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예산 100조 시대, ‘정치단체장’이 낭비 주범
전남에는 예산만 감시하는 ‘전문 시민단체’ 탄생

글 싣는 순서
①골키퍼 있으면 골 덜 먹는다(국내)
②예산낭비 단체장을 리콜하라(해외)
③아메리카의 ‘워치 독’들(해외)
④딴살림 청주-청원 낭비도 2배(국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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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붓기 전에 밑 빠진 독부터 막아야 하는 이유…

진정한 지방자치는 민주적인 예산운영을 전제로 한다. 안정적이고 유지 가능한 지방재원을 확보하고 자치에 적합한 세입·세출제도를 확립하는 것은 물론이고, 주민이 참여하는 예산제도를 통해 삶의 질을 우선하는 예산운용이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사실 완벽한 지방자치는 100% 자치재정을 통해 완성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 인구감소와 경제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기초자치단체의 상황은 더욱 그렇다.

충북만 하더라도 2007년도 평균 재정자립도가 전국 평균 53.6% 보다 크게 낮은 33.3%에 머무는 가운데 청주와 청원을 제외한 나머지 시·군의 자립도는 10~20%로 극히 열악한 수준이다. 특히 보은 11.8% 등 옥천, 영동, 증평, 괴산 등은 10%를 가까스로 넘겼을 정도다. 결국 의무교육이나 주민복지 등 ‘국민필요수준’을 유지하는데 드는 재원은 중앙정부의 책임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 같은 현실에도 불구하고 흔히 ‘혈세’라고까지 불리는 금쪽같은 예산이 곳곳에서 낭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산낭비는 법규를 일탈한 행위, 공직자의 잘못된 의사 결정, 사적 이익의 추구, 집단적 정책과정의 흠결 등 때로는 의도적으로, 때로는 의도성이 없는 가운데 상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민주적인 예산제도의 운용을 논하기 이전에 일단 혈세 낭비를 막아야하는 긴박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지역신문발전위원회는 이 같은 필요에 따라 전국의 12개 지역신문(일간지 8개, 주간지 4개) 기자와 희망제작소 성시경 선임연구원 등으로 공동기획취재단을 구성해 국내 연수(총 3회 예정)와 미국 해외취재(9월8일~16일)를 진행했다.

이를 바탕으로 지역 예산사용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예산의 낭비적인 요인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해외사례를 소개하는 기획기사를 연재할 계획이다. 또 지역의 예산낭비 사례를 추적하는 보도가 이어질 것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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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예산 100조 시대가 왔지만 예산낭비 요인에 대한 감시기능은 미약하기만 하다. 특히 정치단체장들의 선심성 예산 낭비와 공무원들의 도덕적 해이는 심각한 수준이다.
‘골키퍼 있다고 골이 안 들어가냐’는 말이 있다. 물론 골키퍼가 있어도 골은 들어간다. 하지만 열려있는 대문보다는 수문장이 있는 대문이 수비에 효율적인 것은 분명하다. 1991년 지방의회가 부활되고 1995년 자치단체장을 선출하면서 본격화된 지방자치가 20년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그동안 줄줄 새는 지역의 예산낭비를 막아줄 유능한 골키퍼에 대한 주민의 관심은 그리 높지 않았다.

단체장들은 지방교부세나 국가보조금, 양여금(현재는 폐지) 등 의존재원을 많이 확보하는 것을 치적으로 내세우며 펑펑 예산을 써댔다. ‘예산을 이월시키면 이듬해에 돈이 나오지 않는다’며 연말이면 애꿎은 보도블록을 새로 깔아온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주민으로부터 예산감시 기능을 부여받은 지방의회도 의원들이 자기 동네 선심성 예산 챙기기에만 혈안이 되면서 신뢰를 잃은 상태다. 시민단체가 이 분야에 대해 감시의 눈길을 보낸 것도 그리 오래지 않다.

언론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체계적인 보도나 지속적인 감시에 기반을 둔 보도보다는 일회적이고, 단편적인 사건보도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앙언론의 보도는 정부예산에 대한 문제점 지적이나 광역단체에 대한 일률적인 비교에 머물고 있어서, 지역의 구체적인 현안과 개별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지방에 눈을 돌려야 하는 상황이다. 2006년을 기점으로 지방예산 100조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지방의 재정사용은 해마다 증가해 2006년 지방의 재정규모는 일반·특별예산을 합쳐 처음으로 100조를 넘었다. 이는 2005년보다 9.7% 증가한 수치다. 지방에서 사용하는 재정이 중앙정부보다도 커졌다. 국세와 지방세의 세원 배분에 있어서, 국가 대 지방의 비율이 44:56에 이르기 때문이다.

희망제작소 성시경 선임연구원은 “흔히 예산낭비라고하면 공무원들이 사적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불법적인 행위를 하는 것 정도로만 알고 있는데, 법규를 준수하고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결과적으로 낭비로 이어지는 경우까지 다양한 유형이 있다”며 “그래서 예산낭비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전문성 확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성 연구원은 또 “중앙의 경우 1990년대 후반부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예산감시위원회 등이 이 분야에 대해 집중적으로 관심을 가져왔지만 지역의 경우에는 편차가 크다”며 “지역에서도 전문성을 갖춘 감시조직의 탄생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관사 수도요금까지 뒤지는 감시단체
예산낭비에 대한 감시활동은 일단 관심에서 시작된다고 보면 된다. 중요한 것은 어떤 분야에 대해 얼마나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지 여부다. 이런 점에서 광주·전남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행의정감시연대(이하 행의정연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산분야에 천착하면서 단체장 관사의 수도, 전기요금 내역까지 받아낼 정도로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행의정연대 발족의 토대가 된 것은 2004년에 출범한 순천참여자치시민연대(이하 순천참여연대)다. 순천참여연대는 형식적으로는 전국조직인 참여자치시민연대의 지역조직이지만 남다른 활동방식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대부분의 시민단체가 행정에 간접 참여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영역으로 진화한 반면 순천참여연대는 오직 감시기능에만 집착해왔기 때문이다.

이들의 감시 정도는 기관의 예산 낭비에 그야말로 현미경을 들이대는 수준. 각종 지출결의서를 모조리 받아내 발의와 주문, 납품일자를 낱낱이 대조하는가 하면, 역대 순천시장의 차량운행일지를 분석해 시장의 관사 사용 여부까지 밝혀내는 집요함을 보여준 것이다. 시청의 전화요금, 시장 관사의 전기, 수도요금도 감시의 대상이다. 검찰청 주차장을 짓는데 시 예산이 투입된 것이나, 기자들이 공짜 해외여행을 가는 것 등 다소 껄끄러울 수 있는 부분도 개의치 않는다.

이처럼 성역 없이 돋보기를 들이대다 보니 이를 막기 위한 로비나 외압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순천참여연대는 대표와 집행위원장, 사무국장 등 3명만 외부에 공개하고 100명에 이르는 다른 회원들의 신상은 일체 밝히지 않고 있다. 행의정연대는 이상석 전 순천참여연대 사무국장이 운영위원장을 맡으면서 2005년 발족했다. 처음에는 행의정감시전남연대였으나 광주광역시까지 활동영역을 넓히면서 이름에서 ‘전남’을 뺐다.
시골 시민단체 활동가인 이 운영위원장이 전국구 활동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2006년 8월 기획예산처에서 열린 예산낭비 관련 세미나. 이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자치단체의 영화나 드라마 세트장이 얼마나 많은 세금을 낭비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폭로했다.

이 위원장은 “순천시가 모 방송사의 통속 멜로드라마 세트장 건립을 지원하면서 시의회로부터 도 예산 25억원 확보를 전제로 조건부 승인을 받았으나 이를 무시하고 시비 43억원을 지원했다”며 “도의회 역시 투융자 심사과정을 거치지 않고 추후 도 예산 12억원을 지급해 사실상 추인하는 꼴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 운영위원장은 “전국적으로 수많은 시·군들이 수십억의 예산을 들여 영화나 드라마 세트장 건립을 지원하는데, 자치단체장의 치적 쌓기 외에는 아무런 효과도 내지 못하고 있다”며 “그러나 몇 해도 지나지 않아 날림으로 지은 세트장이 무너져 내리는 등 관리도 되지 않아 골칫덩어리로 전락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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