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 때 대통령의 씨도 따로 있었다


옥천 이장들의 항변을 확대 해석하면 현 노무현정권에 강요되고 있는 아주 고질적인 고민일 수도 있다. 더 심하게 표현하면 악성 종양인 셈이다. 사실 ‘씨’논란은 지난 대선 때 이미 불거졌고 이를 공론화시킨 사람은 현재 독립기자로 맹활약하는 정지환씨(시민의 신문 편집위원)다. 당시 그는 <대통령의 씨가 어디 따로 있더이까>라는 책까지 내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그의 ‘씨’논란은 대선의 불공정한 게임, 이른바 양자대결을 이뤘던 이회창과 노무현에 대한 수구언론의 선택적 잣대를 질타하는 것이었다.

당시 보수 언론들은 줄타기와 양비론의 논조로 위장하면서도 이회창과 노무현후보의 성분 분석을 교묘하게 매치시켜 여론을 호도했다. 좋은 집안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란 이회창은 안정된 후보로, 가난한 집안에서 힘들게 배우며 스스로 세상과 부딪친 노무현은 정서가 불안한 후보로 부각시켰던 것이다. 이런 작위적 잣대는 지금도 현 정권의 반대파, 이른바 수구 보수진영에 의해 노골적으로 애용되고 있다. 집권 초기의 있을 수 있는 시행착오마저 번번이 ‘능력없는 집단의 예정된 과오’로 매도하는 것이다. 한나라당 정창화의원이 이장과 군수 출신인 김두관장관을 공개적으로 조소한 이면엔 바로 이런 잠재의식이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언론은 씨를 구분해서 접근
정지환씨는 자신이 쓴 책 서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우리 솔직히 까놓고 얘기해 보자. 만약 이회창씨가 안고 있던 수많은 문제들-부친의 친일부역 논란, 친형의 이중국적 논란, 부인의 호화주택 논란, 두 아들 병역면제 의혹, 손녀의 원정출산-을 노무현씨가 가지고 있었다면 과연 살아 남을 수 있었을까. 장담하건대 거대 언론은 그대로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고 노씨의 정치생명은 이미 끝났을 것이다’. 그는 이같은 불공정한 게임이 아무렇지도 않게 펼쳐지는 데에는 수구언론의 책임이 크다며 이들 수구언론과의 싸움을 공언하면서 이런 ‘발상의 전환’이 하나의 큰 흐름을 형성해 가고 있다고 규정했다.

이처럼 옥천군 이장들이 재점화시킨 ‘씨’ 논란은 수구세력들에 의해 앞으로도 노무현정권을 두고두고 괴롭힐 공산이 크다. 사회귀족들이 져야 할 도적적 책임에 대해선 관대하면서도 이들의 특권의식을 침해하는 것엔 이상하리만큼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의식의 식민화가 원인이다. 발상의 전환에 극도로 배타적인 지역사회도 마찬가지다.

옥천지역의 한 인사는 일련의 과정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처음 이장들이 성명서를 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어는 순간 보통일이 아니라는 느낌이 퍼뜩 들었다. 비록 명예직이지만 행정의 최말단인 이장들이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과거 식민지배와 천민자본주의의 굴절된 사회구조를 통해 귀족으로 등장한 특권층의 발호는 필연적으로 사회불평등을 야기하는데도 우리는 이에 너무 무감각하다. 옥천 이장들은 바로 이점을 일깨우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통령할 인물이 따로 있고, 장관할 사람 따로 있고, 이장할 사람 따로 있다는 발상이야말로 천박하기 그지 없다. 농촌의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일 치고는 엄청난 사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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