한
옹달샘 복원, 출렁다리 설치 좋은 예

안동 퇴계오솔길과 대관령 옛길, 그리고 일본 도카이 자연보도는 그저 이름 없는 작은 길에 역사적 의미를 결부시킨 결과 새로운 옛길로 다시 태어났다. 이 길을 찾는 마니아층도 생겨 이제는 이로 인한 관광수입이 지역 경제 활성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한다. 이렇듯 자연을 벗 삼아 걸으며 역사를 느끼는 답사산행이 새로운 경향으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청주시도 이와 같은 차원의 옛길 보존사업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산성옛길
오랜 역사의 발자취가 스며있는 산성옛길은 조선시대부터 미원면 낭성리에서 청주로 오가던 산길로서 당시 청주읍으로 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었다. 군사적 목적으로도 쓰였지만 나무꾼들과 주로 장에 내다팔 물건들을 소달구지에 실고 가는 장꾼들이 이 길을 넘었다.

청주에서 낭성으로 넘어가자면 현재의 풍주사 코스와 이정골 길 등으로 나누어졌다가 결국에는 상봉재 (것대산)에서 만나 고개를 넘어야 한다.

▲ 조선시대 만든 병마절도사 송덕비는 옛길과 같이하고 있다.
상봉재 옛길은 상당산성과 낭성지역을 청주읍성과 연결하던 우리고장의 중심 옛길로 상봉재 옹달샘에서 오른쪽 능선을 따라 암각선정비 앞을 지나 중봉마을로 가는 길이다. 이 길이 당시 가장 많이 이용했던 옛길인데 3km 남짓의 호젓한 오솔길과 험하지 않은 산길에서 짚신 신고 고개를 넘어가던 옛 조상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고 풍파에 깎인 병마절도사의 송덕비는 당시 이 곳이 군사적 목적의 중요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현재 이 길의 중심을 연결하는 터널공사가 한창이다. 공사가 진행 중인 이정골 마을에서 만난 김정헌(75세)할아버지를 통해 옛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예전에 낭성에서 나무꾼들이 하도 많이 나무를 잘라 한때 벌거숭이산이 됐다. 이게 우리 산인데 아버지가 나무해가는 사람들 내쫓는 모습도 보았다. 소 장사도 많아 이들을 노리는 산적들이 들끓어 이곳을 도둑골이란 이름으로도 불렀다” 고 말했다.

해질 무렵 이정골에서 서리 내리기전 소에게 먹일 호박을 지게에 가득 싣고 가는 촌로의 저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지만 뚝심으로 걸어가는 그 모습에서 예전 우리 조상들이 걸었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그들도 저 고단한 길을 저렇게 걸었을 것이다.

김 할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사연이 많고 역사가 서려 있는 것이 바로 옛 길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이것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알고 다양한 복원 사업을 벌여 회복시켜 놓았으나 우리의 경우 너무도 오랫동안 방치해 놓아서 복원을 하자면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산성옛길은 그리 힘든 길은 아니다. 한번쯤 걸어봐야 할 옛길이자 최상의 트레킹코스다. 여느 등산로처럼 능선에 다다르기 위해 숨 가쁘게 올라가는 길은 아니다. 옛 선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비록 삶이 힘들지라도 산길에서 호젓한 여유를 찾으며 그들만의 스트레스를 해소했던 삶의 방식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지금 청주는 개발의 과도기에 서있다. 구도심 주택은 차츰 없어지고 시야를 가린 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섰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옛 청주읍성 객사 터도 새로 건립된 영화관에 묻혔다. 청주의 오랜 역사와 숨결을 자랑할 만한 흔적들이 그 모습을 감추는 위기의 순간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조상들이 늘 걸어오며 이 땅의 소중함을 직접 체험했던 옛길 복원이 왜 중요한가를 이쯤에서 제기할 수 있다.

현재 청주시의 경우 산성옛길과 관련한 실질적인 담당부서가 없는 실정이다. 대전 둘레 산길 잇기 운동본부의 경우만 보더라도 147억원의 시 예산을 들여 120Km 둘레에 걸쳐 등산로를 정비하고 걷기 편한 숲길로 조성한 것과는 큰 대조를 이루고 있다.

▲ 상당산성과 것대산을 연결한 출렁다리.
옛길을 따라 걸으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여유를 만끽하고 옛사람들의 자취를 찾아 볼 수 있다면 비록 현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과거와 이어지는 후손으로서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성급한 개발의 논리로 과거와 현재를 단절시키기보다 유구하게 지속되는 역사와 문화를 오늘날에 되살려 자연이 숨쉬는 도심으로 복원해야 할 때다.

답사산행이란 신조어를 만들고 있는 송태호씨(사진 왼쪽)는 청주삼백리 대장으로 3년 전부터 매주 일반인으로 구성된 답사팀과 함께 청주지역의 산줄기와 물줄기를 돌며 역사와 문화를 알리기에 힘쓰고 있다 그러기에 산성옛길에 대한 남다른 애착심도 가지고 있다, 그도 예전에는 산 정복을 위해 해외원정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지금 옛길의 소중함을 알리고자 산길, 들길을 찾아다니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시청을 수없이 드나들며 지역 산길의 복원을 위해 노력한 결과 어렵게 상봉재 옹달샘을 복원, 정비했고 것대산과 상당산성을 연결하는 출렁다리도 만들었다. 그는 지금도 산성옛길을 돌며 이정표를 달고 옛 선인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이곳저곳을 다니고 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천년고도 청주의 이름에 걸맞은 살아 숨쉬는 무언가는 떠오르지 않는다.”며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방향, 곧 지금의 모습이면서 동시에 옛 모습과 어울리는 우리지역만의 답사코스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 사진·글=육성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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