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이야기입니다. 독일이 통일되기 전 서독에 몇 개월 머물렀던 적이 있습니다. 안내를 받아 본에 있는 연방의회, 즉 분데스탁(BundesTag)을 방청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게르만민족의 기상을 상징하는 커다란 검은 독수리 휘장이 전면을 압도한 본회의장은 한마디로 장관이었습니다. 무거운 엄숙함 속에서의 휘황한 분위기는 아시아의 정치 후진국 나그네에게 이내 감동을 주어 ‘역시 선진국답구나’ 하는 설렘을 갖게 했습니다.

의원들이 개회를 기다리는 동안 직원들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청바지에 남방차림으로 회의장을 오고가면서 무엇인가 열심히 얘기를 주고받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의문이 생겼습니다. 이처럼 엄숙한 회의장에서 직원들이 불경스럽게도 저런 복장을 하다니…. 하나같이 말끔한 제복차림으로 조심스레 의석을 오가는 우리 나라 국회직원들 모습과는 너무도 달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직원들이 아니라 의원들이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1980년대 초 돌연변이처럼 독일에 등장한 녹색당은 기존의 질서를 부정이라도 하듯 먼저 옷차림에서부터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은 멋대로 입고싶은 대로 옷을 입고 거침없이 행동함으로써 바람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렇게 나타난 것이 의사당의 캐주얼 선풍입니다. ‘녹색당바람’은 이내 전 세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모르고 옷차림만 보고 의원들을 직원으로 착각했던 것입니다.
6대 국회 시절이던 1960년대 야당의 박병배의원은 곧잘 두루마기에 갓을 쓰고 회의장에 출석하곤 했습니다. 갓 쓴 그의 모습이 늘 신문 가십난을 장식했음은 물론입니다.

7대 국회 때 해병장성출신의 이세규의원은 개회식에는 어김없이 군 예복 차림으로 국회에 나왔습니다. 흰 모자에 흰 양복, 흰 구두, 소장계급장을 단 그의 예복정장은 아주 화려하고 멋졌습니다. 군 출신의원이 많았지만 유독 그는 자신이 군인이었다는 것에 남다른 자부심을 가진 듯 했습니다. 기자들은 그 두 사람을 ‘괴짜’라고도 하고 ‘기인’이라고도 불렀습니다.

4·24 재·보선에서 당선된 개혁당의원 유시민이 흰 면바지에 티셔츠차림으로 국회본회의장에서 의원선서를 하려다 다른 의원들의 집단반발을 사 심심하던 국민들을 즐겁게 했습니다. 국회랍시고 늘 싸우는 소리만 들리는 줄 알았더니 저런 ‘애교’ 도 있구나 하고 웃어보았기에 말입니다. 물론 어떤 이 들은 “국민을 무시한 모욕적인 행동”이라느니 “사춘기적 발상”이라느니 하면서 입에 거품을 물었지만 “엄숙한 국회의 위선을 깬 일종의 문화혁명”이라며 “신선한 시도”라는 다른 한쪽의 옹호론도 만만치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다분히 의도된 것으로 보이는 유시민의 돌출행동은 우리사회가 아직은 형식의 틀을 벗어나기에는 시간이 좀더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갖기에 충분했습니다. 또한 우리국민들은 나와 다른 남을 인정하는데 익숙하지 않을뿐더러 ‘우리’라는 집단에서 일탈한 ‘개인’의 존재를 용인하는 데 인색하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그것이 선진국과 다른 점인 듯 합니다. 그런데 정말 웃기는 건 의원들의 ‘신성한 국회’ 타령입니다. 툭하면 ‘이놈, 저놈’욕설을 내 뱉으며 회의장에서 막가파 식으로 멱살잡이를 서슴지 않는 의원들이 ‘국회의 신성’을 말하는 것이 난센스이기에 말입니다. 국회의 권위를 입에 담으려면 옷차림을 말하지 말고 먼저 존경받는 행동이 앞서야 됩니다. 그러고 옷이 뭡니까. 그가 발가벗었습니까.

평가가 어떻든 유시민의 해프닝은 허구적 권위로 가득한 기존의 질서에 돌을 던진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도 그냥 던진 것이 아니라 “엿 먹어라”하는 야유와 함께 말입니다. 의원들이 버럭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퇴장한 것은 유시민의 그런 방약무인(傍若無人)한 속내를 알아차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찌됐던 유시민은 그의 역작 ‘거꾸로 읽는…’시리즈가 그랬던 것처럼 기발한 퍼포먼스로 원내에 입성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의 앞날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그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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