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규 법무사·이윤영 기자·서일민 관장·정은혜 검사가 사는 법
여성임을 자랑스럽게 홍보, ‘성공은 노력끝에 쟁취한 것’ 보여줘

일하는 여성은 아름답고, 프로 여성은 더 아름답다. 하지만 프로가 되려면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청주지역에도 이런 힘든 과정을 겪고 자기 분야에서 우뚝 선 여성들이 있다. ‘충청리뷰’가 열정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이들을 만났다. 이들은 지역의 많은 여성들에게 용기와 꿈을 줄 것이다. 4명의 프로 여성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도전하라. 끝까지 도전하라”고.

딸에게 자랑스런 엄마 … 이은규 법무사

‘여성 법무사 이은규’. 이은규 법무사 사무소장(42)을 수식하는 첫 단어는 여성이라는 것이다. 수곡동 법원 골목에 위치한 사무실을 찾았을 때 그는 여성이라는 사실을 간판에 홍보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굳이 왜 여성이라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알리느냐고, 남자 이름 같아서 당연히 남자인지 알고 들어올텐데 왜 ‘손해’보는 일을 하느냐고 야단이지만 이 소장은 그렇지 않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여성이기 때문에 얻은 게 많다.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당당히 알렸더니 손님들이 더 좋아하고, 오히려 여성 법무사와 상담한다며 찾아 온다. 법률 업무는 여성의 일이다. 법무사는 인내심 있고 집요하고 꼼꼼한 여성에게 딱 맞는 직업이다. 여성은 일단 손님들의 말을 잘 들어준다. 일을 할수록 이런 생각이 든다.”

보수적인 청주 지역사회에서 ‘여성 프리미엄’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이건 공짜로 얻어진 게 아니었다. 답답해서, 억울해서, 필요해서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정성을 다해 법률서비스를 했고 이 것이 그를 찾는 요인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 소장은 이 분야에서 일단 몇 가지 상식을 깼다. 간판에 이렇게 여성 법무사라고 광고한 점, 영업 담당 사무장을 두지 않고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손님과 업무를 진행하는 점, 예약시스템을 도입해 어떤 손님이든 약속하고 오도록 한 점, 대부분이 꺼리는 민사소송 업무를 기꺼이 맡는 점 등이다.

그래서 청주지역 법무사 70명 중 드물게 여성인데다 파격을 두려워 하지 않아 다소 ‘튀는 법무사’로 알려져 있다. 청주지역 여성 법무사는 현재 4명.

하지만 남들이 부러워하는 ‘법무사’ 타이틀을 가진 이 소장도 이런 자리에 오르기까지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결혼하고 딸 아이 6살 때까지 집에서 살림만 했다. 결혼 후 10년 동안은 신문조차도 안보는 생활을 해왔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시간이 갈수록 경력이 쌓이고 성장하는데 나는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법무사 시험공부를 하기로 하고 대학 때 보던 책을 꺼내 무조건 베껴 쓰는 일부터 시작했다.”

충북대 법대 출신인 이 소장은 이후 아이를 데리고 도서관으로 출근하다 아이가 유치원에 가면서부터는 지독하게 공부에 매달리는 생활을 계속했다. 마침내 그는 3년만에 합격하는 영광을 안았다. 공부를 시작한 게 35세, 합격하고 개업한 게 38세였다. 당시 늦었다고 생각했으나 지금은 어린 축에 들어 괜한 기우였음을 느낀다는 게 그의 말이다.

“내가 사회생활을 해야겠다고 나선 계기가 있었다. 우선은 ‘엄마의 삶은 딸에게 유전된다’고 생각해 딸을 위해 시도했다. 내가 삶을 선택해 사는 것이 아니고 상황에 끌려가면서 살면 내 딸도 그러겠구나 하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그리고 남편만 바라보고 사는 인생은 재미가 없었다.”

이렇게 고백한 이 소장은 “딸에게 자신감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줘 자랑스럽다”며 웃었다. 그가 중1인 딸에게 늘 강조하는 것도 “여자라서 못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

법무사 시험 합격이후 곧바로 공인중개사 자격증까지 따낸 그는 부동산 쪽으로 특화된 사무실을 운영할 계획을 갖고 있다. 현재 충북대 법대 대학원 석사과정을 밟고 있고 충북도 토지수용위원회 위원, 청주지방법원 민사·가사 조정위원, 청주지검 화해중재위원회 형사조정선임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원없이 방송해서 좋다” … 이윤영 기자

CJB 종합뉴스 앵커였던 이윤영 아나운서(36)는 지난 4월 기자가 됐다. 10여년 동안 계속했던 앵커 자리에서 물러난 그는 요즘 취재기자로 경제와 문화현장을 누비고 있다. 아나운서 이윤영이 아닌 기자 이윤영이 된 것이다. 새로운 변화에 맞게 여기 저기 쫓아다니며 열심히 귀동냥 한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만났다. 생명력이 짧은 여성 앵커를 기자로 이어가게 된 그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목포 MBC 아나운서 3년, CJB에서 10년 등 총 13년 동안 아나운서로 살았다. 그런데 이 직업이 나에게는 천직인 것 같다. 쉬는 날도 없이 카메라 앞에 섰는데 정말 즐거웠다. 그래서 앵커 자리에서 내려올 때는 눈물까지 날 정도로 서운했다. 그러나 이제는 기자로 살고 있는데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것 같다. 진행도 해보고 취재현장도 누벼보면 나중에 살아있는 방송을 할 수 있지 않을까. MBC 김주하 앵커가 여성 단독 뉴스 진행에 취재·보도까지 하는 등 여러 가지 형식을 깨는데 나도 그렇게 해보고 싶다.”

고등학교 때 백지연 앵커가 뉴스 진행하는 것을 보고 아나운서 꿈을 키운 그는 대학 졸업하고 바로 94년 목포 MBC 아나운서가 됐다. 화려한 커리어우먼을 상상하고 고향인 서울을 떠나 목포로 내려갔으나 숨쉴 틈 없이 일이 많아 고생깨나 했다는 것.

그러다가 97년 청주방송이 개국하면서 경력직 아나운서로 입사한다. 이후 뉴스·일요초대석·TV닥터·생방송 행복한 세상과 각종 축제·행사를 진행했고, 요즘에는 ‘이윤영의 피플 & 이슈’라는 이름을 내건 방송을 하고 있다.

그래서 시청자들로부터 CJB만 틀면 이윤영이 나온다는 항의아닌 항의까지 듣는 사람이 됐다. 그 만큼 열심히 일 했다는 얘기다. 이 기자도 중앙방송 아나운서가 되지 못한 것을 속상해 했으나, 이제는 원하는 만큼 다양한 방송을 경험한 게 큰 ‘재산’이 됐다고 말했다.

“방송사 시험공부 할 때 방송 아카데미에 다녔는데, 이 곳 출신 아나운서 중에 아직까지 활동하는 여성 아나운서는 거의 없다. 중앙방송에서는 몇 몇을 제외하고 3~4년 반짝하다 마는 아나운서들이 많다. 이런 것에 비하면 나는 운이 좋았다”며 자신은 늙어서도 방송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결연하게 말했다. 이 기자의 이런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는 ‘보기와는 달리’ 역동적인 스포츠를 즐긴다. 그동안 패러글라이딩, 수상스키, 스노우보드 등을 배웠다. 왠지 정적인 것을 좋아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선입견일 뿐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새로운 것이면 무조건 도전할 정도로 모험을 즐기는 성격이었다. 박춘섭 CJB 본부장은 이 기자를 가리켜 “인생을 매우 열정적으로 산다”고 칭찬했다.

요즘 그는 스포츠를 즐기는 외에 중국어공부를 틈틈히 하고 있다. 이 기자는 덕성여대 중문과 출신이다. 아울러 충북 여성계를 위해 일하고 싶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우리사회에 성차별은 분명히 있다. 그동안 별로 관심을 쏟지 못했는데 앞으로 여성문제와 여성계에 애정을 갖고 다가가고 싶다. 그래서 여성의 지위향상에 보탬되는 역할을 할 것이다.”

“내게도 기적이 된 기적의도서관” … 서일민 관장

청주 기적의 도서관은 어린이전용 도서관이다. 우리나라에 어린이 도서관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기에 건립돼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아울러 기대감을 주었다.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본부·MBC 느낌표·청주시가 공동추진해 지난 2004년 7월 수곡동에 문을 열었다. 법원장 관사를 리모델링해 가정집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는 이 곳에서 어린이들은 배를 깔고 엎드리거나, 눕거나, 앉아서 책을 본다.

이 아이들의 틈새를 부지런히 오가며 도서관을 관리하는 사람, 바로 서일민 관장(59)이다. 여성인력들이 주로 사서직에 배치돼 있고 관리자가 없는 현실에서 그의 존재는 눈에 띈다. 연세대 도서관학과 출신인 서 관장은 당시 도서관학을 정통으로 배운 전문가로 화제를 모았다.

위탁기관인 청주지역사회교육협의회에서 초빙받아 초대 관장을 지낸 그는 이 협의회가 지난해 재위탁 받음으로써 현재 2대 관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올해로 개관 3주년을 맞은 이 도서관은 장서 3만2000권에 하루 평균 600명의 이용자가 북적이는 어린이들의 놀이터로 자리매김했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상시 운영, 도서관은 책만 보는 곳이 아니라는 인식도 심어 주었다. 그 중 과학 프로그램은 청주 기적의 도서관을 설명하는 주요 테마가 됐다. 또 봄에는 과학축제, 가을에는 집문화와 아리랑축제를 매년 열고 있다.

“어린이도서관이라는 모델이 없는 시점에 관장을 맡아 기틀을 잡는 일에 매진했다. 그래서 할 일도 많았고 어려운 점도 많았다. 3년이 지난 지금 우리 도서관은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놀이터가 됐고, 충북대 천문우주학과와 손잡고 진행해온 천문우주과학교실을 정착시키는데 나름대로 성공했다. 덕분에 올해 2월에는 도서관 뒷마당에 천체투영관도 만들었다.”

열람실 재배치 공사가 한창인 도서관에서 만난 서 관장은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게 즐겁다. 도서관이 이 아이들의 세계를 넓혀준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낀다. 도서관장이라는 직업에 만족한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적의 도서관이 서 관장에게는 ‘기적’이 됐다.

대학을 졸업하고 경기대 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하던 그는 결혼하면서 일을 접었다. 살림만 하다가 88년 남편 직장일로 청주로 내려와 91년 청주대 문헌정보학과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시작했다. 43세 되던 해였다. 또 49세 때는 일본 법정대학에서 일본문학 공부를 시작했다.

“남편이 78년에 금성사 동경사무소 주재원으로 근무할 때 일본 동경에서 2년간 산 적이 있다. 이 때 일본어를 접했다. 귀국한 뒤 한동안 잊고 지내다 일본문학 공부를 시작했는데 아직도 하고 있다. 평소에는 통신으로 공부하고 방학 때만 동경 캠퍼스에서 강의를 듣는다.

지금은 일본어를 읽고 말하는데 불편함이 없을 정도인데, 도서관에 관한 일본자료를 참고할 때 큰 도움이 된다.”서 관장은 지금 아이들에게는 ‘책 읽어주는 할머니’ 부모들에게는 ‘관장님’으로 불리고 있다. 공부를 포기하지 않고 줄곧 도전한 것에 대한 달콤한 열매이기도 하다. 현재 책읽는청주 추진위원, 1인1책펴내기 추진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피해자 인격권 보호 큰 관심 … 정은혜 검사

청주지검 평검사 20명 중 여성 검사는 6명이다. 최근들어 여성 검사의 비율이 부쩍 늘었다. 여성들이 공정한 시험을 통해 선발하는 공직을 선호하면서 법조계도 예외는 아니다. 올해 외무고시에서는 여성이 수석을 차지하고 여성 합격률이 남성을 앞질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정은혜 청주지검 검사(36)는 대전지검과 대구지검상주지청을 거쳐 지난해 8월부터 청주지검에서 근무하고 있다. 올해 5년차로 수사검사다. 사시 42회. 그는 특히 피해자 인권에 신경쓰는 검사로 통한다. 성폭행 사건을 당한 피해자 부모와 충분한 상담을 하고, 재판이 늦어지면 왜 늦어지는지를 일일이 설명, ‘친절한 검사님’으로 소문이 났다.

그 자신도 “과거에는 인권의 핵심이 피고인에게 가 있었다. 무게중심이 피고인의 인격권과 신체의 자유를 어떻게 법적으로 보호할 것인가에 있었다. 그러다보니 피해자들이 형사절차에서 소외돼 왔고, 피해자들 또한 이런 불만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제는 피해자들의 인격에 큰 관심을 쏟고 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몇 가지 사건을 예로 들었다. “A양은 남자 친구 사촌형한테 강간 치사를 당했는데 가족들이 대처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안 하면 사건 규명이 안되겠다 싶어 경찰과 협조 끝에 범인을 잡았다. 또 죄질이 나쁘고 여성으로 하여금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한 성폭력범 B군에게 1심에서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이는 상당히 무거운 형량에 속한다. 두 건 모두 피해자를 생각해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이 뿐 아니라 정 검사는 성폭행을 당한 한 피해자 부모에게 재판과정을 상세히 설명해주고 그 때 그 때 대처토록 도움을 줘서 유죄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사고를 당하고 재판을 받으면 누구나 당황하고 의지할데가 없다는 점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정 검사는 이 말 끝에 딸 가진 부모만 딸 단속을 하는데 사실은 아들 가진 부모가 아들 교육을 시켜야 성폭력 사건이 줄어들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슬하에 아들 하나를 두고 있는 그는 자신의 아들이 남에게 ‘흉기’가 되지 않도록 철저히 교육시킨다는 것이다. 정 검사의 여성의식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지난 2003년 임관해 날마다 사건을 다루지만 검사직이 적성에 맞는다는 그는 “상주지청에 있을 때는 홍일점 검사였는데, 여 검사가 공정하고 청렴하다며 검사를 바꿔달라고 청원을 낸 사람이 있었다. 피해자가 여성이거나 성폭력사건일 때는 특히 그런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이는 정 검사가 바른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얻어진 것이지 거저 생긴 ‘보너스’는 아닐 것이다.

한편 정 검사는 청주지검에서 추진하는 ‘청주 범죄피해자지원센터’를 적극 홍보했다. 피해자의 피해회복, 복지증진 등을 목적으로 하는 비영리 사단법인인 이 곳에서는 상담·형사조정·사법보좌인·의료지원 위원회를 두고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피해자를 돕고 있는 만큼 적극적으로 이용해달라고 말했다.

편하게 검사가 됐을 것 같은 그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바로 결혼, 아이엄마가 된 뒤 사시에 매달린 뒷얘기가 있었다. 정 검사는“약 10년 동안 아이와 떨어져 살았다. 이제 청주와서 처음 같이 살고 있다. 기혼여성이 겪는 어려움을 나도 똑같이 겪었다. 정말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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