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병 모자세대 김현숙·임사홍·영훈씨 하소연
김씨는 “청주시와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센터가 각각 활동보조인과 가사도우미를 보내줘 별 어려움 없이 생활하고 있다”며 “다만 모두가 돌아가는 밤 9시 이후부터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씨는 “오른팔 하나만이라도 사용할 수 있어 아직까지 두 아들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고 말했다. 사실 근육병 환자는 몸을 움직일 수 없어 잠을 자는 동안 자세를 바꿔 줘야 한다. 바로 이 일을 어머니 김 씨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두 아들을 위하고 있는 것이다.
사홍씨는 초등학교 6학 때 처음 근육병 진단을 받았다. 정상생활이 가능한 터라 실감하기 어려웠다 한다. 하지만 10년 동안 빠르게 진행돼 지금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따라서 어렵게 다니던 대학(충대 컴퓨터공학과 2년)마저 휴학했다. 동생 영훈씨. 그는 가족들 중 가장 늦게 근육병 진단을 받았다. 가족력이 의심된다는 주치의 권유로 중학교 2학년 때 대학병원에서 종합검진을 받았고 근육병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았다고 한다.
사홍씨는 “나이 들어 엄마의 도움을 계속 받아야 하는 현실이 속상하다. 동생과 엄마를 위해 뭔가 하고 싶지만 갈수록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 따라서 뭔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직업을 가져보고 싶다. 그리고 여행도 가고 싶다. 하지만 이제 문 밖 출입이 더욱 쉽지 않다. 온몸이 돌처럼 굳어 엉덩이와 관절에 생긴 굳은살이 몸무게마저 원망하는 실정이다”고 말했다. 사홍씨는 서울에 오르내리는 정기 검진 기간이 갈수록 단축되는 것이 안타깝다. 100여만 원의 검진비와 교통비도 문제지만 갈수록 불편해 지는 몸이 세상 밖으로 밀려나는 듯해 속상한 마음을 감추기 힘든 것이다.
영훈씨는 “중증 장애인에게 현실적으로 선택의 영역이 적다. 가족이 더 이상 아프지 않고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상 밖으로 소리를 지르고 싶다고 형이 말했지만 나는 희귀·난치질환 환자를 위해 신경을 써 주는 정부나 지자체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다만 누군가의 도움만 받기보다 스스로 뭔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일을 해 보고 싶다. 이런 면에서 활동약자를 위한 저상버스를 휠체어에 의지해 타기 힘든 현실은 안타깝다. 신경을 좀 더 써 줬으며 한다. 그리고 우리의 바람이 메아리가 돼 나이어린 근육병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