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신앙과 미신타파운동
상태바
무속신앙과 미신타파운동
  • 충북인뉴스
  • 승인 2007.09.12 16: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요즘 도시 뒷골목 곳곳에는 절만자(卍) 깃발을 세워 놓고 「백두도사」,「태백도사」, 「계룡산처녀보살」 등의 깃발과 간판을 걸고 사람들의 길흉을 점쳐주는 곳과 철학관이라 하여 작명과 혼인일 택일, 이사 가는 날, 개업하는 날 등을 알려주는 곳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한편 도시 양지에는 그것과는 반대되는 십자가(†)를 높이 세운 교회들이 밤이면 환히 밝혀져 사람들을 맞는다. 이렇게 현대인들은 다양한 종교 속에서 안식을 찾으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 올해는 복을 주소서크게 자란 거목이나 서낭당을 찾아간 주부들이 가정의 행복을 빌고 한지에 불을 당겨 액운을 쫓아달라고 간절하게 빌었다. 1960년대
우리 민족은 예부터 산이나 바다, 강, 바위, 큰 나무 등에 신이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믿고 토속신을 숭배해 왔다. (이런 정령 숭배는 애미니즘이다) 원시시대에는 정령숭배가 대부분의 종교를 담당했고 씨족, 부족사회로 오면서 무속신앙(샤머니즘)이라 하여 신을 대신하는 인간을 통해 하늘의 뜻을 전달 받고 그것을 전적으로 믿었다.

우리나라 무속신앙의 문헌상 최고(最古) 기록은 신라 2대왕 남해차차웅(南解次次雄)의 왕호로 왕호 자체가 무칭(巫稱)의 의미가 들어가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무속신앙의 기원은 훨씬 전의 시간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또한 단군신화에 나오는 것처럼 곰을 숭배하는 토테미즘도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나라 무속신앙은 토테미즘, 애니미즘, 샤머니즘이라고 어느 것 하나로 구분 지을 수 없고 이 세 가지 성격을 포괄한다.
이후 불교, 도교, 유교와 융합된 우리나라 무속신앙은 다양하고 복잡한 종교 성격상 미신과 구별하기 힘들어 혹세무민(惑世誣民)의 많은 사례들을 야기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 중앙공원 점장이들1950년대 전란으로 정국이 불안하고 북에서 피난온 사람들이 고향에 먼저 돌아가고 헤어진 가족들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한줄기 희망을 가지고 점장이들에 복채(돈)를 주고 신수점 치는 사람이 많아 청주중앙공원 주변은 점장이들이 모여들었다./ 1950년대
1958년 2월 15일 도내 한 일간지에 기재된 내용을 보면 허무맹랑한 믿음 때문에 경제적인 손실과 정신적인 피해를 입은 서민이 많이 발생해 당국이 적극적인 미신타파운동을 벌인 기사가 실렸다.

청주 중심지 중앙공원에 인파들이 모여들고 점쟁이들이 진을 치고 있어 많은 서민들이 이들 말에 혹해 많은 경제적인 손실을 보고 있어 당국은 ‘존경하는 시민 여러분 구정을 전후해 전국적으로 미신타파운동을 전개하고 있는바 미신행위를 업으로 하는 점쟁이들이나 무속인들의 감언이설과 거짓말에 속지 말기 바랍니다’이라는 벽보까지 붙이며 계몽에 나섰지만 큰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는 내용이다.

이 밖에도 사이비 교주와 무속인들로 인해 목숨을 빼앗기는 참혹한 경우와 가산탕진, 성폭행 등 많은 사회적 문제들이 미신으로 인해 발생했다.
우리민족은 오랜 시간 무속신앙을 통해 가정과 마을을 결속해 지탱해 왔고 불교, 유교, 도교의 전래와 함께 융합해 무속신앙의 뿌리는 더 깊어졌다.

▲ 무당 살풀이집안에 병자가 있거나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집안으로 무당을 끌어들여 굿을 하고 살풀이 하는 일이 많았다. 무당들은 조상님들이 노했거나 터주신이 화를 일으킨다며 몇 일씩 굿을 하는 진풍경이 자주벌어졌다. 1960년대
그러나 기독교의 급속한 전파와 새마을 운동을 통한 계몽운동이 펼쳐져 마을 입구에 서 있던 마을 신앙의 대표 격인 서낭당 돌무더기와 신목(神木) 등이 잘려나가고 집안 신앙으로 구석구석에 자리 잡은 신격들인 성주, 산신, 터주, 조왕, 대감, 업, 문신, 곳간신 등이 서서히 없어져 무속신앙은 크게 줄어들고 말았다.

이런 계몽 운동을 통해 조국이 근대화되고 선진국으로 가는 초석이 다져진 것은 분명하겠지만 그동안 집안과 마을을 결속해주는 고리는 상당 부분이 없어진 것 또한 분명하다.
심지어는 우상숭배라 하여 조상을 모시는 제사와 차례를 부정하는 일부 기독교의 교리로 가정 내에서의 불화도 발생하게 됐다.

그동안 미신으로 간주되어진 무속신앙이 조국 근대화 속에 제대로 존중받고 전승되었다면 미신으로 인한 많은 사회적 병폐가 많이 줄었을 것이고 어쩌면 기존 무속신앙에 나타난 것처럼 개인과 가족, 마을의 결속력이 좋아져 지금보다 훨씬 더 살기 좋아졌을지도 모른다.

▲ 맹인 피리 점치기앞을 못보는 맹인점쟁이가 피리를 불어 사람들을 모아 놓고 신수점을 보아주는 진풍경을 도시 뒷골목에서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번화가에서도 볼 수가 있었다.1960년대
누구에게나 자유로운 신앙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 기독교든 가톨릭이든 불교든지 간에 자유의사대로 자신이 믿고 싶은 종교를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종교를 박해하고 우월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권한은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

▲ 아들 낳게 해주세요결혼하고 몇년이 지나도 임신을 못한 젊은 여인들이 사찰을 찾아 부처님을 뵙거나 서낭당을 찾아가 촛불을 켜놓고 아기를 점지해 달라고 애원섞인 기도를 드리기도 했다.1970년대
이번에 발생한 아프가니스탄 인질 사태도 자기가 갖고 있는 종교를 일방적으로 상대방에게 요구하다가 어긋나서 발생한 원인도 있을 것이다.

과거 우리 조상들이 무속신앙을 통해 가족과 마을의 안녕을 빌었고 외부에서 전래된 여러 종교들을 잘 융합해 상생하는 기지를 펼친 것처럼 우리도 다종교사회에서 서로 이해하고 존중해주며 조화롭게 발맞추어 나아가길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