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큰일 났어.”
1987년 어느날 ‘근무시간’에 자기 방을 들른 모 일간지 기자에게 무심코 던진 검찰 고위간부의 고뇌에 찬 이 한마디가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 놓을 줄은 당시 아무도 몰랐다. 어쨌거나 사물을 바라보고 동시대의 흐름을 포착하는 눈이 누구보다 예민한 그 기자는 검찰의 말을 듣는 순간 ‘뭔가 있구나’하는 판단과 함께 전율이 흘렀을 것이다.

“그러게 말이에요. 요즘 경찰은 정말 겁이 없는 것 같아요.” 사건현장을 오래 지켜본 기자의 본능적 후각에서 나온 재치있는 응답은 ‘나도 사건의 내막을 알고 있다’는 메시지로 해석됐고, 검찰간부의 입에서 “글쎄 경찰 조사과정에서 죽은 학생이 서울대생이라지?”라는 무의식적 ‘토로’를 이끌어냈다. 87년 세상을 들끓게 했던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은 우연히 포착한 단서를 붙들고 집요하게 추적한 기자의 치열한 정신이 만들어낸 특종이었다. 이 사건으로 서슬퍼렇던 군사정권은 6·29 민주화 선언을 통해 국민에게 항복해야 했다.

바로 그 시절은 기자가 지방지의 햇병아리 수습기자로 막 입사했을 때였다. 87년 6월 C일보에 취재기자로 입사하자 마자 6월 민주항쟁의 역사적 현장을 선배를 따라 지켜보는 행운(?)도 가졌고 그해 12월 16년만에 직선으로 치러진 대선의 유세현장 한 복판에도 서 있을 수 있었다. ‘지랄탄’이 난무하는 최루가스도 더 이상 고통이 되지 않았다. 기자 역시 얼굴을 알 수 없는 어느 선배기자의 특종이 이끌어낸 새 시대의 개막현장을 환희에 젖어 만끽했던 것이다.

기자들에게 특종은 존재의 이유로 착각될 만큼 매력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런 ‘대박’류의 특종은 평생을 좇는다고 쉬 낚이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선배들은 체념의 미학을 일찌감치 깨달았는지 “특종도 좋지만 오보만큼은 하지말라”는 명언을 후배들에게 남겼는지 모른다. 특종 욕심에 눈 멀어 사실을 왜곡하거나 부정확한 기사를 쓰지 말라는 충고인 것이다.

충청리뷰는 어느 언론사 못지않게 오보정정과 반론보장에 인색하지 않다고 감히 자부한다. 자기 과오를 떳떳이 밝힐 용기조차 없는 언론은 타자에 대해 비판할 자격도 없다는 믿음에서다. 그러나 더 중요한 명제는 애초부터 함량미달의 기사나 악의 또는 미필적 고의에서 비롯한 사실왜곡 보도를 하지 않는 것일 것이다. 불편부당하고 정확한 보도는 언론 스스로 치열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확보해야 할 생존의 전제조건인 까닭이다.
이런 점에서 현 정부가 언론을 상대로 오보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나선 것은 그 배경이 무엇이든 상당한 타당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산적한 국정현안중에 이 문제가 최우선 순위의 아젠다로 운위돼야 옳은 가에 대해선 전폭적 동의를 표할 수만 없음도 토로해야 겠다.

근무시간대에 공공기관의 사무실 취재를 꼭 불허해야 하는 가도 논란대상이다. 국민으로부터 봉급을 받으며 공무를 대리수행하는 공무원들은 그들이 일을 제대로 하는 지 감시받을 위치에 있다. 국민은 세금을 부담하는 만큼 알권리를 갖고 있다. 더구나 관공서가 공무원의 사유물은 아니지 않은가. 언론도 변해야 하지만 언론이 까다롭고 비우호적이라고 적대적 존재로만 보려는 권력의 언론관도 경계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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