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훈시를 시작으로 어려운 여건을 이겨내며 농업을 발전시킨 독농가와 기발한 아이디어로 산업을 발전시킨 근로자들이 체험과 성공담을 발표하는 국가적인 대회다.
3번째 독농가로 등단한 하사용씨(河四容 청원군 강외면)는 가난 때문에 결혼 후에도 머슴을 살아야 했고 부인도 식모살이하며 돈을 모아 겨우 내 땅을 갖게 됐다.
그 땅에 벼농사를 지었고 임대한 땅에 새로 개발한 비닐 하우스 재배법을 실시했고 실패를 거듭한 끝에 한 겨울에 상추를 재배하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이런저런 성공담과 실패담이 이어지는 동안 참석한 사람들은 박수와 격려를 보내며 하씨의 어려웠던 시절에 모두 공감했고 대통령도 눈시울 붉혔다.
그래서 새마을 운동을 통해 전 국민이 꿈을 갖고 하나가 되었고 불꽃같은 열기로 우리나라는 차츰차츰 가난의 골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필자가 카메라를 메고 시골 이곳저곳을 다니며 새마을 사업이 진행되는 현장을 찾아가면 부락민들은 모두가 한 몸으로 마을 환경 개선에 열심히 일했다.
이들은 국가에서 지원해준 슬레이트로 초가 지붕을 벗기고 슬레이트 집으로 바꾸고 페인틀를 칠해 밝은 모습으로 바꾸어 나갔다. 또한 철근과 시멘트로 다리를 놓고 마을 안 길을 넓혀서 포장도 했다.
「새벽종이 울렸네 / 새아침이 밝았네 / 너도나도 일어나 / 새마을로 바꾸세 / 초가집도 없애고 / 마을길도 넓히고 / 살기 좋은 새마을 /우리 힘으로 가꾸세」박 대통령이 직접 작사 작곡한 새마을 노래는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 펴졌고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 남녀노소 우리 국민 모두가 애창했다.
물론 새마을 운동이 긍정적으로 사회 전반에 좋은 영향을 끼쳤지만 새마을 운동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도 적지 않았다.
특히 건설공무원들은 마을 곳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건설된 다리 공사 때문에 본연의 업무를 전폐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저런 잡음도 많았지만 새마을 운동이 조국 근대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주춧돌이 된 것만은 틀림없을 것이다.
1973년 장충체육관 전국 새마을 지도자 대회에서 박 대통령의 관심을 끌었던 독농가 하사용씨 집을 찾아간 것은 1974년 2월로 기억된다. 밖에는 하얀 눈이 쌓여 겨울 바람이 몰아쳐 추웠는데 하씨는 부인과 함께 비닐 하우스 속에서 상추 키우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하씨의 상추 농사는 겨울 동안 놀리는 땅을 임대해 비닐하우스를 치고 연탄 보일러로 보온해 줌으로서 여름에만 재배하던 상추를 한 겨울에 재배해 소득을 높였고 여름에 통일벼 벼농사와 겨울철 상추 농사로 벼농사의 3배의 소득을 올려 평생 소원인 자기 땅을 갖게 됐다며 서로의 손을 보듬어 주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얼마 안 있으면 우리나라의 새 지도자를 뽑는 대선이 치뤄진다. 여러 후보들이 각기 다른 정책으로 경쟁을 펼치며 선택을 기다릴 것이다.
유권자인 국민들은 그 중에서 누가 국가를 위해 진정으로 큰 일을 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를 결정할 것이다. 모쪼록 새마을 운동 같이 국가를 위해 올바른 정책을 내놓는 청렴하고 진취적인 지도자를 뽑아 우리나라가 새로운 증흥과 도약을 맞이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