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연대와 정부의 교섭이 화물연대의 파업 결정으로 깨지면서 물류대란의 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방미하기 전, 비상 각료회의를 소집하고, 화물연대의 ‘불법’ 파업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하라고 각 부처 장관들에게 지시하였다. 이에 따라 경찰 병력이 화물연대 노조원들이 농성하고 있는 부산대 구내로 진입하여 파업사태가 파국적 국면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불안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문제는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항구에 쌓여 있는 수출입 컨테이너의 운송이 전면 중단되고, 이에 따라 부산항의 상업항 기능까지 마비되는 등 한국 경제에 끼치는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는 데 있다.

사실 화물연대의 파업은 상당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화물 노동자들은 이미 3월부터 파업을 예고하고 화물운송업이 가진 근본 문제들을 정부가 해결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정부의 어느 부서에서도 이 문제에 손을 놓고 있다가 파업이 터지자 뒤늦게 허둥되고 있는 꼴이 된 것이다.
화물노동자들은 형식적으로 보면, 화물차를 소유하여, 스스로 영업하는 자영업자로 보인다. 그러나 실상 그들의 형편을 살펴보면, 이른바 비정규직 노동자의 성격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대형 화물운송업체에 근무했다, 1997년 외환 위기 이후에 컨테이너 운송 트럭 한 대 씩을 자신이 근무했던 회사들로부터 빚으로 불하받아 운행하기 때문에 사실상 정규직 노동에서 비정규직 노동으로 떨어진 노동자들이 많다. 여기에다가 화물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되어 있는 운송업 등록제, 다단계의 하청고리, 지입제와 같은 전근대적인 사업구조가 화물노동자들의 생존권을 크게 위협하여 온 것이다.

여기에다가 경유에 붙는 세금의 인상은 많은 화물노동자들의 생존을 벼랑 끝까지 몰아 붙였다. 결국 장시간 노동을 해도 불어나는 빚을 감당할 수 없었던 한 노동자의 죽음이 화물 노동자들의 분노에 기름을 붓게 된 것이다. 노대통령의 말대로 화물연대의 파업이 있기전 파업의 기미를 파악하고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는 정부 내의 시스템이 없었던 점을 반성할 수도 있고, 하루 빨리 파업사태가 풀려 화물의 운송이 정상화되길 바라지만, 이 사태를 바라보는 사회 일각의 시각이 우려된다.

많은 신문들은 이 사태가 마치 현 대통령의 친 노동자적 태도가 빚어낸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 지난 몇 차례의 파업 사태에서 현 정부는 과거와는 달리, 노사 양쪽에 대해 조정자적 태도를 보인 것이 사실이다. 이로 인해, 두산 중공업에서의 노동 쟁의가 원만하게 해결되었고, 철도의 경우도 파업을 피하면서 쟁의를 원만하게 수습할 수 있었다. 과거 정권의 경우라면, 대규모 파업까지 갈 쟁의들이 평화적으로 해결된 것이 그들에게 왜 그렇게 불만일까?

화물연대의 파업도 마찬가지이다. 어렵더라도 꾸준하게 화물연대 지도부와 끈기 있게 협상하고 타협해야 한다. 화물노동자들의 생존권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화물 운송이 언제까지나 아무 문제없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생각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번 화물연대의 파업사태를 통해 현대 자본주의 경제에서 네트워크의 중요성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할 필요가 있다. 복잡하게 얽혀 진 현대 경제에서 어느 한 결절점에서의 타격은 순식간에 시스템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화물 운송업에서의 위기가 산업 전반에 확산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점을 우리는 이번 사태를 통해 뼈아프게 배우게 되었다. 만약 철강 산업에서 대규모 파업이 일어난다면, 그 타격은 곧바로 철강을 사용하는 조선산업이나, 자동차산업 등에 곧바로 퍼져 나갈 것이다.

산업들이 네트워크적으로 서로 얽혀 있다는 점과 함께 이른바 네트워크 산업의 공적 성격에 대해서도 깊은 고려가 필요할 것이다. 철도 교통이 마비된다면, 인터넷이 한꺼번에 불통된다면, 가스공급이 일시에 중단된다면, 전력산업에 위기가 닥친다면, 우리 사회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화물 운송을 공적으로 통제하고 화물 운송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에 대해 세심한 주의를 항상 기울이는 정부의 정책이 부재했을 뿐이 아니라, 구조조정이란 이름 하에 화물 노동자들의 생존을 벼랑 끝에 몰아 넣은 정부 정책에 대해 깊은 반성과 함께, 화물 운송 시스템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리라 본다.

-허석렬(충북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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