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연구소·NGO·사기업… 전방위 감시

①골키퍼 있으면 골 덜 먹는다(국내)
②예산낭비 단체장을 리콜하라(해외)
③아메리카의 ‘워치 독’들(해외)
④청주-청원의 이중살림(국내)

2003년 10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주지사 소환 사례(본보 9월21일자 보도)에서 알 수 있듯이 자치단체의 재정부실에 따른 책임은 복지 및 교육예산의 감축과 대규모 공채발행 등을 통해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전가된다.

결국 혈세낭비를 막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관심을 바탕으로, 그물처럼 촘촘히 짜여진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1주일 동안의 짧은 현지취재였지만 시민단체나 언론은 물론 연구소, 사기업까지 가담하고 있는 미국사회의 예산 감시구조는 눈여겨 볼 점이 많았다.

언론
1년이고 2년이고 끝까지 파헤쳐라
‘카트리나 워치’로 미국 뒤흔든 탐사보도 언론 CPI

▲ 카트리나 수해 관련 비리를 1년여에 걸쳐 취재, 보도한 CPI 부젠버그 사무총장이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부를 강타한 것은 2005년이지만 미국사회를 뒤흔든 더 큰 후폭풍의 진원지는 수해복구 과정의 천문학적 예산낭비를 지적한 언론보도 ‘카트리나 워치(Katrina Watch)’였다.

카트리나 워치는 24억 달러에 이르는 수해복구 예산이 누구에게 책정됐는지, 또 정치적으로는 어떤 잇속을 챙겼는지에 대해 무려 50만 달러의 경비를 들여 1년여 동안 취재한 결과물이었다. 이 취재에는 7명의 기자와 자유기고가, 조사원 등 12~15명이 투입됐다.

한국에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집요한 탐사보도의 주역은 CPI로 불리는 ‘공공책임성센터 (The Center for Public Integrity·워싱턴 DC 소재)’다. 올해로 18년의 역사를 맞는 CPI는 그동안 역점 취재한 내용을 불과 17권의 보고서로 엮었을 정도로 ‘권력과 돈의 관계’라는 특정사안에 천착해 왔다. CPI가 발표한 보고서 가운데 출판업계에서도 대박을 터뜨린 것은 대통령 뒤에 숨어있는 후원자들의 면모를 낱낱이 공개한 ‘대통령 구매하기’다. 1996년부터 2004년까지 4년 주기로 실시된 대통령 선거와 관련해 누가 선거비용을 많이 냈으며 그 이익은 무엇인지에 대한 세부사항을 모두 3권의 보고서로 출판했다.

예산 90% 재단 지원 그래도 재정난
CPI는 이밖에도 상·하원 국회의원들이나 보좌관들이 5년 동안 로비스트와 함께한 여행기록을 조사해 발표하기도 했다. 겨울이 되면 따뜻한 플로리다로 피한여행을 가는 등 이 여행에 사용된 경비는 모두 5400만 달러였는데, 누가 돈을 냈는지에 대한 정보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같은 사실은 1000여개 이상의 신문을 통해 기사화돼 유권자들이 상·하원 의원에게 항의하는 근거자료가 됐고, 결국 관련 법 개정이 이뤄졌다.
CPI가 이렇게 심층보도에 매달릴 수 있는 것은 미국의 대기업들이 출연한 재단들이 재정을 후원하기 때문이다. 대표기자 격인 빌 부젠버그 사무총장은 “연간 400만 달러에 이르는 예산 가운데 90%를 재단에서 지원받고 있다”며 “그러나 자금이 점점 고갈돼 1년 전 41명이던 직원을 25명으로 줄였다”고 밝혔다. 부젠버그 사무총장은 또 “2001년 이후 미국사회에서 3500명의 기자가 일자리를 잃었다”고 덧붙였다.
CPI가 취재 중인 사안 가운데 하나는 ‘누가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가’다. 부젠버그 총장은 “우편번호만 입력하면 언론단체의 목록과 소유주가 나온다. 신문을 누가 장악하고 있는지는 언론매체가 다른 사업도 하고 있기에 중요하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대상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고 밝혔다.

개인기업
정부 대신 재판 거는 TAF
공공기관 유착 비리기업 사냥하는 私기업

현대자본주의의 심장부를 자처하는 미국사회를 움직이는 시스템 가운데 하나는 공익과 사익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부정에 반대하는 납세자들’로 해석할 수 있는 ‘TAF(Taxpayers Against Fraud·워싱턴 DC 소재)도 이러한 경우다.

TAF는 정부를 대신해 공공기관과 유착을 통해 혈세를 착복한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벌이는 개인기업이다.
이들은 공공기관의 내부제보자와 변호사를 연결해 비리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벌인 뒤 승소할 경우 내부제보자에게 돌아가는 보상금 가운데 일부를 수수료로 받는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국고환수금이 발생할 경우 이 가운데 17%를 내부제보자에게 지급하도록 한 법률 FCA(False Claims Act) 때문이다.

FCA법안은 공공기관의 속성으로 볼 때 청부업이나 계약사업에서 사기를 당했을 경우 내부 조직에 손상을 입거나 망신을 당할까 두려워 이를 덮어두려한다는 점에 착안해 1986년 제정한 법률이다.
TAF가 벌이고 있는 소송의 규모와 건수는 상상 이상이다. 소송의 대부분은 건강보험이나 의료보장 등에 관한 것으로, 따라서 피소 업체는 제약회사가 압도적으로 많다.

최근 승소한 건은 스위스의 한 제약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인데, 무려 1억9000만 달러 국고환수와 투명성 결의문 제출이 결정됐다. 문제의 제약회사는 자사의 약품을 약국에 독점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300배 이상 부풀려진 약값의 가격표를 정부에 제공하는 수법으로 약국이 폭리를 취하도록 도운 것으로 밝혀졌다.

줄잇는 소송 이기면 로또 저리가라
이 경우 회사가 물어내는 1억9000만 달러 중에 내부제보자와 변호사에게 돌아가는 돈은 3200만 달러인데, 기업은 이 돈을 두 달 안에 지급해야 한다. 주목할 만한 것은 현재 TAF가 이와 유사한 소송을 180건이나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에는 실제로 5%인 중환자 규모를 30%인 것으로 속여 의료보장 예산을 착복한 미국내 병원재벌 T사를 상대로 소송을 벌여 무려 9억 달러(한화 약 8550억원) 배상 판결을 받아내기도 했다. T사는 앞으로 10년 동안 이 돈을 나눠 갚아야 하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주가마저 56달러에서 12달러로 하락했다고 한다.

TAF의 제임스 무어만 사장은 “정부는 돈을 무사히 회수하기 위해서라도 T사가 파산하기보다는 병원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 잘 운영하기를 바라고 있다”며 “그러나 이름을 바꿔가면서 20년 동안 허위로 돈을 챙겨온 나쁜 회사가 존재할 필요가 있는가. ‘나를 물려고 하는 개를 도대체 몇 번이나 봐줘야하는가’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공익과 사익의 접점을 찾아 돈을 버는 ‘TAF식 사고방식’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관·경유착’이 분명해도 비리기업만 건드릴 뿐 공무원과 관련한 소송은 진행하지 않는다는 것.

TAF의 홍보담당자는 “학교를 짓는 업체와 지방관리가 짜고 공사금액을 부풀렸을 때 납세자가 지방정부를 상대로 고소할 수 있지만 그 경우에는 패소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반해 회사를 상대로 ‘그 차액을 지불하시오’라고 고소하면 승소할 수 있다. ‘쥐를 잡을 때 머리를 잡으면 물릴 수 있지만 꼬리를 잡으면 물리지 않는다”며 철저한 미국적 사고를 드러냈다.

시민단체
예산은 통돼지 바비큐가 아니다
120만 회원 주축, 피그북 만드는 CAGW

▲ CAGW는 선심성 예산이 통돼지 바비큐 나눠먹기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이를 고발하는 피그북을 30년 가까이 발행해 주목을 받고 있다.
‘포크 배럴(pork barrel)’은 선심성 예산을 뜻하는 영어표현이다. 말 그대로 통에 넣은 돼지라는 뜻으로, 정치적 배려에 따라 특정 지역에 예산 또는 이권, 관직 등을 나눠 주는 것을 뜻한다. 남북전쟁 이전, 통에 넣어 절인 돼지고기를 노예들에게 배급해 주던 데서 유래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자기들끼리 나눠먹는다는 뜻이다.

워싱턴 DC에 있는 ‘정부의 예산낭비에 반대하는 시민들(Citizens Against Government Waste)’은 이같은 선심성 예산을 집중적으로 파악해 ‘피그북(Pig Book)’을 발행함으로써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CAGW의 전신은 1982년 레이건 정부가 민간기업의 대표나 중역들로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정부기관을 감사하도록 한 이른바 ‘그레이스위원회(위원장 이름을 따서 명명)’다. 그레이스위원회는 18개월 동안 연방기구의 모든 기관을 방문해서 예산의 낭비와 기만, 또는 허위 사실 조사해 보고서를 발간했으며 이 결과 1400억 달러를 절감할 수 있었다.

당시 위원장이었던 피터 그레이스가 많은 경비를 들여 만든 보고서를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CAGW를 만든 것이다.
이 보고서를 계승해 1991년 처음 발간된 피그북은 250억원에 이르는 선심성 예산을 고발했지만 당시에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 기자들도 ‘몇 조 가운데 250억이 뭐가 중요하냐’며 눈길을 주지 않았지만 20 여 년 동안 지속적인 활동을 벌여오면서 이제는 지대한 관심을 받아오고 있는 상태다. 이를 통해 천문학적인 정치적 예산이 감소했고, 사회전반에 감시 풍토를 조성하고 있다.

회원 120만명, 주민으로부터 대표성 확보
CAGW의 힘은 50개 주 전국 방방곡곡에서 참여하고 있는 120만명의 회원으로부터 나온다.
회원은 후원회원과 자원봉사 회원 등 두 종류인데, 이들에게는 CAGW가 제공하는 소식지나 정보가 제공될 뿐 어떤 경제적인 이익도 없다.

CAGW의 연간 예산은 600만 달러에 이르는데 이 가운데 80%가 개인 기부라는 사실은 재단의 지원에 의존하는 다른 시민단체, 연구소 등과 확연하게 다른 점이다. CAGW는 예산의 72-75%를 공공교육이나 홍보활동에 사용하고, 8-9%는 연구비, 5-6%는 기관 운영비로 사용한다. 유급직원은 15명이다.

레슬리 페이지 부소장은 “회원들이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기관이 잘 운영돼 낭비가 없는 정부를 만들고 후손에게 좋은 나라를 물려주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페이지 부소장은 또 “기금이 회원들로부터 나오는 것이 중요하고 우리는 국민을 대표해서 일을 하고 있다”며 “보고서에 의한 것 외에도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해서 절감한 세액이 9000억 달러에 이른다”고 밝혔다.

CAGW가 각별히 예의주시하는 것은 이른바 긴급예산이다. 9.11사태에 대한 조치나 카트리나 수해복구, 이라크 전쟁 긴급지원 등 신속히 승인해야 하는 예산에 선심성 예산을 끼워 넣는 사례가 잦기 때문이다.
페이지 부소장은 “심지어는 긴급예산에 공화당과 민주당의 전당대회 경비, 땅콩 저장창고 건축 지원비가 포함될 정도로 악명이 높다”고 지적했다.

연구소
국책기관 능가하는 민간연구소 PPIC
재정 85% 재단이 출연, 정치적 중립 확보

▲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민간연구소 PPIC는 기업이 출연한 튼튼한 재단으로 인해 정치적 중립을 확보했다. 사진 속 건물은 연구소 소유 빌딩.
아무리 권위 있는 연구진을 확보한 연구소라고 하더라도 용역을 발주한 기관의 입맛에 맞는 보고서만 만들어 납품한다면 기관의 권위를 인정받을 수 없다. 특히 한국의 지역 연구소들은 자치단체의 직접 출자나 지원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단체장의 선심성 행정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는 연구에 매달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캘리포니아 공공정책연구소(Public policy institute of California·이하 PPIC)’는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고 있는 권위 있는 민간연구소다. PPIC가 정치적 중립을 자부하는 것은 막강한 재단으로부터 후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PPIC는 1967년 휴렛팩커드그룹이 만든 휴렛재단이 자본을 출연하고 스탠포드대학 경영대학원장이 아이디어를 내 1994년에 창립됐다. 이에 따라 재단 출연금의 이자만으로도 연구소 운영자금의 85%를 충당할 수 있기 때문에 연구주제를 결정할 때 외부의 입김이 전혀 작용하지 않는다.

PPIC가 연구하는 분야는 정치와 정부에 관한 영역, 환경이슈를 포함한 경제와 기업의 영역, 사회복지이슈를 포함한 인구와 교육의 영역 등 모두 3가지. 전체를 대표하는 경영자 외에도 각 영역별 부소장 1명씩을 포함해 모두 35명의 연구원이 있다. 이밖에 대외협력부서 10여명 등 전체 직원은 80명에 이른다.

“ 연구소의 명성은 영향력 아닌 중립이다”
정치와 정부에 관한 영역에 대한 연구를 관장하고 있는 맥스 나이만 부소장은 “연구소의 명성은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중립적인가”라고 말할 정도로 연구의 중립성에 무게를 실었다. 정부의 입법 담당자나 상원의원들로부터 용역비용을 받는 조건으로 의뢰를 받아서 연구한 사례가 단 한번도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PIC는 공공영역에 연구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지방정부가 경제발전을 위해 어떤 일을 하는지, 어느 부분에 우선순위를 두는지, 필요한 재정은 어디서 가져오는 것이 좋은지 등과 관련해 제안서를 만든 뒤 주정부의 정책입안자나 상원의원에게 설명을 하고, 이들로부터 법령에 도움이 되겠는가를 인정받은 뒤 연구를 시작한다는 것.

나이만 부소장은 “중요한 것은 정부와 독립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라며 “따라서 입법자의 구미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들이 기업의 영향력으로부터도 완전히 자유로운지에 대해서는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대해 나이만 부소장은 “우리의 연구가 기업의 관심분야이거나 원하는 내용일 경우 재단의 펀드를 받기도 한다”고 간략히 언급했다.

PPIC는 1998년 이후 전체 캘리포니아를 대상으로 70여 가지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2003년 10월 데이비스 주지사 주민소환 당시에도 주지사에 대한 인기도를 조사해 투표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나이만 부소장은 “데이비스의 인기는 캘리포니아 역사상 최저인 반면 아널드의 인기는 높았다”며 “누가 주지사라도 문제가 됐겠지만 결론적으로 상황이 맞아떨어졌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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