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40년 전 지금의 우리와 같은 상황
통제와 복원 통해 옛모습 찾아

능선종주 산행은 이제 과도한 등산객의 증가로 본래의 의미를 잃어가기 시작했고 우리의 생태의 공간을 침범하고 있다. 이에 도심의 산은 파헤칠 때로 파헤쳐져 신음하고 있다. 문화를 느끼고 생태를 체험하며 옛길과 산길을 이어 만든 일본 시즈오카현의 자연보도와 도심의 산에서 이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일본의 등산문화 시작을 살펴보면 고도 성장기의 막바지였던 70년대 중반 영국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부터다. 같은 섬나라였던 영국 산악인들이 일본 전역의 산을 돌며 등산문화를 전파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등산문화는 초창기 지위가 높은 사람들로 시작돼 전 국민적인 붐이 일기 시작했다. 국토의 70%가 산인 일본은 후지산을 비롯해 3000m 급산만 40여개에 이르고 도심 주변 어디를 가나 300~500m 급의 얕은 산들이 즐비해 주변 환경 자체가 등산 열풍에 한 몫을 더한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은 등산문화가 먼저 발달할 수 있었다.

▲ 울창한 삼나무 숲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니혼다이라는 도카이자연보도의 대표적 코스다
중부공항에서 기차를 타고 나고야를 지나 동쪽으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시즈오카현, 도착지에 다다르자 창밖은 녹차와 감귤의 주산지답게 농부들의 분주한 모습이 이어졌다. 도심중심인구 70만의 도심을 감싸고 있는 산은 흡사 청주시 전경을 보는 듯 했다. 멀리 보이는 후지산은 날씨가 화창할 때면 손에 닿을 듯 가깝게 보이는데 시즈오카는 산과 바다, 강과 호수 등 빼어난 자연환경으로 북부 산악지대를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온난한 해양성기후를 나타내고 있는 도시다.

현민의 숲
먼저 찾은 곳은 북부 산간지역에 있는 현민의 숲(1658m)이다. 시즈오카에서 한 시간 가량 차를 타고 가면 보이는 이곳은 자치단체 탄생100년을 기념하여 정비된 야외 레크레이션 시설로 시즈오카 북부의 이가와, 우메가시마 지구에 걸친 능선에 정비된 약 1,000ha의 지역이다. 산악 박물관과 자연 휴양림, 캠프장 등을 갖춰 도심자연공원으로 지정된 곳으로 일본 남 알프스의 웅장한 운해도 감상할 수 있다.

현민의 숲 입구에 있는 산악 박물관에는 숲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입체적인 모형도와 주변에 서식하고 있는 동물들의 박제, 100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나이테, 댐 공사로 수몰된 마을의 옛 사진 등이 상세히 적힌 설명과 함께 전시돼 일본인 특유의 섬세함을 엿볼 수 있다.

이어 오르는 산행, 높이 솟은 삼나무와 노송나무가 어우러진 울창한 숲 사이로 간간히 비치는  아침햇살이 산행의 매력을 충분히 자극했다. 완만한 산길 아래 30년 전 이카외 댐 수몰민들이 이틀에 걸쳐 시즈오카현으로 가던 옛 길이 펼쳐져 있다. 훼손된 주변 나무를 이용해 능선 아래 S자 형태로 옛길을 복원하였고 그 길은 다리 근육에 큰 부담 없이 자연을 관찰할 수 있어 어린아이에서 노년층까지 많이 애용한다.

이곳도 이미 1970년 이후부터 몰려드는 등산객으로 산림이 황폐해졌고 심각성을 절실히 느낀 자치단체와 산악인들을 중심으로 등산로 통제와 복원 작업이 이루어져 지금과 같이 산림을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이렇게 완만한 길은 계속되었고 정상 능선길에 오르자 오래돼 보이는 나무계단길이 보였다. 일직선으로 능선 꼭지점부터 시작된 나무계단은 간격과 폭이 좁은 상태로 600m 정도 계속됐다. 당시 최후의 방법으로 대책 없이 이렇게 계단을 만들어 놓은 것은 마치 우리의 현실을 보는 듯하다.

계곡으로 내려갔다. 이 길은 동물들이 다니던 곳으로 사슴과 야생동물들이 쉬었다 간 흔적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나무와 물이끼로 원시림을 방불케 했다. 그도 그랬을 것이 30년 만에 처음 외부인에게 개방되는 곳이기도 했다. 시즈오카시는 30년 전 최후의 방법으로 이 등산로를 폐쇄 통제했고 지금은 자연의 숨소리가 살아있는 숲으로 바꾸어 놓았다.

현민의 숲을 담당하는 시즈오카시 엔도준 주임을 만났다. 사유지가 있지만 시가 매입을 했고 매입시 어려운 점이 있었다고 한다. 일본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자연공원으로 묶여 있으면 재산권 행사를 못하는데 동네 유지들과 민간인 협회를  설득해 가까스로 이 땅들을 매입했다고 한다. 그만큼 자연 탐방로 조성에 대한 정부 차원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 오늘날의 결과물로 나타는 것이라 하겠다.

도카이 자연보도/ 니혼다이라 코스
일본은 관동과 관서를 잇는 자연탐방과 문화탐방 장거리 자연보도가 있다. 도쿄도에서 시즈오카를 지나 오사카까지 총11개의 광역시를 연결하는 일종의 에도시대 옛길로 총연장 1697km에 이른다. 1970년대 일본 정부가 자연을 찾고 즐기는 국민적 수요가 계속 이어진다는 판단하에 장거리 자연보도를 조성해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 중 일본 관광지 100선 제1위에 선정될 정도로 경관이 뛰어난 니혼다이라(308m)코스는 후지산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에도시대 왕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모신 신사를 케이블카로 잇는 구소산에서는 460년전 일본 에도시대 건축 문화의 집대성 토쇼궁을 만날 수 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유언으로 2대 장군 히데카다가 구노산 산정에 조성한 화려한 신사로 막부시대의 역사유적에 동해의 자연경관이 어우러진 자연보도다. 개별화된 역사유적과 문화재가 지역의 환경에 맞게 하나의 코스가 된 것이다.

니혼다이라 코스는 우리의 우암산 정도 되는 산으로 아래 작은 마을부터 시작된다. 왼쪽으로는 작은 하천이 이어진다. 마을 집들은 100년이 넘는 집에서 현대식으로 지은 가옥들까지 양쪽으로 있고 대부분 녹차와 감귤을 재배한다.

농사일로 바쁜 농촌의 풍경과 산 입구 까지 종종 병풍처럼 펼쳐진 녹차밭도 감상하면서 이 곳의 산행이 등산로 입구에 주차를 시킨 뒤 바로 산을 오르고자 하는 우리네 문화와 다른 것을 느낄 수 있다. 산에 오르자 마침 한 동네에서 왔다는 주부들이 잠시 목을 축이고 있었다.

이케가미(67)씨는 매주 이들과 함께 산에 오르며 20대부터 등산을 했고 일본의100대 명산은 다 가 보았다고 한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먼 산을 못 가고 이곳만을 매주 두 세 번 정도 오르는데 허리가 아파 치료를 받으면서까지 등산에 열성을 보인다고 한다. 이들은 천천히 나무와 경치를 보며 산행한다. 

이렇듯 조그만 동네 어귀를 지나 역사적 산물을 느끼고 자연과 공존하는 탐방문화는 우리도 지향해야 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이제는 자연과 하나 되어 자연을 보호하고 미래를 생각하는 산악문화를 가꾸어야 할 때이다.

산악인 김웅식 씨는 등산문화에 대해 “도전정신, 극복, 자신과의 싸움, 처세, 리더십을 배우려는 산행이 아니라 자연을 알면서 자연과 벗 삼아 자연으로 돌아가는 자세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또 “산악이념 즉 알파니즘을 추구하며 자기선상과 함께 보람된 삶을 영위해 나가는데 그 목적을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일본시즈오카  사진·글_육성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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