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은 전신주 타기… 취미는 암장 타기
“세상은 떨어지면 낙오지만 암벽은 도전”

김홍문(46)씨의 삶은 대롱대롱 매달리는 인생이다. KT에서 인터넷과 전화 설치업무를 맡고 있는 김씨는 22년째 전신주를 타고 있다. 김씨는 또 스포츠 클라이밍(암벽 등반)의 베테랑이다. 1991년 청주실내체육관 주변에 인공 암장이 처음으로 만들어지면서 스포츠 클라이밍에 입문해 16년 동안 이 운동을 즐겨왔다.

김씨는 주 2~3회 청주시 상당구 방서동에 있는 실내 암장에서 실력을 가다듬고, 한달에 2~3차례는 실제 암벽을 기어오른다. 청원군 미원면 청석골 암장과 괴산군 청천면 화양동 계곡의 울바위는 김씨가 자주 찾는 자연 암장이다. 속살바위, 투구바위 등 250여개 루트가 있는 전북 고창군의 선운산 암장은 그가 추천하는 국내 최고의 암장이다.

▲ 사진=육성준기자
김씨가 스포츠 클라이밍의 매력에 빠져든 것은 오직 자신의 힘과 기술만을 이용해 늘 새로운 한계에 도전하는 성취감 때문이다. 최후의 안전수단으로 자일(seil)을 묶지만 이는 사고를 막기 위한 도구일뿐 암벽을 오르는 도전 자체에는 아무런 장비도 동원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씨는 스포츠 클라이밍의 매력에 대해 “암장에 오르기 시작해 중간에 떨어지지 않고 완등하는 기분은 축구에서 스스로 찬스를 만들어내 득점하는 순간과 비슷한 감동을 준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같은 암장을 반복해 오르지만 자신이 넘볼 수 없었던 난이도에 새롭게 도전하는 것에서 성취감을 느낀다”며 “세상살이에서는 매달리다 떨어지면 낙오자가 되지만 스포츠 클라이밍의 세계에는 스스로 정한 목표와 도전만이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세상살이보다 암벽 등반이 재미있는 이유다.

암벽등반에 대한 오해와 진실
우리나라만큼 등산이 대중화된 나라도 드물다. 청주만 하더라도 우암산, 것대산, 부모산 같이 널리 알려진 산은 물론 이름 없는 뒷동산에도 종일 등산객들이 몰려 등산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발길이 자꾸 새로운 길을 만들어낸다. 발길이 잦은 등산로는 풀씨도 싹을 틔우지 못해 일부러 윤을 낸 듯 반지라울 정도. 휴일만 되면 전국의 명산을 찾아다니는 애호가들도 부지기수다.

그래도 암벽 등반은 일반인들에게 생소하게 다가온다. 왠지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고 위험할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이다. 김씨는 이에 대해 “자신의 수준에 맞게 도전하면 되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고, 안전장비만 갖추면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김씨가 연습을 하고 있는 청주시 방서동 타기클라이밍센터(대표 민준영)의 경우 현재 약 100여명이 등록돼 있는데, 초등학교 1학년부터 50대 후반까지 연령층이 다양하다. 실내 암장의 경우 손잡이(홀드)가 촘촘히 박혀있기 때문에 남녀노소, 초보자들도 수평이동부터 시작해 난이도를 높여갈 수 있다.

잘 다듬어진 근육질의 ‘몸짱’만 암벽에 도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몸꽝’을 몸짱으로 만드는 것이 암벽 등반이다. 과체중인 사람의 경우 몇 달만 운동을 하더라도 7~8kg을 감량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김씨는 인터뷰를 과정에서 연습중인 한 여성회원을 가리키며 “무려 16kg을 뺐다”고 귀띔했다.
암벽 등반에 관한 또 하나의 오해는 손아귀나 팔의 힘이 세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막연한 추측이다. 김씨가 말하는 정답은 ‘그렇지 않다’다. 김씨는 “전신의 균형이 중요한 운동이고 처음에는 오히려 발기술이 주를 이룬다”며 “익숙해지면서 차차 몸 전체를 사용해 운동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신발만 있으면 시작할 수 있어”
그렇다면 당장 암벽 등반을 시작하는데 드는 비용은 얼마나 될까? 물론 초보자는 실내 암장에서부터 실력을 갈고 닦아야 한다. 이럴 경우 암벽화만 있으면 당장이라도 시작할 수 있다. 암벽화 값은 당연히 천차만별이다. 인터넷 쇼핑몰을 뒤지면 3~4만원대 암벽화도 수두룩하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장비인만큼 “6~7만원은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 김씨의 조언이다.

자연 암벽에 도전하려면 일단 장비를 더 갖춰야 한다. 안전벨트(하네스), 헬멧과 같은 기본적인 개인 안전장비를 비롯해 암벽에 박는 쇠못(하켄)과 여기에 연결하는 카라비너, 퀵드로우, 자일, 8자 하강기 등의 장비도 필요하다. 물론 개인장비를 먼저 갖추고 공동장비는 일단 함께 이용하면 된다. 김씨에 따르면 공동장비까지 일체를 갖추더라도 총비용은 100만원 정도면 충분하다.

실내 암장을 이용하는 비용은 월 5~6만원 선이다. 별도의 강습을 원할 경우 월 3~4만원을 더 내야하지만 암장의 분위기는 후배에게 기술을 전수하는데 인색하지 않다. 어찌 보면 고수들의 벽타기를 어깨너머로 배우는 것 자체가 최고의 강습이다.

김씨는 “실내 암장의 경우 떨어져도 안전에 문제가 없기 때문에 정해진 손잡이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코스에 도전할 수 있다”며 “혼자서 익히고 선배들의 조언을 듣는 것만으로도 실력을 키울 수 있다”고 밝혔다.

스포츠 클라이밍에 중독되다
청주지역의 스포츠 클라이밍 인구는 현재 약 500여명으로 추산된다. 방서동의 타기클라이밍센터(284-5014) 외에도 율량동에 다오름암벽등반(217-1900) 등이 실내 암장을 갖추고 있다. 1977년 한국인 최초로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고 고상돈씨를 비롯해 현역으로 활동 중인 국내 최고 수준의 여성 산악인 고미순씨를 배출한 청주대학교에도 인공 암장이 있다.

암벽 등반 마니아들은 ‘한번 빠져들면 헤어나올 수 없다’며 중독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남과 실력을 비교하기보다는 스스로 자기한계에 도전하면서 성취하는 것에 그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철저한 자기관리는 필수다.

또 하나 암벽 등반의 묘미는 오직 자신의 힘과 기술에 의존한다는 것. 자일은 암벽 등반에서 혹시 발생할 수도 있는 추락사고나 등반 후 하강 시에 이용하기 위한 것이지 암벽을 오를 때 사용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에 반해 세계적인 고산준령을 등반하는 이른바 원정등반은 개인의 실력은 기본이고 장비의 과학화가 뒷받침돼야 한다. 따라서 암벽 등반을 자유등반(free climbing)라고도 부른다.

김홍문씨는 암벽 등반의 중독성에 대해 실감나게 증언하고 있다. 2001년 대구에서 열린 볼더링(인공 암벽 등반) 대회에 출전했다가 큰 사고를 당해 한동안 운동을 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도 다시 암장을 타게될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는 것이다.

김씨는 “시설이 미비해 추락 당시 메트리스 사이에 팔이 끼면서 관절이 완전히 탈골되는 중상을 입었고 이로 인해 2년 동안이나 운동을 할 수 없었는데, 몸이 근질거려 혼났던 기억밖에 없다”며 “가파른 암벽에 매달려보지 않은 사람은 스포츠 클라이밍의 매력에 대해서 상상할 수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섹션 ‘쌍기역 ’을 시작하며…
‘미쳐야(狂) 미친다(及)’는 말이 있다. 푹 빠져야만 경지에 이른다는 얘기다. 충청리뷰는 일부 지면 개편에 따라 489호(2007년 7월20일자)부터 26~27면에 섹션 ‘쌍기역’을 편성했다. 쌍기역(ㄲ)은 ㄸ, ㅃ, ㅆ, ㅉ과 함께 한글 자음의 된소리에 해당된다.

또한 된소리는 거센소리와 함께 발음할 때 내는 힘에 따라서 ‘센소리’로 분류된다. 후두근육을 긴장시켜야 나오는 소리가 된소리고 숨을 거세게 해야 거센소리가 나온다. 그래서인지 쌍기역으로 시작되는 단어는 어감은 물론 그 의미도 ‘정도 이상’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꾼이나 끼, 깡 등이 대표적인 단어다.

섹션 쌍기역은 나름대로의 영역에서 경지에 이른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구성은 <꾼- 무언가에 미친 사람들> <꿈- 쓰러져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끼- 직업세계에 1인자가 된 사람들> <꼴- 사라져가는 원형에 매달리는 사람들> 등이다. 섹션 쌍기역은 독자와의 쌍방향성을 통해 풍부해질 수 있다.
(독자여려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250-0040)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