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는 학교 다닐 때 책을 아주 싫어 했다. 그가 대통령이 되자마자 미국의 양심세력들은 이점을 특히 우려했다. 카우보이 복장을 즐겼고, 한 때 프로야구 구단주였던 부시는 토론과 담론을 꺼리는 것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만약 그가 철학을 논하고 문학을 얘기한다면 아마도 보는 이에게 엄청난 부담감을 안길 것이다.  말에 있어 앞뒤가 딱딱 끊어지고 확신에 찬 상기된 얼굴이 그에겐 오히려 더 자연스럽다. 다분히 호전적인 그의 언사는 약소국들에겐 섬뜩함마저 준다. 보편적으로 우리나라 역술가들도 부시의 인상에 대해 강성 이미지가 뚜렷하다는 해석을 내렸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텍사스 주지사 시절부터 부시의 이런 캐릭터에 환호하고 박수를 보낸다. 때만 되면 '영웅주의'를 부추겨 자신들의 정체성과 우월감을 확인하려는 미국인들의 저급한(?) 속성에 딱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고작 200년 역사의 미국이 세계의 경찰국가로 행세하게 된 저력은 바로 이런 데서 나오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우리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에서 이 점을 똑똑히 확인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외진 곳에 움막을 지어 공부해 고시에 합격한 노무현대통령도 젊은 시절엔 책과 별로 인연이 없었다. 이는 본인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노대통령이 사회과학쪽의 서적을 본격 탐독하게 된 것은 부림사건의 변호가 결정적 계기가 됐다. 부산지역의 대표적 시국사건을 변호하면서 노대통령은 우리나라의 구조적 문제에 눈을 뜨게 됐고, 이 때부터 투쟁과 고난으로 점철된 정치역정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잘 나가는 경제전문 변호사로 가끔은 수영만에서 요트를 즐긴 부러울게 없는 처지였지만 본인의 말대로 이 사건 이후 편안한 삶을 포기했다.

 노무현대통령 역시 부시못지 않게 명쾌한 처신을 선호한다. 옳고 그름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취해 왔다. 망국적인 지역구도를 깨겠다며 실패를 감수하고 연거푸 부산출마를 강행한 것이나, 5공 청문회에서 말을 빙빙 돌리는 증인에 대해 자신의 의원명패를 내팽개친 것이나, 검사와의 대화시 검찰상층부를 불신한다고 공개적으로 말 한 것들이 이런 노대통령의 성향을 잘 대변한다. 노대통령의 이런 용기와 정치적 원칙을 중시하는 신념이 결국 유권자들을 움직여 선거혁명을 이뤄낸 것이다.
 지난 대선을 전후로 쏟아진 노대통령과 관련된 책을 보면 노대통령은 학창, 젊었을 때부터 확실하게 붙고 명쾌하게 결과를 받아들이는 소위 '맞 장' 승부를 좋아했던 것같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사회역학관계의 복잡한 변수엔 극도로 거부감을 갖는다고도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성향을 정치행위에 그대로 적용할 경우 단기간 효과는 극대화할 수 있지만 자칫 자승자박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그런 우려가 미국 방문후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노무현대통령의 방미 외교에 대해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 급기야 18일 광주에선 자신의 부동의 지지층이었던 한총련으로부터도 망신을 당했다.  미국에서 행한 노대통령의 연설이나 언행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분명 화딱지나는 사례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국회의원 혹은 대통령후보 시절에 얘기한 내용과 미국에서의 발언이 서로 다른 점을 우려하는 것이 아니다. 일개 정치인일 때와 한 나라의 통치자가 된 지금은 분명 다르다. 그래서 노대통령 지지자들은 실리외교를 택했다고 옹호한다. 그러나 정작 걱정스러운 것은 노대통령의 문제인식이다. "53년전 미국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있을 것이다"  "나는 북한정권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 한 것이나 '추가적 조치'에 대해 전쟁불가 입장을 분명히 밝히지 않은 것은 분명 우려의 수준을 넘어섰다. 미국인들과 국내 수구세력들이  듣기엔 호쾌할지 모르지만 이런 말 한마디가 앞으로 한미,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미국의 한국전쟁 참전을 치켜세워 그들의 기분을 살려주는 것도 중요했지만 그 이전에 한국측의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했어야 한다.

  두 여중생의 죽음으로 촉발된 반미정서를 전달하라는게 아니다. 미국의 도움으로 비록 정치범 수용소에 갇히지는 않았지만 미국 때문에 우리가 겪고 있는 모순도 함께 암시했어야 했다. 때문에 앞의 말은 이렇게 입에 올려야 옳았다. "6.25때 보여 준 미국의 맹방의식에 한국대통령으로서 감사드린다. 이러한 관계가 더욱 확고해질 수 있도록 양국은 좀 더 상호주의에 입각한 노력을 기울어야 할 것이다."   북한 정권에 대한 발언도 신중치 못했다. "아직도 상호이해에 거리감이 있지만 나는 북한정권을 신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랬으면 어땠을까.  이러한 것이 바로 외교상의 메시다. 하찮은 것같지만 수사(修辭) 한 마디가 국익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다. 노대통령의 발언에 미국인들은 쾌재를 부르겠지만 한국은 그동안 막대한 돈을 들여가며 어렵게 쌓아온 북한과의 신뢰를 한꺼번에 잃을지도 모른다. 기껏 북한과 대화를 하자고 해 놓고 공개적으로, 그것도 항상 눈을 부라리는 호전국가 미국에서 상대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염장을 지르면 북한보고 어쩌란 말이냐.  한미정상회담 이후에도 북한이 남북경제회담을 받아들였다고 해서 안위할 일이 아니다. 비록 미미하지만 신뢰의 끈을 유지하는 것과 아예 불신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번에 노대통령은 북한에겐 확실한(?) 메시지를 전달한 반면 미국에 대해선 그렇지가 못했다. 국민들을 이를 황당해 하는 것이다.

  노무현대통령의 말대로라면 앞으로 한국은 북한에 퍼줄대로 퍼주고도 오히려 싸대기나 뒷통수를 맞는 참담한(?) 꼴은 겪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DJ의 햇볕정책이 비록 시행착오를 겪긴 했지만 분명히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과정이고 전진이자 역사임을 인식해야 한다. 지난 90년 '남북 기본 합의서'를 이끌어 낸 노태우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한 자리에서 자꾸 어깃장을 놓는 북한에 대해 "북한이 동독같기만하면 한반도 통일이 빨라질 수 있을텐데.."라고 말하자 독일 재상 콜은 대뜸 "북한이 동독같기만을 바랄게 아니라 남한이 서독같이 되려고 노력하시오"라고 대꾸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DJ의 햇볕정책은 바로 이런 시각에 기초한 남한의 변화였던 것이다. 그러나 햇볕정책이 자꾸 퇴색하는 상황에서 노대통령의 미국 발언은 그 동안의 이런 노력을 무색하게 하는 것같아 안타깝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계속 딴지를 건다고 해서 아예 불신해 버린다면 과거 군사정권시절의 냉전적 발상과 하나도 다를게 없다.

  이번에 노대통령이 확실하게 신뢰하고(?) 돌아 온 미국정부는 신군부의 광주 쿠데타를 방관하고 나중에 추인까지 한 세력들이다. 지난 18일 노대통령은 광주 망월동을 참배했다. 6.25 때 우리를 도운 우방이지만 남북분단의 궁극적 책임자 역시 미국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세계평화는 철저하게 미국 위주이고 이런 잣대에서 벗어나면 가차없이 응징한다.  어느 상황에서도 미국이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한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만약 서독과 동독이 스스로 문제를 풀지 못하고 미국이 개입했다면 독일통일은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노무현대통령은 이점을 잊어서는 절대 안 된다. 이라크 파병 때 강변했던 것처럼 노대통령의 친미 발언이 차라리 '전략적'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면 일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의 발언 한마디에 온나라가 휘청거리는 후진국의 비애라고 쉽게 치부할 수도 있다.

 나이가 똑같고 성격도 비슷한 노무현-부시의 의기투합을 우리는 일단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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