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남대 개방, 운신폭 넓히는 결정적 계기?
등거리 정치성향 유지로 위상 유지할 듯

청남대 개방의 가장 큰 수혜자는 물론 인근 주민들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떨어질 곶감은 지금으로선 예측하기 어렵다. 20여년의 고통을 감내한 현지 주민들이야 당장 가시적인 ‘약발’을 기대하겠지만 아직도 각종 규제와 장애물들이 산적한 상황에선 섣부른 기대가 오히려 부담스럽기까지 하다. 이미 개방에 따른 역기능적 측면을 지적하는 여론이 만만치 않다.
청남대 개방으로 정작 특수를 누린 사람은 따로 있다. 이원종지사다. 개방 행사가 열린 지난 18일을 전후로 이지사는 한꺼번에 세 마리의 토기를 잡았다. 현 정권의 실세들에게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었고, 권위주의의 상징물을 주민들에게 돌려주는 과정에서 순발력있는 처신으로 스스로의 이미지도 한껏 높였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최대 아킬레스건인 당적 이력에 대한 부담감을 해소시키는데 청남대 개방이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개방 전날 노무현대통령과 3당 대표의 청남대회동 때는 자신을 “배은망덕한 배신자”로 매도한 JP와도 골프를 함께 함으로써 구원(舊怨)을 조금이나마 터는 절호의 기회를 얻었다.

“이런 기회 돈 주고도 못 산다”
지난해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민련을 탈당한 이지사는 ‘집권 가능하다’고 판단한 한나라당에 입당한 전력 때문에 현 정부와도 원초적인 거리감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전후 관계를 잘 알고 있는 지역의 한 정치인은 “이지사는 청남대 개방으로 돈주고도 사지 못할 행운을 얻었다”고 평가했다. 그의 말은 계속됐다. “만약 청남대 개방이 아니었다면 대통령과 나란히 걸으며 담소하고 청와대 실세들과 대면하며 얼굴을 익히는 게 가능했겠는가. 재선에 성공한 이지사가 가장 힘을 받아야 할 시기에 뜻밖의 호재가 주어진 것이다. 청남대가 개방되기까지 그가 얼마만한 노력과 관심을 기울였느냐 하는 것은 둘째 문제다. 갑자기 앞마당으로 굴러 들어 온 호박을 어떻게 요리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지금까지는 모든 과정에 큰 잡음이 없었고, 때문에 이지사의 면면이 부각되는게 당연하다. 그러나 앞으로가 문제다. 청남대 개방에 따른 가시적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지금의 반짝 특수가 오히려 부메랑으로 다가 올 수 있다. 특히 기대에 못미쳐 문의면 현지 주민들의 민심이 이반될 경우 이지사의 운신은 아주 곤란하게 될 것이다. 현재 충북도가 주창하는 장기적인 개발효과론이 과연 이곳 주민들에게 얼마나 어필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

정치적 신념은 곤란하다
청남대 개방행사가 있던 날 이지사는 노대통령에게 청원군 남일면 고은 삼거리~문의면 소재지를 잇는 국도 확포장을 조기 완공해 줄 것을 건의했다. 이 사업은 당초 2008년 준공 예정으로 추진됐다. 만약 청남대를 찾는 관광객들이 몰릴 경우 현재 편도 1차선인 이 도로의 혼잡은 불문가지다. 청남대 개방에 맞춰 아쉬운 소리를 할 수 있는 호재였던 것이다. 노대통령으로부터 “긍정적 조캇로 화답받은 이지사는 이날 개방행사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상경, 건교부를 찾았다. 도청의 한 관계자는 “건교부와 협의할 다른 현안도 있지만 어쨌든 지사님이 탄력을 받은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청남대 개방에 앞서 지난 11일 유인태 정무수석이 청와대 비서진과 출입기자들을 대거 이끌고 청남대를 방문했을 때도 이지사의 움직임엔 힘이 들어 갔다. 공개된 자리에서 건배를 제의하며 “노무현!” 구호를 유도한 것도 이지사였다. 당시의 한 참석자는 “그런 순발력(?)에 익숙치 않은 인사들이 다소 썰렁해했지만 이지사의 분위기 리드는 아주 적극적이었다”고 기


억했다. 결정적일 때 소속 정당을 두 차례나 떠나며 지역에 파문을 일으켰던 이지사를 정당이나 정치적 신념을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어차피 의미가 없다. 이지사가 당적을 선택하는 기준은 항상 당선 가능성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에게 있어 정당은 군더더기일 뿐이다. 실제로 이지사의 정당활동은 무색무취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2000년 16대 총선 때 당시 자민련 소속이던 이지사는 선거 내내 청주권 자민련 후보로부터 원성을 샀다. 당시 모 후보는 “확 뒤집어 버리고 싶다”고까지 말할 정도로 불신을 나타냈다. 한솥밥을 먹는 처지에 물밑 지원을 바랐던 것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현직 광역단체장의 신분으로 정당활동은 어차피 제약받을 수 밖에 없지만 이지사 스스로 자발적 움직임을 꺼렸던 것이 분명하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 때도 이지사의 행보는 어정쩡했다. 인근의 모 광역자치단체장이 특정 후보를 노골적으로 도왔다가 구설수에 오른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한나라당의 입장에선 이지사 재선에 당이 결정적 도움을 준만큼 어느 정도 반대급부(역할)를 기대했으나 결과는 수준 이하였다. 이를 두고 당시 당내에선 “욕먹지 않을 만큼의 활동만 했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의 승리로 선거가 끝나자 이지사의 이런 운신이 오히려 주목받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당과는 불가근불가원이 상책
청남대 개방이 이지사에게 정치적 돌파구를 제공한 것은 분명하다. 측근들도 이 점을 강조한다. “행정수도이전과 호남고속철도 기점역 선정 등 지역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앞으로 이지사의 활동이 절대적으로 중요할텐데 이번 청남대 개방으로 이지사는 중앙인맥을 넓히는 부수적 효과를 얻었다. 지역으로선 좋은 조짐이다”고 분석한 한 인사는 앞으로도 청남대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가치가 있다고 내다봤다. 지방 정치권도 이지사와 청남대 사이의 함수관계를 주목한다. 각 정당과 특별한 친소(親疎)를 두지 않는 소위 등거리 처신이 더 강화될 것이라는 진단도 많다. 한 정당 관계자는 “이지사가 3선을 염두에 둘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이는 현실적인 여론만 봐도 판단이 선다. 그렇다면 아직 나이가 있는만큼 임기가 끝난 후 총선 출마 등 다른 방향으로 정치적 변신을 꾀할 수도 있다. 이는 결국 재선의 임기를 평탄하게 마쳐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지금 상황에서 특정 정당에 기운다면 어디 가능한 일인가. 그에게 있어 정당은 앞으로도 절대 무리하면 안 되는 대상, 어찌보면 갖고 있자니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버리기는 아까운 계륵(鷄肋)과 같은 존재일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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