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毛의 땅에 싹 틔운 佛母 이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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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毛의 땅에 싹 틔운 佛母 이은설
  • 이재표 기자
  • 승인 2007.08.23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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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37살… 경력은 14년의 불화작가
“그리면 그릴수록 부처님과 가까워진다”
‘가는 붓끝이 떨림도 없이 삼베 화폭 위로 흐르며 저승세계를 다스리는 시왕(十王)의 자태를 그려낸다. 갑옷을 입은 사천왕의 근엄함은 한올 한올 억센 수염발로 표현한다. 보살들의 천의(天衣)는 부드러운 바람을 만난 듯 나폴거리고, 마지막 붓놀림이 자비로운 여래의 미소를 완성시킨다…’ 불화를 그리는 불모(佛母)가 탱화를 완성시키는 과정이다.

불화는 과거에 화승(畵僧), 즉 그림을 그리는 스님들의 몫이었다. 최고의 경지에 오른 화승은 금어(金魚)라고 부르며 대접했다. 이는 불화가 예술의 영역이기보다 철저한 구도의 과정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던 것이 20~30년 전부터는 재가불자, 특히 여성 불자들이 붓을 들어 불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오히려 이들이 본류가 됐다. ‘불모’라는 이름과 제대로 들어맞게된 셈이다.

사진=육성준기자
청주시 흥덕구 사직1동에 있는 가람불교미술원의 이은설 원장은 불모치고는 어린 축에 드는 37살이다. 그러나 대학 시절에도 미술(산업디자인)을 전공했고, 불화를 그린 경력만 14년에 이른다. 산업디자인을 통해 갈고닦은 탄탄한 기본기는 세밀한 선긋기가 바탕이 되는 불화의 세계와 말발굽의 양 끝처럼 멀고도 가깝다.
그렇다면 대학을 졸업한 뒤 광고회사에 근무했던 이 원장이 상업성의 극치인 선전미술의 세계와는 정반대편에 있는 불교미술로 옮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이 원장은 이에 대해 “생계를 위한 직업으로서 불화작가는 매력이 없다. 하지만 그리면 그릴수록 마음이 편안해지고 ‘부처님과 가까워진다’는 생각 때문에 불화에 매달린다”고 말했다. 어느새 그에게 있어서도 예술이 곧 구도의 과정이 되어버린 것이다.

불화를 배우다 서울에서 만난 남편
이은설 원장의 고향은 서울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 1992년 광고회사에 근무할 때만 하더라도 불교미술의 길로 들어서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불교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시절부터 어머니 치맛자락을 붙잡고 산문을 드나들었지만 자신의 전공을 신앙과 연결시키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원장을 불모의 길로 이끈 사람은 평소 가까이 모시던 충남 공주시 송학사의 도우스님이었다. 스님은 이 원장에게 전공을 살려 불화를 배워볼 것을 권했고, 취업 1년만에 한국불교태고종의 종립대학인 동방불교대학 불교미술과에 입학했다.

이 원장은 여기에서 한 명의 스승과 한 사람의 길동무를 만난다. 스승은 근세 최고의 금어로 추앙받던 고 만봉스님(2006년 5월 입적)의 아들인 무형문화재 단청장 전수교육 보조자 이인섭 선생이고, 길동무는 1995년 결혼식을 올린 남편 유병관(41)씨다.

이 원장과 남편 유씨는 불화를 배우는 과정에서 사랑을 꽃피웠으며, 1995년 결혼과 함께 남편의 고향인 청주로 내려왔다. 대학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한 남편 유씨는 고건축물 등 문화재 수리 전문기술자로 건설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이 원장은 “남편이 먼저 불화를 배웠지만 솔직히 업(業)으로 삼을 만큼 솜씨가 뛰어나지는 않다”면서 소리없이 웃었다. 그러나 유씨의 해명은 “솔직히 불화를 그리는 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생활전선으로 나섰다”는 것이다.

어찌 됐든 남편은 주로 절집의 기둥과 서까래를 만지고, 아내는 단청옷을 입히거나 탱화로 법당을 장엄하니 같은 길을 걷는 길동무가 된 것은 분명하다.

‘21세기 정토장엄’이 평생 화두
이 원장이 동방불교대 불교미술과에 들어가면서 처음 붓을 든 것은 1993년 경복궁 경회루 단청 모사(模寫)다. 단청은 최소한 10명이 팀을 이뤄 작업을 하는데 이 가운데 일원으로 참여한 것이다. 이후 이 원장은 동아리 활동을 통해 충남 공주 송학사의 아미타회상도, 청주대 비각 안내문 단청, 충주 진여원 아미타후불도 등을 봉안한다.

이 원장이 가람불교미술원을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활동에 나선 것은 2000년부터다. 충주 단호사 영산회상도 및 단청, 괴산 청운사 삼성각 단청, 육군 논산훈련소 교육관 후불도 봉안 등 전국을 무대로 활동했다. 그동안 그린 탱화만도 줄잡아 100여점에 이른다.

불교미술은 크게 불화와 단청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불화는 다시 탱화라고 부르는 예불용 불화와 걸어두고 보는 장엄용 불화로 나눌 수 있다. 이 원장은 장엄용 불화를 그리는 작품활동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2006년 ‘53불회도(가로 160× 세로 180cm)’로 불교미술대전에서 입선한 것을 비롯해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기능인협회전에서 수차례 상을 받았다. 53불회도(26면 큰 사진)는 아미타불이 출현하기 이전의 과거불들을 그린 것으로, 중생의 극락왕생을 바라는 서원을 담은 것이다.

이 원장은 “장엄용 불화도 수백여점 그렸는데 현재 남아있는 것은 10여점 정도에 불과하다”며 “사찰의 형편을 봐서 돈이 없어도 해드렸고, 대부분 가격을 매겨 판매하기보다는 상대가 제시하는 액수에 맞춰서 드렸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또 “그러다보니 어려운 시절도 있었지만 한번 더 그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생각에 감사히 여겼다”고 강조했다.

그림을 그리지만 마음을 닦는다
그림을 좀 그려봤다고 처음부터 불화를 그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초본 위에 한지의 일종인 순지를 올려놓고 비치는 모양대로 먹선을 따라 그리는 ‘등긋기’ 과정을 거쳐야 한다. 초등학생들이 습자종이를 지도 위에 올려놓고 본을 뜨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하기를 통해 숙련의 단계에 이르는 것이다. 처음에는 시왕초를 그리고, 다음에는 보살초, 사천왕초, 부처님초를 그린다.

탱화 전문가이자 카피라이터, 홍보전문가인 미국인 브라이언 배리가 1980년 사찰 탱화에 반해 만봉스님을 찾아갔을 때 스님이 ‘먼저 시왕초 3000장을 그려오라’고 시켰다는 것은 불화의 세계에서 유명한 일화다. 저절로 붓이 움직일 수 있는 경지에 이를 때까지 일단 등긋기에 몰두하는 것 자체가 사불수행(寫佛修行)이라고 일컬어지는 일종의 수행 방편인 것이다.

그 다음 과정이 채색이다. 불화나 단청의 채색 기법은 삼국시대의 고분벽화에서부터 이어져내려오면서 동서양의 채색기법을 반영해 독창적인 형식으로 발전한 것이다. 채색에 사용하는 물감은 돌가루를 이용해 만든 분채나 석채, 또는 금분, 은분 등에 아교를 섞어 쓰는데, 그 가격이 상상 이상으로 비싸다. 엄지손가락 만한 봉채(棒彩·안료에 아교를 섞어 분필모양으로 굳히 물감)가 7000원인데, 이를 이용해 채색할 수 있는 면적은 기껏해야 10~20㎠ 정도다.

이 원장은 “예불용 불화는 격식에 맞게 전통적인 구조로 채색을 하고 장엄용 불화는 최대한 회화적 기법을 응용해 그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10여년 걸릴 각오, 화엄경 사경중
이은설 원장의 불화작업은 새벽 5시쯤 집에서 시작된다. 향운(香雲)을 피워 정신을 맑히고 삼배와 독경을 마친 뒤 그제서야 붓을 든다. 낮에는 가람불교미술원에서 또 다른 작업을 하고 화·목·금요일은 후학들에게 불화와 단청을 가르친다. 가람불교미술원의 불화 및 탱화 교육은 1년 과정으로 진행되는데, 현재까지 15명이 거쳐갔다. 재료비까지 포함해 한달 수강료가 5만원이니 이 역시 돈을 벌자고 하는 일로 보기는 어렵다. 불화의 불모지였던 청주에서 불모(佛母)의 싹을 틔우고 있는 셈이다.

이런 노력들이 결실을 맺어 올해 부처님오신날에 즈음해 청주에서 불교미술전시획가 열리기도 했다. 5월21일부터 25일까지 청주예술의전당 전시실에서 청주지역 불화작가 12명이 작품전시회를 연 것이다. 이들은 이 행사를 계기로 충북불교미술인회(회장 이희영)를 결성했다. 불교미술인회 이희영 회장은 단청장 후보인 박정자 선생으로부터 불화를 사사하고 20년 가까이 불화를 그리고 있는 베테랑이다.

이 원장은 최근 고려시대 화엄경 목판본을 베끼는 사경을 시작했다. 국보 202호인 화엄경 목판본 위에 순지를 올려놓고 그림은 따라 그리고 글씨는 사경을 하는 작업이다.
이 원장은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리지는 모르지만 이 일을 꼭 마무리하고 싶다”며 “특히 그림은 회화적으로 풀어서 채색을 하는 등 단순 모방의 수준을 넘어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단청
붉고 푸른 색들의거침없는 향연


단청의 색은 강렬하다. 청색, 적색, 황색, 백색, 흑색 등 원색을 거침없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단어 자체도 ‘붉을 단(丹)’과 ‘푸를 청(靑)’으로 구성돼 있다. 단청의 기원은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하지만 삼국시대 고분벽화를 장식하고 있는 문양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강렬한 색도 색이지만 단청을 보는 또 하나의 눈맛은 기묘하고 화려한 문양이다. 단청의 문양은 기하문, 당초문, 동물문, 식물문, 길상문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무의미한 반복처럼 보이는 그 속에 우주의 삼라만상이 다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이 서로 엇겨루는가 하면 거북등과 같은 육각형이 모이기도 한다. 당초문에는 포도 줄기나 싸리 줄기가 기품 있게 형상화돼 있다. 구름도 있고 꽃도 그 안에 있다.

단청은 존귀함을 상징한다. 궁전의 권위와 위풍을 자랑하고, 법당을 장엄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건축물을 오래 보존하기 위한 실용적인 목적도 있다. 특이한 것은 단청이 우리나라에서 유독 발달했다는 것이다. 중국은 석굴의 불상을 채색하기도 하지만 문양이 없다.

또 황금색이나 붉은색 일변도로 위압적인 느낌을 준다. 일본은 적색과 검정색을 주로 사용해 화려함이 없다. 동남아의 사원 역시 황금색이나 단색 계열만을 사용해 단조롭다. 이에 반해 한국의 단청은 화려한 색에 다양한 문양이 더해져 추종을 불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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