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일부 지자체 옛길 복원에 열성
청주, 상당산성길 개발 삽날에 ‘신음’

디지털시대에 ‘빨리 빨리’를 외쳐온 우리나라의 독특한 문화는 초고속 경제발전의 한 원동력이 됐다. 그러나 숨 가쁘게 앞만 보고 달려온 현대의 우리는 그 옛날 허리 뒷짐 지고 큰기침을 하든, 처자식 먹여 살리기 위해 장에 내다 팔 보따리를 메고 몇 날 며칠을 유랑하든 여유롭게 자연을 벗 삼아 걸었던 조상들의 발걸음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전 국민이 언제 어디서나 생태적 배경을 가진 문화·역사적 자원을 보다 쉽게 찾고, 즐기고, 배울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국가와 지자체가 국토 생태 탐방로를 조성, 관리하기에 나섰다. 환경부는 2006년부터 ‘자연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길’을 만드는 데 착수했다. 경관이 아름답고 생태자원이 우수한 자연길을 조성하여 자연탐방 문화를 본격적으로 확산시켜 전국단위 국토 생태 탐방로 구축 기본 계획을 수립했는데, 그 중 경북 안동시 ‘퇴계오솔길’을 시범사업 대상으로 선정 했다.

▲ 낙동강과 청량산이 어우러진 ‘퇴계 오솔길’은 4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들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복원돼 있다.
‘퇴계 오솔길’ 가는 길
괴산에서 대구 방면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점안 방향으로 나가면 안동으로 가는 35번국도가 이어진다. 안동 도심에 들어서면 ‘도산서원’이란 이정표가 먼저 눈에 띤다. 퇴계 오솔길에 앞서 이곳을 먼저 둘러보는 것이 당대 최고의 성리학자로서의 이황의 면모와 그의 사상을 앞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위치하고 있는 ‘도산서원’은 퇴계가 유생들을 교육하며 자신의 학문의 역량을 넓히던 곳으로 그의 사후 제자들과 유림에서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다. 도산서원의 입구에서부터 안동호를 오른쪽으로 두고 감상하면서 울창한 소나무 숲에 에워싸인 이 곳에서는 우리 고유의 멋과 서정을 듬뿍 느낄 수 있다.

▲ 산성터널공사는 우연인지 옛길과 거의 같은 길로 뚫어지고 있다.
퇴계 녀던길(옛길)
‘도산서원’을 나와 청량산 방향으로 5km 정도 가면 ‘녀던길, 농암종택’이라는 작은 글씨의 이정표가 보인다. 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작은 콘크리트길 옆으로 들어서면 낙동강과 청량산이 어우러진 수려한 자연경관이 한 눈에 펼쳐진다. 조금 더 가다 보면 당시 퇴계와 함께 이 길을 거닐었던 농암 이현보의 종택이 나오는데 이곳부터 본격적으로 ‘퇴계 오솔길’이 시작된다.

퇴계의 선배인 이현보와 함께 말년까지 유유자적하며 자연을 노래하고 시조를 읊었던 이 길은 4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들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복원돼 있다. 고즈넉한 오솔길은 산과 강을 배경으로 월명담, 학소대, 벽암까지 빼어난 절경에 저절로 걷고 싶은 생각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 곳이 왜 조선시대 문인들의 기행문 배경이 된 유서 깊은 곳인가를 절로 짐작할 수 있다.

▲ 도산서원
퇴계가 당시에 주창해 오늘날까지 그의 사상으로 추앙받는 이기이원론적 주리론은 ‘이(理당)로서 기(氣대)를 다스려 인간의 선한 마음을 간직하여 바르게 살아가고 모든 사물을 순리로 운영해 나가야 한다’는 것인데 이렇듯 자연의 풍취가 좋은 절경에서 소요하며 자연에 거스르지 않는 삶을 추구했던 그의 모습이 길에서 묻어나오는 듯 하다. 또 그의 호가 퇴계(退溪)라는 것, 곧 항상 뒤로 물러서 계곡으로, 자연으로 귀환하고 싶은 사람이었다는 점에서 이황의 자연애를 이 길을 걸으며 한층 더 느낄 수 있다.

중간 즈음에서 청량산을 타고 이곳에 왔다는 일행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서울에서 온 사람들로 주말마다 여행을 다닌다고 하는데 이성영(49)씨와 그의 가족들은 “이 곳을 걸으니 길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면서 퇴계 이황처럼 시상이 떠오르고 길의 주변 경치도 참 좋다”고 말했다. 계속된 오솔길은 3km를 지나 안동시 단천리 이육사 문학관을 못 미쳐 끝난다.

▲ 청주~낭성간을 잇는 터널공사로 인해 잘려나간 나무와 발파소음이 상당산성 옛길을 찾은 탐방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한편 문화재청은 얼마 전 전국의 옛길을 대상으로 과거길, 옛 상업길 등 전통이 남아 있는 옛길을 대상으로 문헌조사 및 관계전문가, 지방자치단체 등의 추천을 받아 과거시험보러 가던 문경새재(경북)를 비롯해 토끼비리(경북 문경), 죽령옛길(경북 영주), 구룡령 옛길(강원도 양양)을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으로 지정해 그 정취와 역사적 가치를 되찾을 수 있도록 복원에 힘쓸 예정이다.

상당산성 옛길은 어떠한가
안동시나 문경시 등 옛길 보전에 적극적인 지자체가 앞장서고 문화재청 등 중앙정부가 적극적인 자세를 보인 반면 청주의 옛길은 그렇지 못하다. 미원면 낭성에서 청주로 오가던 상당산성 옛길은 산허리를 관통하고 산맥을 끊는 터널 공사가 한창이다.

▲ 산악자전거는 등산로 훼손에 또 다른 주범이 되고 있다.
청주 용암동 동부우회도로에서 청원군 낭성을 잇는 도로인데 벌써 3년 넘게 공사를 하고 있다. 우연인지 이 도로는 옛길과 거의 같은 길로 뚫어지고 있다. 가장 가까운 지름길을 택한 옛 조상들의 지혜를 지금 우리가 자동차길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옛길 곳곳은 아직도 우리 선인들의 발자국이 남아있다. 터널을 뚫는 발파소리와 벌목작업으로 길이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는 와중에도 작고 아담한 2000년 전 그 옛길은 아직도 탐방객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최근 이 길은 작은 폭에 고른 지평면을 가지고 있어 집단으로 몰려다니는 MTB(산악자전거)로 인해 땅이 파헤쳐져 또 다른 훼손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청주삼백리’를 이끌고 있는 송태호 대장은 “터널공사가 이미 진행된 상황이지만 옛길의 흔적은 연결시켜야한다”고 주장한다.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틈틈이 표식기와 이정표를 만들고 끊어진 길은 우회도로를 내어 공사를 마치는 동시에 옛길을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2000년을 이어온 옛길에 있는 상봉재 옹달샘과 성황당은 지역의 문화 역사적 가치가 높은 것인 만큼 보전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의 산줄기는 넓게 활용해야 한다며 지나치게 집중적인 산행코스가 삼림을 훼손할 수 있음을 지적했다.

▲ 옛길 곳곳은 아직도 선인들의 발자국이 남아있다.
논밭 갈아 김매고 베잠방이 대님 쳐 신들메,
‘낫 갈아 허리에 차고 도끼를 벼려 들러 메고, 울창한 산 속에 들어가서, 삭정이 마른 섶을 베거니 자르거니 지게에 짊어서 지팡이 받쳐 놓고, 샘을 찾아가서 점심도 다 비우고 곰방대를 톡톡 털어 잎담배 피워 물고 콧노래 졸다가, 석양이 재 넘어갈 때 어깨를 추스르며, 긴 소리 짧은 소리 하며 어이 갈꼬 하더라’

작자미상의 위 시조에는 우리 조상들의 여유로운 삶의 자세가 드러나 있다. 산에 일하러 간 한 농군이 식사도 하고 담배도 피워가며 여유를 즐기다 결국은 졸기까지 한다. 살기가 결코 편하지 않은 상황과 처지에 있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데도 해가 질 무렵 노래까지 부르며 산길을 내려온다는 설정은 우리 민족의 여유로운 삶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는 산행 문화에 있어서도 산을 즐기는 공간으로, 함께 호흡하며 느끼는 공간으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성을 제기해준다. / 사진·글 _ 육성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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