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군 내수읍에 위치한 ‘웅보의 집’ 전경
범인검거 이번이 처음. 도난그림 대부분 공소시효 끝나
청각장애를 딛고 일어서 지난 60여년간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화가로 활약한 김기창화백이 향년 88세로 별세한지 1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 수십점에 이르는 사라진 미술품에 대한 수사가 활발히 진행중이다. 그러나 재단설립과정에서부터 최근까지 도난당한 운보선생의 작품에 대한 정확한 현황파악조차 안돼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미술사적 가치가 있는 운보선생의 작품관리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김기창 화백이 생존해 있던 지난 93년 ‘운보의 집’에서 대표작 15점을 도둑맞은 큰 사건이 발생하는 등 운보 김기창화백의 미술품 도난은 그동안 여러 번에 걸쳐 이루어졌다. 경찰은 지금껏 도난작품에 대한 단서 파악조차 못해왔다. 그러나 이번에 작품 도난에 대한 단서를 포착, 처음으로 범인검거에 성공함으로서 다른 도난사건에 대한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관리자가 작품훔쳐

청주 서부서에서는 18일 운보 김기창화백의 전시실에 보관중이던 수억원대의 운보그림을 훔쳐 3년이 넘게 보관해온혐의로 당시 운보전시실 관리인 이었던 정모씨(30·청원군 남이면)와 정씨의 범행을 도와준 정씨의 고향선배 김모(35·종업원 청주시 흥덕구 사창동)씨 등 2명에 대해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범행당시 정씨는 청원군 내수읍에 있는 운보의 집에서 지난 98년 6월부터 청소담당과 키관리 등을 하며 근무 하던 중 같은해 8월하순 새벽1시경 미리 준비하고 있던 열쇠를 가지고 운보화백 전시실로 들어가 그곳에 전시돼 있던 운보선생의 친필작품인 ‘점과 선 시리즈’ 120호(1993년작, 120㎝×180㎝) 2점을 훔쳐 내어 주차장에 세워 둔 김씨의 충북 84가 34×××호 트럭에 싣고 달아났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중 놀라운것은 작품을 관리해야할 전시실 관리자가 이런일을 했다는 점과 이번에 되찾은 고 김기창 화백의 친필작품을 관리하는 운보재단측은 범인이 잡히기 전까지 문제작품의 도난사실 조차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씨는 범행 후에도 1년여동안 아무 일없이 ‘운보화백 전시실’에 근무한 것으로 드러나 추가 범행에 대한 의혹마저 일고있다.
한편 이들은 훔친작품 2점을 김씨의 집에 3개월간 보관했다. 그러나 범행이 드러날까 두려워 그림을 다시 김씨 동서지간인 이모씨의 집에 보관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사망 후 팔아야 돈 된다?

이들이 그림을 훔친시기는 운보선생이 지병인 폐혈증과 고혈압 등의 병세 악화로 몸저누워있던 시기였다.
정씨등은 그림을 훔쳐낸 후 흥덕구에 있는 화랑등에 가격을 알아봤으나 한점당 4천만원정도의 가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실망, 운보선생의 사망 후에는 가격이 몇 배는 오를것이라고 예상하고 사망후에 팔기로 한다. 그러나 이들은 운보선생의 사망직후 그림을 바로 팔면 남의 눈에 띌까 두려워 팔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들어 그림을 산다는 사람이 있으면 부강에 있는 동서네 집에 데리고가 그림을 은밀히 보여주었다는것.
이 때문에 그림이 있는 장소가 서서히 알려지면서 김씨의 동서 이씨 또한 소문을 듣고 자신의 집에 보관하고 있는 그림이 김기창화백의 그림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는 것이다.
한편 상황이 이렇게 되자 겁이난 이씨는 청주 서부서에 그림에 대해 조사해 달라고 신고 했다. 청주 서부서는 이 신고를 받고 출동하여 이들이 훔친 2점의 그림을 압수, 운보의 집으로 가지고 갔다. 그러나 그곳에 있던 관리소장과 이사장은 처음에 그림을 보면서 “가져가라”며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운보의 그림인지 진위여부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형사는 “서울 아문재단 이사장으로 있는 운보선생의 아들 김완(54)씨를 불러 직접 확인을 하고 나서야 이것이 운보의 그림이라는 것을 알았다”며 “도난당한 그림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운보선생의 작품에 대한 관리가 소홀했다”고 말했다.
이들 그림이 진품인 것을 확인한 경찰은 동서인 이씨의 핸드폰을 추적, 김씨의 핸드폰 번호를 알아내 현재 김씨가 샤시공장에 다닌다는 것을 확인, 샤시공장으로 찾아갔으나 직원으로 부터“며칠동안 출근을 안했다” 는 말만 들었다. 사건조사가 이루어 진다는것을 눈치챈 것이다. 경찰은 잠복끝에 김씨를 체포했다. 조사결과 사업을 실패한 김씨는 샤시일도해가며 양계장을 운영하는 등 힘들게 살고 있다. 그리고 고향 후배인 정씨는 3급의 장애자로 ‘운보의 집’을 그만둔 후 김씨의 양계장에서 직원으로 일해왔다는 것이다. 서부서의 경찰관계자는 “이들이 생활이 어려워 지면서 운보그림을 훔쳐내어 팔려는 그릇된 생각을 한것 같다”며 “훔친물건을 사들인 사람도 그림이 자신의 소유가 될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고 말했다.


“도난그림, 대부분 공소시효 끝났다”
서부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이들의 여죄를 추궁하는 한편 정씨가 운보의 집에 근무하는 등 그림도난에 대한 비밀루트 등을 어느정도 파악하고 있다고 보고 이를 조사중이다.
그러나 지금에와서 이런 수고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도둑맞은 운보의 대표작 15점 등 대부분의 그림들이 이미 공소시효가 지나 범인들의 범죄행위는 이미 면죄부를 받게돼기 때문이다.
93년6월에 발생한 운보작품 도난 사건은 피해 규모뿐 아니라 잔혹한 수법때문에 세인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운보와 가족들은 사건 직후 도난작품 사진이 실린 전단을 수만장 제작, 전국화랑가 등지에 배포했다.
경찰측은 “도난그림은 반드시 되 찾아야 하지만 궂이 공소시효가 끝난 지금 그림들을 찾는다는 것은 행정력낭비”라고 보고있다. 현행법상 특수절도죄의 공소시효는 7년이다. 따라서 94년 이전에 도난당한 그림을 찾는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미 해외로 밀반출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상당수의 도난 작품이 장기간 햇빛을 보지 못하고 지하에서 밀거래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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