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평문제의 출발점은 1914년 일제가 만들어놓은 잘못된 행정구역이었다. 청안군(옛 증평)이 하루 아침에 없어지고 괴산군에 귀속되면서 증평의 시련은 시작되었다. 이러한 잘못된 행정구역으로 주민들의 불만이 쌓이자 1991년 증평출장소가 개청되었다. 그런데 곧이어 시작된 지방자치시대를 맞이해 증평은 전국 유일의 지방자치 사각지대가 됨으로써 증평의 시련도 고조되었다.

그러던중 자치단체 설립운동의 도화선이 된 것은 1994년 11월 괴산군의회의 건의문 파동이었다. 당시 건의문은 증평이 괴산군 증평출장소가 되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건의문은 당시 지역사회에 큰 파장을 던졌고, 그 해 12월 증평번영회 주도로 규탄대회가 추진되면서 그 파장이 커졌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당시 지역구 의원이 내려와 무마시키기 위해 궐기대회를 취소시켜 버렸다. 이러한 인위적인 무마는 오히려 지역구민들을 자극했다. 지역의 젊은이들이 이에 자극되어 이듬해 4월 1일 증평시민회가 창립한 것이다.

증평시민회는 증평의 자치단체 설립을 목적으로 구성된 최초의 단체였다. 증평의 자치단체 설립운동은 전반기, 중반기, 후반기로 나눌 수 있는데 전반기는 증평시민회 주도로 추진됐고 중반기에는 시민회가 주도적으로 참여한 증평자치단체추진위원회가 중심이 됐다. 그리고 후반기에는 최근까지 증평발전협의회가 주도했다.

초창기 시민회가 추진할 당시 자치단체 설립운동에서의 애로사항은 전국적으로 이러한 예가 없어서 그 해결방안이 없다는 점이었다. 길도 없고 방향도 모르면서 길을 만들고 방향을 더듬거리며 찾아가는 일이 힘들었다. 그리고 자치단체 설립운동에 대한 주민들의 이해부족으로 인한 참여율 저조가 특히 힘들었다. ‘가만히 있으면 증평시가 될텐데 웬 난리 소동이냐’는 식의 반응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자치권 소외로 인한 피해사항들이 하나 둘씩 밝혀지면서 주민들이 점차 호응을 해왔다. 주민들의 호응이 점차 고조되자 이번에는 타 사회단체들의 시기가 시작됐다. ‘시민회가 뭔데 증평문제를 혼자 왈가왈부 하느냐’는 것이었다. 타 단체들의 시기와 질투가 고조되자 시민회에서는 증평자치단체추진위원회를 만들어 모든 사회단체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트기로 했다. 그래서 시민회가 나서서 증평자치단체추진위원회가 1998년에 설립됐다.

여기서 주도한 운동에 사회단체와 주민들의 호응이 높았으나, 이번에는 위원장이라는 감투를 놓고 싸움이 벌어졌다. 막상 위원장이 된 지역유지들은 낯 세우기에 더 열을 올리더니 결국 한 사람은 축협조합장에 출마하고, 그 다음 사람은 괴산군수 선거에 출마하는 모순된 행동을 보여줬다. ‘일하는’ 감투가 아니라 여기저기 출마하는 발판이 된 셈이다. 그래서 회의와 실망을 느낀 많은 단체들이 떠났고, 시민회도 증평자치단체추진위원회를 그만 두었다. 위원장이 괴산군수 선거에 출마해 낙방한 점에 대해 지역여론이 좋지 않자 이 단체를 번영회와 합쳐서 발전협의회로 만들었다.

중반까지 발전협은 활동이 저조하고 침체되어 많은 회원들이 떠났다. 그러던 중 2001년 가을에 계룡출장소를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의 발언이 도화선이 되어 다시 특례시를 설치하기로 방향이 정해졌다. 그러나 추진과정 중 증평군 설립이 더 용이하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 특히 2002년 대선 때 증평시민회가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를 통해 건의한 증평군 설립이 노무현 당선자의 공약 승락으로 다시 불이 붙은 것. 이러한 기회를 지역구 정우택 의원이 잘 활용해서 국회에서 증평군설립법안이 통과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운동을 시작할 때 괴산지역의 반발이 있었던 것처럼 증평문제는 또 다시 이해관계가 다른 정치인들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시련을 겪고 있다. 그리고 증평군의 출범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군수 자리를 꿈꾸는 지역유지들에 의해 실무작업이 우왕좌왕하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도 자치시대를 열어갈 지역주민들의 참여부족과 관치시대에 적응된 지역공무원들의 의식부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아직까지 무엇보다 힘든 일은 자치시대를 책임질 지역주민들과 공무원들의 의식개혁을 통한 주민운동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옳고 그름이 힘있는 지역유지들의 힘겨루기로 왜곡 굴절될 때면 아직도 증평군 추진에 대한 회의와 비애를 느낀다. 증평군 설립을 군수선거를 위한 것으로 이해하는 일부 지역유지들과 이에 따른 공무원들의 줄서기가 없어지고,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정신에 입각한 주민참여에 의한 자치시대의 꽃을 보고 싶다. 이러한 점에서 증평시민회의 진정한 자치시대 증평군 설립운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증평군 설립의 꿈은 아직 계속되고 있다.

-김영호 증평시민회 수석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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