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예술촌을 가다] “광대들이 자기 공간을 갖는 것은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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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예술촌을 가다] “광대들이 자기 공간을 갖는 것은 꿈”
  • 박소영 기자
  • 승인 2007.10.08 11: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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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의 폐교와 빈 건물 찾아 창작 공간 문 연 예술가들
마동창작마을, 자계예술촌, 예술공장 두레의 ‘공동체 이야기’
1 예술촌 지도 그리기 
2 新프로그램 등장과 지형변화 
3 브랜드가 된 예술촌 탐방 
4 문화 명소화 전략


예술가들이 공간을 탐했다. 아마도 함께 먹고, 자고, 마음껏 창작할 수 있는 자기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예술가들의 ‘오래된 꿈’이었을 것이다. 사실 예술가들은 그동안 자본의 논리에 밀려 점차 도심에서 시골로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버려진 폐교나 빈 건물에 예술의 생기를 불어넣었다.

마을 사람들과 자연이 그들의 친구가 됐고, ‘창작’을 매개로 무엇보다 예술 동지(同志)들과 함께 ‘맛있는 예술밥’을 먹었다. 본지는 일상이 예술이고, 예술이 일상이 된 충북의 예술촌을 따라가본다. 충북 예술촌의 지도 그리기및 신 개념의 예술촌과 지역 연계 프로그램 소개, 명소화 전략 등 앞으로 4회에 걸쳐 연재한다. / 편집자

12년차 고참 마동창작마을
한 때 폐교나 빈 건물을 개조해 예술 창작 공간으로 꾸미는 것이 유행이었다. 2000년 전후에 만들어진 예술촌들의 주소는 그래서 대부분 ‘폐교’다. 충북의 예술촌들도 마찬가지다.

청원군 문의면 마동리에 위치한 마동창작마을은 이른바 ‘폐교 예술촌’의 성공모델로 꼽힌다. 1995년 폐교였던 문의초등학교 회서분교를 개조해 전업 작가들의 창작 공간으로 꾸몄다. 이홍원 화백(53)은 “나를 포함해 당시 4명의 지인들이 1억원 기금을 모아 분교를 매입했다”고 말했다. 12년 전 마동의 처음 멤버는 이홍원, 박병욱, 고승규, 강희준, 이종국, 민병길씨. 마동을 거쳐 간 사람들은 이 화백의 기억에만 열댓명이라고. “적게는 1년부터 5년, 7~8년 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창작활동을 한 작가들이 있다.”

터줏대감인 이 화백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뜻밖에도 ‘친목도모’라고 답했다. 이어 “첫째 예술촌은 철저한 작가 작업 위주 공간이어야 한다. 마을 사람들과는 예술적 교류보다는 일상적인 교류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이 곳에는 이 화백을 포함해 나무 조각가 손영익(54)·돌조각가 송일상(41)·모필장 유필무(47)씨 등이 생활하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마동창작마을은 작가들의 작업실과 전시실, 작품보관실, 숙소가 마련돼 있다.

이곳은 청주에서 차로 한 시간, 청원 문의면에서도 20분이 걸리며, 인터넷과 핸드폰이 터지지 않는 오지다.
지난 6월엔 12년 만에 처음 오픈스튜디오를 통해 작업공간을 개방했다. 모필장 유필무씨는 “사실 평일에는 운동장을 개방해 동네 주민 주차장으로 애용 받고 있다”며 귀띔했다.
(문의 221-0793 )

▲ 문의면 마동리 마동창작마을에는 에는 터줏대감인 이 화백을 포함해 나무 조각가 손영익(54)·돌조각가 송일상(41)·전통 붓 명장 유필무(47)씨 등이 생활하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오지에 터 잡은 자계 예술촌

폐교에 터를 잡은 단체가 또 있다. 영동군 용화면 자계리 고즈넉한 마을에 지난 2002년 극단 터의 박창호 대표(44)와 단원들이 ‘자계 예술촌’의 문을 열었다. 이 곳은 70여가구, 180여명이 아담한 마을로, 91년 폐교된 학교의 문을 예술가들이 열어젖혔던 셈이다.

박창호 대표는 “한 때는 200여명의 학생들이 뛰놀던 교정이였지만, 2001년 당시의 모습은 잡풀들만 무성하고 제대로 남은 창문 하나 없었다. 말그대로 폐허 상태여서 당장 시급했던 것은 공연보다 공간을 가꾸는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자계예술촌은 2004년 문화관광부의 생활친화적문화공간 조성사업기금을 지원 받아 기존의 열악했던 공간을 개선, 공연예술창작촌으로서의 기본 시설을 갖추게 된다. 실내소극장(150석)과 야외 공연장(300석), 단원 숙소와 휴식공간및 전시실(20평)등이 있다. 단원들은 박대표를 포함해 모두 5명이다.

이렇게 마련된 공연장에서는 연극, 탈춤, 마임, 풍물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매달 마지막 토요일 밤에 ‘그믐밤의 들놀음’ 상설무대를 열어 지역민과 소통하고 있다. 정기 공연뿐만 아니라 각종 교육과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따라서 마을 주민들 사이에 박창호 대표는 ‘빛나리 아저씨’로 통하며, 인기가 좋다고 전했다. http://www.jagyeart.net/ (문의 743 -0004)

‘예술공장’ 건설한 두레의 뚝심
빈 건물에 들어가 예술인 집짓기에 성공한 단체도 있다. 바로 예술공장 두레다. 이들은 청원군 북이면 광암리 빈 공장 건물터에 광대들의 공동체를 이뤄냈다.

박찬희 예술공장 두레 대표(38)는 “지금은 대학로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유순웅 선배가 2000년 빚을 내서 당시 경매에 나왔던 욕조공장을 매입했다. 이곳에 처음 이사 왔을 때는 조립식 건물만 덩그라니 있었다”고 설명했다. 예술공장 두레도 2005년 문화관광부의 생활친화적문화공간 조성사업의 지원 받아 외관과 더불어 연습실, 공연장(700석)등 시설을 갖추게 됐다.

한 때는 거주지가 마땅치 않던 예술가들 서너명이 한방에서 생활할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 2005년 예술공장 두레는 또 한 번 일을 냈다. 예술공장 두레만의 전용사택을 마련한 것. 비록 한방이 10평 남짓의 원룸 건물이지만, 예술공장 두레의 소중한 보금자리다.

박찬희 대표는 “우암동에서 ‘두레마을’ 푯말을 내걸고 작은 소공연장을 운영했다. 도심과 가까이 있을 때는 연습조차 맘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 때 ‘아해별곡’이란 작품을 만들었는데 반응이 좋아 전국에서 공연요청이 들어왔다. 그 수익금으로 지금 건물의 전세금을 마련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현재 11명의 단원들이 상근하고 있고, 올 가을에 새로운 단원이 또 들어온다고 한다.

예술공장에는 두레 외에도 풍물굿패 씨알누리와 작곡가 김강곤씨가 함께 한 공간을 같이 쓰고 있다. 또한 예술공장 두레는 지역민 연계프로그램으로 일년에 한번 농촌우수마당극제와 민족극 한마당을 열고 있다.
예술공장 두레는 단원들에게 9시 30분 출근, 5시 30분 퇴근에 주 5일 근무 등 정확한 룰을 적용한다. 예술촌 안에서의 질서와 규칙은 필수 불가결하다고. http://www.dureart.co.kr
( 문의 211 -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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