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모으기’ 등 눈물나는 국가적인 캠페인을 통해 간신히 IMF 위기를 넘겼지만 아직도 우리에게는 그때의 깊은 상처가 남아 있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중산층이 약화되면서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으로 양분되는 모래 시계형 사회, 20 대 80 사회, 투 네이션스(two nations) 등으로 표현되는 사회 구조이다. 불행하게도 이 소득 구조는 중산층이 고소득층으로 상승하지 못하고 대부분 저소득층으로 전락하면서 저소득층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형태다. 게다가 IMF 위기 후 벌써 5년이 지났건만 오늘날 경제 전문가들조차 그렇다 할 만한 경기 부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 우리를 더욱 불안하게 한다.
이런 소득 구조는 부동산 투기와 명품 구입에 몰두하는 한 사회와 그 반대편에서 그것을 보고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는 또 다른 한 사회를 만들었다. 또 수직적인 신분 상승을 꿈꾸는 사람들을 로또 복권에 열광하게 만들었고 어쩌다 당첨되어 거액을 짊어진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수년동안 몸담아 온 그 사회가 더 이상 안전 지대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그 사회와 철저히 단절시켜 버릴 수밖에 없는 정말 함께 하기 어려운 사회를 만들었다.
사회학자에 의하면 사회가 안정될수록 커다란 사회적 이동(social mobility)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즉, 안정된 사회에서는 수직적 신분 상승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빠르게 고소득층 사회에 진입하려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저버리게 할 수도 있는 대목이지만 졸속의 폐단을 잘 아는 우리로서는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상당 기간 존속될 것 같은 모래 시계형 사회를 구성하는 이 두 집단이 사이좋게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기업에서 활용하고 있는 전략 중에서 경쟁적 포지셔닝 전략이라는 것이 있다. 이 전략은 본래 특정 기업이 경쟁사와 비교하여 경쟁 우위에 있는 자사 및 자사 제품의 강점을 내세워 이것을 소비자 마음속에 심어 놓은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 전략은 경쟁사가 자사의 강점을 이미 소비자 마음속에 심어 놓은 경우 경쟁적 열위에 있는 기업이 고려할 수 있는 전략적 대안을 제시해 줄 수 있어 더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런 경쟁적 포지셔닝 전략에는 몇 가지 대안이 있지만 그 중에서 자동차 렌탈업체인 아비스(Avis)나 인터넷 포탈 사이트인 엠파스(Empass)의 전략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장에 뒤늦게 진출한 아비스는 업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경쟁사인 허츠(Hertz)를 염두해 두고 “우리는 이등이지만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전략으로 허츠 못지 않는 세계적인 자동차 렌탈 기업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또 엠파스는 세계적인 인터넷 포탈 사이트인 야후(Yahoo.com)를 고려해 “야후에서도 못 찾으면 - 엠파스” 라는 경쟁적 포지셔닝 전략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무리하게 일등을 넘보지 않고 일등의 자리를 인정해 주고 자신의 포지션을 강화시키겠다는 전략이다.
경쟁적 포지셔닝 전략으로 인한 미학은 맨하턴 축제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미국 뉴욕의 맨하턴 거리에서는 해마다 연말이면 증시를 마감하는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그 해 주식으로 억만 장자가 된 사람에서부터 길거리의 거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이 이 축제에 참가하여 서로 축하해 주면서 함께 즐긴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상대적 우월감이나 상대적 빈곤감이란 없게 된다.
모래 시계형 구조는 우리의 소득 구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형 할인점과 재래시장 및 동네 구멍 가게의 경쟁 구도에서 우등생과 열등생의 관계에서 등등 우리 주변에서 수없이 많이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가 어느 집단에 속하든 경쟁적 포지셔닝 전략을 생각하면서 또박또박 걸어간다면 우리는 좀더 안정되고 여유 있는 삶을 살지 않을까. 걷다가 맨하턴에서와 같은 축제에 초대받게 될 때 상대적인 빈곤감이나 추호의 초라한 마음 없이 그리고 일그러지지 않은 반듯한 모습으로 즐길 수 있다면 그 또한 얼마나 넉넉하고 풍요로운 삶이 되겠는가.

-윤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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