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영 문화부 기자

“뗀 또이라 냐바우(나는 기자입니다)”. 9월 첫째 주 기자가 있던 곳은 베트남 푸옌성이었다. 충북민예총이 벌이고 있는 한-베트남 문화예술교류 동행 취재로 2년 만에 그곳을 다시 찾았다. 비행기 안 작은 명찰 뒤에 적은 몇 마디 베트남 단어들은, 일주일 동안 함께 했던 참 고마운 단어가 됐다. 민예총 예술가들은 몇 달 전부터 매주 모여 베트남어를 공부하더니, 현지에서 회화 실력을 유감없이 뽐냈다.

이번 교류의 하이라이트는 호아빈 학교 준공식. 충북민예총 예술가들은 그동안 시집의 인세를 내놓고, 평화콘서트와 전시회를 열면서 기금을 마련해 호아빈 평화학교를 지었다. 호아빈은 작은 시골마을인데, 지명의 뜻 또한 우연찮게도 ‘평화’였다. 지난해 학교 건립기금, 올해는 책걸상 비용을 지원했다.

준공식은 아침 8시에 시작됐다. 이른 시간임에도 아이들은 교복을 입고 반듯하게 줄을 서 있었다. 고사리 손에 국기를 들고, 교류단을 향해 열렬히 환호했다. 도리어 ‘이렇게 황송 받아도 되는 건지’ 미안해졌다.

알고 보니 이 지역의 다른 학교 학생들까지 오늘은 호아빈 학교로 등교를 했다고 한다. 호아빈 학교 준공식은 이렇게 아이들, 주민들, 예술가들, 양국의 도 관계자들이 함께 모여 즐거운 잔치를 벌였다. 낯선 외국인이 무대에서 탈을 쓰고 춤까지 추니, 아이들에게 이보다 재미난 구경이 없어 보였다.

준공식에 이어 펼쳐진 개학식은 선배들이 새로 들어온 신입생들을 환영해주는 ‘소소한 축하공연’이 이색적이었다. 그래도 윗분(?)의 당부 말씀은 우리들처럼 길고 길었다.

이번 교류는 민간 예술 교류로 지자체 차원의 우호 협정을 이끌어내고, 향후 실질적인 경제교류까지 오가는 등 풍성한 수확을 거뒀다. 푸옌성 부주석은 “한국과 친구가 돼서 기쁘다”며 “최근에는 한국 기업의 참여율도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푸옌성은 GDP 500만 달러의 벼, 사탕수수가 유명한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푸옌성은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 주둔지로, 민간인 학살의 상흔을 남긴 곳이다. 또한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들을 이해하고, 미력하나마 치유하고자 노력하는 한국의 예술인들이 있다는 것이다.

푸옌성은 천년을 이어온 문화를 자랑한다. 천년 전 돌악기가 아직까지 연주되고 있다. 이러한 유구한 역사 가운데 굴곡진 전쟁사가 녹아져 있다.

홍수가 나면 “홍수와 함께 살자”고 외친다는 베트남 사람들은, 그렇게 전쟁과 함께 살았다. 푸옌성 싸오빈 예술단이 공연할 때마다 빼놓지 않는 노래가 있다. 이른바 베트남 역사인물을 찬양한 노래인데, 이런 대목이 있다. “아이들아, 절대로 인간을 믿지 마라,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이란다.”

싸오빈 예술단은 떠나기 전 마지막 밤, 예술가들이 함께 살고 있는 아파트 옥상 위로 우리들을 초대했다. 옥상 위에는 서로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의 조명과 사이공 맥주, 열대과일들이 놓였다. 양국 예술가들이 보여주는 노래와 춤은 어느새 ‘흥겨운 안주’가 됐다.

도종환 시인은 이곳에서 호아빈 준공식 때 푸옌성 따이화현 인민위원장이 한 말을 꺼냈다. “‘은혜를 받은 자는 그 말을 다시 언급하지 않으며, 은혜를 입은 자는 잊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나는 수첩에 ‘용서를 받은 사람은 다시 그 말을 언급하지 않으며, 잘못을 한 사람은 그 일을 잊지 않는다’고 적었다.” 그렇게 선뜻 ‘친구’라고 손잡기엔 부끄러운 기억들이 너무 많이 떠오르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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