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이, 일등견, 도태견 등 견공식구만 여섯

가맹점 욕심 버리고 참 애견인 확산에 역점

급격한 도시화에 따른 아파트 생활권 확대는 애견 환경에 급격한 변화를 불러왔다. ‘컹컹’ 짖는 집 지킴이들은 줄어든 반면, ‘캉캉’ 짖는 소형견들의 사육 붐이 일어난 것이다. 문제는 집 안에서 개를 기르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다는 사실이다.

▲ 사진=육성준기자
시도때도 없이 신경질적으로 짖어대는 것도 문제고 예상치 못했던 털갈이에 당혹스러워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결정적으로 배변습관을 제대로 들이지 못할 경우 기저귀를 채울 수도 없는 마당에 기약없는 신경전이 시작되기 마련이다.

사람과 달리 건강보험 혜택이 주어지지 않는 것도 문제다. 감기만 걸려도 하루 치료비가 2~3만원, 수술이라도 해야하는 중병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젖도 떼지 않은 강아지를 데려다 기르다가 병들면 내다버리는 ‘견명(犬命)경시 풍조’가 IMF 이후 사회문제로 비화되기도 했다.

그래서 말인데 집개를 애완동물이 아니라 ‘동반동물’ 혹은 ‘반려동물’로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울고, 보채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고 해서 아이를 구박하지 않듯이 애완견(愛玩犬) 역시 한자 뜻풀이대로 단순히 ‘아끼고 데리고 노는’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청주시 흥덕구 수곡동에서 알퐁스 애견을 운영하는 고혜련(28)씨는 순전히 개가 좋아서 애견 트리머(미용사)라는 직업을 택한 경우다. 10대 중반 부모님께 때를 써서 치와와 잡종견을 기르기 시작했지만 예상치 못했던 이별이 그를 애견인의 길로 이끈 것이다.

고씨의 첫 강아지의 이름은 ‘사리’였다. 굳이 주인의 성(姓)을 따라 붙여 ‘고사리(高사리)’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고씨와 함께한 시간은 1년반 정도였다. 어느날 친지들에 의해 쥐도 새도 모르게 ‘식용(食用)’으로 세상과 결별하게 된 것이다.

고혜련씨는 “사리와 생각지도 않은 이별을 하게 되면서 애견 트리머의 길을 걷기로 마음을 굳혔다”며 “처음에는 생소한 직업이라 부모님의 반대도 심했지만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린 상태였기 때문에 굽힐 것이 없었다”고 말했다.

2001년 초, 고씨는 22살의 나이에, 청주시 흥덕구 사직동 애견거리에 있는 대형 애견센터에서 견습 미용사로 첫발을 내디뎠다. 처음 시작한 일은 견공들을 목욕시키는 일이었다. 소형견을 기준으로 애견미용에 걸리는 시간은 약 2시간 정도. 털을 밀고 귀청소, 발톱손질 등을 마친 뒤 샴푸, 드라이를 거쳐 다듬기로 끝을 맺는다. 스탠다드 푸들이나 쟈이언트 슈나우져 같은 비교적 큰 견종은 3~4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그러나 일의 숙달 정도에 따라 똑같은 과정이 1시간 안에 끝나기도 하는데, 손재주가 능한 고씨는 일찌감치 이 일에 적응해 1년여 만에 강원도 강릉에 있는 지점의 애견 트리머로 발령을 받는다. 그로부터 1년이 흐른 2003년 7월 고씨는 청주에 ‘알퐁스애견’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애견숍을 개업하게 된다.

전국의 애견미용대회를 제패하다
고혜련씨가 애견인 사회에서 이름을 날리게 된 것은 (사)한국애견인협회가 주최하는 각종 대회에서 괄목할 만한 성적을 거뒀기 때문이다. 고씨는 2003년부터 애견미용대회에 출전해 2006년 4월 제50회 대회 대상 수상 등 해마다 수상 실적을 거둬왔다. 고씨가 특히 자부심을 갖는 것은 2006년 12월 애견미용 왕중왕전에서 금상을 수상한 것이다.

▲ 7년생 암컷 써니는 맹인안내견으로 이름난 골든리트리버다. 아파트에서 써니를 키우던 선배가 너무나 커버린 덩치를 감당할 수 없어 ‘키워달라’며 맡긴 이른바 버림이다. 그러나 보기와 달리 유순하고 영리한 성격에 복종훈련을 받은 써니는 알퐁스애견숍의 대표선수다. 써니를 보러 일부러 들르는 사람이 부지기수일 정도. 써니는 ‘앉아, 일어서’ 등의 명령어는 물론 주인이 짖으라는 횟수에 맞춰 짖을 정도로 잘 훈련돼 있다.
고씨는 이같은 실적을 바탕으로 2006년 3월부터 1년 동안 공주영상대학 애견코디학과에 겸임교수로 출강했으며, 올 2학기부터 전북지역의 전문대학에 출강을 앞두고 있다.
고씨는 또 2006년 8월부터 애견숍 안에 애견미용학원을 개원해 지금까지 10여명의 제자를 배출했다. 애견 트리머 양성기간은 짧게는 6개월에서 1년 정도다.

애견미용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려면 크게 3박자를 갖춰야 한다. 일단은 좋은 모델견을 구해야 하고, 2시간 안에 미용을 마무리하는 손놀림과 어려운 난이도를 수용할 수 있는 손재주가 필요하다.

좋은 모델견의 기준은 적정한 체격과 모질, 모량, 잇몸교합 등이 표준에 가까워야 한다는 것. 고씨에게 연이어 수상의 영광을 안겨준 모델견은 3년생 수컷 푸들인 ‘키쿠’다. 키쿠는 뼈대있는 일본산 종견으로 고씨에게 애견미용을 가르친 스승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고씨는 “애견미용은 정성과 손기술만 따라준다면 21세기 최고의 유망직종이 될 수 있다”며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개를 얼마나 좋아하느냐”라고 말했다.
고씨는 그러나 “한가지 힘든 일이 있다면 애기(애견)들 식사 때문에 1년 365일 쉬는 날이 없는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임종 지키려 밤 세운 모정
성공한 애견 미용사의 수입은 남부러울 정도지만 애견에 대한 깊은 애정 없이는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경지다. 고씨의 경연대회 파트너인 ‘키쿠’는 몸값도 몸값이지만 ‘금이야 옥이야’ 자식 못지않은 대접을 받는다.
고씨의 사랑을 받는 것은 잘난 키쿠만이 아니다. 고씨가

▲ 3년생 수컷 키쿠는 고향이 일본인 푸들이다. 체격기준이나 모발, 모량, 잇몸교합 등에서 표준에 완벽히 일치하는 순종이다. 키쿠의 몸값은 웬만한 승용차 1대 값이다. 고씨가 전국 단위 미용대회에서 내리 큰상을 타는데 키쿠도 한몫을 했다. 고씨의 애견숍에 들르면 의자 위에 앉아있는 키쿠를 만날 수 있다. 엉덩이는 맨살을 드러내고 머리부터 등까지 랩핑을 한 모습이 다소 민망하지만 이는 털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한다.
직접 기르는 개는 현재 6마리다. 시각장애인 보조견으로 훈련을 받은 7년생 암컷 골든리트리버 ‘하니’는 커다란 덩치에도 불구하고 재롱이 능청스러워 각별한 사랑을 받는다. 하니는 친한 선배가 ‘더이상 키우기 어렵다’며 맡긴 이른바 ‘버림이’다.

슈나우저 천둥이(7년생·암컷)와 아더(15년생·수컷)는 모두 미용사 견습시절 도태될 위기에 있는 것을 데려다 키운 것이다. 천둥이는 어린 나이에 유난히 병치레가 심했고, 아더는 종견(種犬)으로 영화를 누리다 농장으로 팔려갈 위기에 놓였으나 고씨를 만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됐다. 농장으로 팔려간 개는 종견으로 끝까지 이용돼다 자연사 혹은 안락사에 이르고, 심지어는 식용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고씨는 “연로한 아더는 그동안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고 지금도 눈·귀가 멀어 느낌으로 주인을 알아본다”며 “지난 4월에는 임종을 눈앞에 둔 것 같아 목욕을 시키고 밤새 울며 지켰으나 용케 살아났다”고 말했다. 개 나이 15세는 사람나이로 80~90세에 이르는 고령이다.

이밖에도 남편이 대학에 다닐 때부터 기르기 시작한 시츄 망치(7년생 수컷)와 집 지킴이로 기르는 말라뮤트 칸(3년생·수컷)도 고씨와 한가족이다.
고씨는 “애견미용사의 길은 17살 때부터 가져온 간절한 꿈이었다”며 “정말 좋아하는 일을 평생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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