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으로 별난 동호인 모임, 하이다이빙의 고수
10m 플랫폼에서 제비처럼 나는 것은 ‘담력의 힘’

날개가 없는 인간은 왜 추락하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는 것일까?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이 독특한 취미세계에 대해 의아해하지만 추락하는 즐거움에 빠진 사람들은 좀 더 높은 곳으로, 더욱 자극적인 추락에 탐닉한다.

추락하는 레포츠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것은 번지점프다. 번지(bungee)란 탄성이 있는 고무를 일컫는 것으로, 이 고무밧줄을 다리와 허리에 묶고 일정한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것이다. 원래는 남태평양의 어느 부족이 성인식 때 담력을 시험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라는데, 뉴질랜드 퀸즈타운에 있는 번지점프대의 높이는 무려 47m에 이른다.

인간이 보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기 위해 선택한 장소는 하늘을 나는 비행기다. 고도 3000m 이하를 저속으로 운항하는 비행기에서 패러포일 낙하산에 의지해 뛰어내리는 항공스포츠가 스카이다이빙이다. 최대한 자유낙하를 하다가 삶과 죽음의 경계가 가까워지면 낙하산을 펴는 것이 스카이다이빙의 매력이다.

그러나 가장 원초적인 추락은 그냥 물 위로 뛰어내리는 것이다. 번지점프나 스카이다이빙은 고무밧줄과 낙하산이라는 안전장치가 있지만 하이다이빙은 추락의 도착점이 ‘물’이라는 것 외에는 어떠한 장비나 안전장치도 없다. 악마의 섬에서 자유를 찾아 격랑 속으로 뛰어든 빠삐용처럼 몸을 내던지는 것이다.

물 속으로 뛰어드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몸을 일직선으로 세워 다리부터 입수하는 기초입수부터 시작해 추락하는 순간 몸을 비틀거나 회전하는 등 다양한 난이도의 낙하를 시도하는 것. 또 똑바로 서는 것을 기본으로 구부리고, 앉고, 물구나무서는 등 다이빙대(플랫폼) 위에서의 기본자세도 다양하다. 물론 뛰어내리는 높이로 난이도를 조절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물을 정복한 스포츠맨
충북학생수영장(청주농업고등학교 내) ‘하이다이빙동호회 퐁당(이하 퐁당)’의 회원인 강병화(41)씨가 하이다이빙을 즐기는 이유는 ‘짜릿함’ 때문이다.

해병대(557기) 출신인 강씨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배우기 시작한 합기도를 비롯해 쿵푸(우슈), 검도 등 격투기의 유단자다. 복싱도 수준급이고 한때 보디빌딩에 몰두하기도 했다.

강씨는 자신의 운동벽(運動壁)에 대해 “각종 격투기는 물론이고 구기 종목도 좋아해 조기축구회 멤버로도 한동안 활동했다”며 “보는 것보다는 직접 부딪치며 땀흘리는 것에서 쾌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던 강씨가 물과 친해진 것은 10년 전 수영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수영에 열중하던 강씨는 대부분의 퐁당 회원들이 그렇듯이 마스터(master)급의 수영실력을 이미 갖춘 상태에서 하이다이빙의 세계를 곁눈질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강씨가 이용하던 충북학생수영장은 국내 최고 수준의 하이다이빙 시설을 갖추고 있는데, 국가대표 선수들의 전지훈련장이나 강사 이상 전문가들의 전용시설이어서 강씨와 같은 아마추어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간절히 바라면 현실이 된다’는 말처럼 어느날 꿈이 이루어졌다. 하이다이빙 선수 출신의 강사를 지도자로 초빙해 동호회가 결성된 것이다.

강씨는 하이다이빙에 대해 “사람들의 편견과 달리 수영보다 운동량이 훨씬 많은 것 같다”며 “계속 새로운 자세에 도전하면서 온몸 구석구석을 자극하게 되고 그럴 때마다 고통스러울 정도의 근육통에 시달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하이다이빙 동호회는 매주 한번 모임을 갖는데, 강씨의 운동시간은 보통 2~3시간, 다이빙 횟수는 50~80회 이상이다.

10m 다이빙은 실력이 아니라 담력
하이다이빙 플랫폼은 3m, 5m, 7.5m, 10m 등 4단계로 이뤄져있다. 퐁당 회원들은 대개 5m 플랫폼을 이용해 훈련을 하는데, 초보자나 여성회원들은 3m에서 기본기를 갈고닦는다.

70명에 이르는 회원 가운데 최고 높이인 10m 플랫폼에서 뛰어내릴 수 있는 고수(高手)는 강씨를 포함해 3명 정도다. 10m는 인간의 극도의 공포를 느끼는 높이로, 아파트 4층 정도에 해당된다. 10m 다이빙의 매력은 상대적으로 긴 체공시간 때문에 다양한 기술을 시도할 수 있고, 도움닫기를 이용해 뛰어내릴 경우 새처럼 활공하는 묘미도 느낄 수 있다는 것.

강씨는 취재를 위해 충북수영장을 찾은 8월9일에도 5m 다이빙으로 몸을 푼 뒤 10m 다이빙에 두 차례 도전했다. 결과는 실패와 성공이 반반. 첫 번째 시도에서는 입수 순간 ‘철퍼덕’하는 소리가 크게 울려퍼져 회원들이 긴장할 정도였다.

잠시 후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낸 강씨의 윗 입술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강씨는 주저함 없이 2차 시도에서 나서 제비처럼 날며 멋진 입수에 성공했고 환호성과 함께 박수가 터져나왔다.

강씨는 “자세가 좋을 때에는 활공하는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반면 잘못 뛰어내리면 순식간에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고 설명한 뒤 “카메라 촬영 때문에 순간 긴장해 실수를 했다”며 멋쩍게 웃었다.
10m 다이빙은 상황에 따라 예상치 않은 부상이 뒤따를 수도 있다. 강씨는 “뒤로 떨어졌을 때에는 몇 초 동안 정신을 잃을 정도의 충격을 받기도 한다”며 “직접 경험한 적은 없지만 골절이나 장파열 등 심각한 부상을 입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2005년부터 하이다이빙을 배우기 시작한 강씨가 10m 플랫폼에 서기까지는 꼬박 1년이 걸렸다. 강씨는 “전문적인 기술은 부족하지만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묘미 때문에 10m 다이빙을 즐긴다”며 “실력은 몰라도 담력은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너무나도 특별한 동호회 ‘퐁당’

‘스포츠를 좋아한다’은 말은 그 의미가 모호하다. 단순히 보는 것만 좋아할 수도 있고, 직접 땀흘리며 뛰는 것을 좋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이다이빙은 그런 측면에서 즐기기보다는 보는 스포츠에 가깝다. 전국적으로 하이다이빙 동호회가 단 2개(충북학생수영장, 서울 잠실수영장)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이는 또 퐁당(회장 정인호·46)이 특별한 이유다. 퐁당은 2005년 1월 20여명을 회원으로 출발해 현재는 70여명에 이른다. 충북학생수영장 다이빙풀이 선수전용 시설이기 때문에 동호회 출범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하이다이빙 선수 출신의 수영강사 조성곤(34)씨가 지도자로 나서줘 출범이 가능했다. 다이빙풀의 1회 입장료는 1만원이지만 수영장 측도 이들의 열성에 호응해 4000원으로 대폭 삭감하는 특전을 베풀고 있다.

퐁당은 목요일과 토요일을 번갈아가며 매주 1차례 수영장 정모를 갖는다. 이들이 더욱 끈끈하게 만나는 것은 정모 이후에 갖는 술자리나 지나치게 잦은 번개(즉석모임)를 통해서다. 금방 만나고도 아쉬워 인터넷 카페(cafe.daum.net/cjhighdibing *원래 다이빙의 영문철자는 diving)를 통해서도 온라인 모임을 갖는다.

정인호 회장은 “직장인, 자영업, 학생을 비롯해 군인 등 특수한 직업을 가진 회원도 있다”며 “연령층도 20대 초반부터 50대까지 다양하게 포진돼 있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또 “충북은 물론 대전, 전주에서까지 모임에 참여하는 회원들이 있다”고 자랑했다.

수영팬츠 하나면 ‘준비 끝’

하이다이빙은 시작에 필요한 준비물이 가장 적은 운동이다. 가벼운 등산도 등산화와 등산복이 필요하고, 마라톤을 하더라도 복장과 운동화가 필수다. 이에 비해 하이다이빙에 필요한 것은 수영팬츠 한 장이다. 실내수영장을 이용하는 수영 종목에는 수영모자가 필수지만 다이빙은 이 마저도 필요 없다.

수영팬츠의 가격은 천차만별이겠지만 동호인 수준의 하이다이버들이 굳이 비싼 수영복을 구입할 필요는 없다. 강병화씨는 “1~3만원 짜리 수영복만 있으면 언제든지 하이다이빙을 시작할 수 있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준비물과 시작은 간단하지만 충북학생수영장의 다이빙풀은 전국 최고 수준이다. 5m나 되는 깊은 수심에다 우수한 수질, 적절한 수온(28도)을 유지하고 있으며, 입수 지점을 나타내는 기폭장치도 갖추고 있어 국가대표 선수들이 전지훈련장으로 상용할 정도다.

정인호 회장은 “청주지역에 이처럼 훌륭한 시설을 갖춘 다이빙풀이 있다는 것은 하이다이빙 동호인들에게 커다란 행운이 아닐 수 없다”며 “더 많은 동호인들의 참여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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