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교수 ‘정책자문’ 아닌 ‘얼굴마담’… 편가르기도

17대 총선 103명 출마해 34명 당선, 16대 7명의 5배
학계, 시민운동 등 중립영역에 대한 순수성 불신 증폭

인터넷 국어사전을 검색해보면 아예 ‘정치교수’라는 명사가 존재한다. 이 4음절의 명사에는 ‘교수 본연의 일보다 정치적 활동에 치중하는 교수’라는 주석이 달려있다. 교수 본연의 일이란 가르치는 것을 뜻할테니 정치교수란 정치활동에 빠져 수업에 충실하지 않은 교수를 일컫는 단어다.

대통령선거를 6개월 앞두고 충북의 지역사회도 교수들의 정치 참여를 둘러싼 여론의 온도계가 치솟고 있다. 교수들의 정치활동이 단순히 정치적 성향을 표현하는 수준을 넘어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 표명이나 외곽조직 참여 등으로 노골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임강사 이상의 교수들은 공무원, 혹은 준공무원의 신분이지만 행정공무원과는 달리 정당가입 등 정치활동이 가능하다. 이는 교수사회가 지닌 전문성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 전문성을 바탕으로 ‘사회·정치적 발전에 기여해 달라’는 기대감이 담겨있는 법적용이다.

그러나 그 방식에 있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교수는 강단에 서는 학자인만큼 적어도 현실정치에는 발을 담그지 말고 갈등에 대한 조정자나 심판자 역할에만 충실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지지후보를 둘러싸고 편가르기 양상까지 보이고 있는 교수사회의 정치화 현상을 집중 취재했다. ` / 편집자

▲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대학교수들의 직·간접적인 정치참여가 증폭되고 있다. 사진은 청풍비전 21 발기인대회. 왼쪽이 신방웅 전 충북대 총장.
대학교수들은 정치의 유혹에 노출돼 있다. 선거철이 되면 더욱 그렇다. 정책과 공약에 전문성을 확보하려는 차원에서도 교수의 전문성은 우대를 받는다. ‘자문’은 많은 교수들이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첫 단계다. 물론 철저하게 조언자 역할에만 그치고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교수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대다수 정치인들은 이왕이면 든든한 병풍을 원한다. 정치인이 각계각층의 명사들을 최대한 선거캠프 내·외곽에 포진시키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일부 교수들은 정책자문보다 이같은 ‘얼굴마담’ 역할에 더 신경을 쏟는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자신의 출마를 염두에 둔 포석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스타성을 갖추고 대통령 선거에서 ‘홍보맨’으로 활약한 대학교수가 이후 정치인으로 변신한 사례는 부지기수다. 콧수염을 기르고 ‘이게 뭡니까’를 연발했던 원로교수 K씨는 1992년 대선에서 국민당 정주영 후보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으며, 1996년에는 자민련 총선 선대위원장으로 활약하는 등 한동안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또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16대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뒤 2002년 대선정국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던 신바람 박사 H교수는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에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꿈을 접어야 했다.

홍보맨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대학교수들의 경우 결국 정치인 이전에 저명인사로 누렸던 대중적인 인기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궁극적으로는 현실 정치에 참여해보고 싶다”고 밝힌 도내 A교수는 “너무 시류에 영합하려는 것이 문제다. 일단은 자문하는 역할에 충실하다보면 언젠가 기회가 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도내 김종률, 강혜숙 의원 ‘현직 교수’
대학교수들의 정계진출은 2004년 실시된 17대 총선에서 두드러졌다. 17대 총선 출마자 1365명 가운데 7.5%인 103명이 교수였으며, 이 가운데 33%인 34명이 금배지를 달았다. 이는 16대 총선 당시 55명이 출마해 12.7%인 7명만이 당선된 것과 비교할 때 전체 규모와 당선 비율에 있어서 크게 높아진 것이다.

특히 17대 총선에 출마한 103명 가운데 31명이 비례대표였으며, 이 중 절반이 넘는 16명이 당선됨으로써 교수들에 대해서 사실상 ‘모셔오기’ 수준의 우대가 이뤄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역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17대 총선에서 청주대 무용학과 강혜숙 교수(정교수)가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15번을 배정받아 안전하게 당선된 것이다. 당시 열린우리당의 커트라인은 24번까지였다. 지역구(진천·음성·괴산·증평)에서도 단국대 법학과 김종률 교수가 탄핵역풍에 힘입어 정우택 현 충북지사를 누르고 당선됐다. 김종률 의원은 주로 변호사로 알려져 있지만 1996년부터 단국대에 재직중인 전임강사 신분이다.

대학교수 가운데 정규직은 전임강사, 조교수, 부교수, 정교수 등으로, 이들은 정치활동이 자유로운데다, 국회의원에 당선될 경우 국회법에 따라 교수직을 휴직처리할 수 있다. 실제로 두 의원은 2008년 5월29일까지 휴직처리된 상태이며, 다만 이 기간 동안 교수 급여는 지급되지 않는다.

안정된 신분이 정계진출 부추겨
어찌됐든 당선 여부와 상관없이 교수신분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교수들이 마음놓고 정치판을 넘볼 수 있는 물리적 조건 가운데 하나다. 정계에 입문한다고 교수자리를 내놓을 필요도 없고, 당선되면 휴직을 통해 임기를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임기 후 본인의 의사에 따라 자동복귀할 수 있다.

현행 선거법은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규제하고 있다. 선거법 9조 2항(공무원의 중립의무)에 따르면 공무원은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이로써 선거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할 수 없다. 대학교수도 국립은 공무원, 사립은 공무원에 준하는 지위를 갖는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참여정부 평가포럼에서 한나라당과 그 예비 후보들을 공격한 것과 관련해 위법성 시비가 벌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 국무총리, 장관… 대학의 전임강사 이상’은 공무원의 경우 정당의 발기인이나 당원이 될 수 없도록한 정당법의 제한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대학교수는 직업을 유지하면서 가장 자유로운 정치활동을 보장받고 있는 셈이다.

2006년 5.31 지방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공직을 사퇴했던 전직 공무원 B씨는 “대학교수들의 경우 낙선하거나 당선되거나 언제든지 교단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쉽사리 정치판을 넘볼 수 있지만 일반 공무원들의 경우에는 평생을 몸바쳐온 공직과 정계입문을 놓고 수없이 저울질을 해야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도내 정치인 포럼, 교수들로 붐벼
이같은 상황에서 도내에서도 대선예비후보들의 외곽조직인 정치포럼에 전·현직 도내 대학교수들의 참여가 두드러지고 있다. 현재 그 외연을 드러내고 활동에 들어간 충북의 대선 관련 정치포럼은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포럼충북비전과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지지하는 선진미래 충북포럼, 청풍비전21 등이다.
여권의 경우 정동영 전 당의장을 지지하는 충북평화경제포럼이 활동하고 있으나 학계의 구체적인 참여는 감지되지 않고 있다. 이에반해 야당 두 후보의 조직에는 경쟁적으로 전·현직 교수들이 참여하고 있다.

일단 박근혜 전 대표의 포럼충북비전의 경우 충북대 홍성후(충북대 정치학과), 변재경(충북대 체육학과) 교수가 김병국 전 청원군의회 의장, 이정균 전 한빛일보 편집국장과 함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참여하는 교수는 약 30명 정도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충주시장에 출사표를 던졌으나 당내 공천에서 탈락한 뒤 충주시 당원협의회 조직위원장에 공모한 성기태 전 충주대 총장도 포럼에는 참가하지 않았지만 박 전 대표의 특보를 맡았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외곽조직 가운데 선진미래 충북포럼은 이충원 전 청주교대 학장이 회장을 맡고 있으며, 청주대학교 광고홍보학과 이재록 교수 등이 참여하고 있다. 후발주자인 청풍비전21은 전체 구성원의 절반 정도가 대학교수다. 신방웅 전 충북대 총장이 상임대표를 맡고 있으며, 안성호(충북대 정치학과) 교수가 상임위원장이다. 충북대 이학수(특용식물학과) 교수도 구성원이다. 5월10일 열린 발기인 행사에만 20여명이 참석했고, 약 50여명이 참여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의 교수는 자신의 신상이 알려지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이다. 일부 교수들은 자신이 이름이 거론되는 것에 대해 “행사에만 참석했을 뿐 정식으로 가입하지 않았다”며 부인하기도 한다.

안성호 교수는 이에 대해 “교수들은 일단 충북의 지역개발을 위해 정책적 제안을 하려는 것일뿐 정치적인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신상이 공개되는 것에 대해서도 지극히 부정적이다”라고 말했다.

활동 지나치면 학사일정 차질 초래
교수들의 정치활동이야 그렇다지만 일단 국회의원 혹은 장관 등으로 정계입문에 성공한 교수의 사후 복직은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17대 총선 이후 끊이질 않고 있다. 현실정치 참여는 본인의 자유이지만 이를 선택하고 진행하는 과정에는 나름대로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같은 주장을 구체화하고 있는 대표적인 집단이 언론이다.

대다수 언론들은 대학교수들이 대거 원내로 진입한 17대 총선 직후 국회의원 장·차관 등 고위공직자가 된 대학교수들의 원직복직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심지어 중앙의 모 일간지는 ‘정치교수 철밥통, 그냥 둘텐가’라는 다소 과격한 제목의 사설을 통해 “정치에 진출하려는 정치교수는 당연히 사표를 쓰고 대학을 떠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론이 내세우는 명분은 주로 대학교육 정상화다. 선거 때만 되면 전국 대학에서 정치권에 줄을 대느라 휴강을 예사로 하는 교수가 비일비재하고, 학교 전체가 정치논리에 오염돼 교육이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이다. 본인이 직접 출마할 경우 휴직을 하더라도 대체 강사를 제 때 확보하지 못해 수업에 차질을 빚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학사일정도 학사일정이지만 이른바 학계, 시민단체, 언론 등 이른바 ‘중립적 영역’의 영향력 쇠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않다. 교수나 시민단체 관계자, 언론인 등이 대거 선거에 출마함으로써, 이들 집단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실정치를 떠나 교수, 언론인, 시민운동가 등의 사회활동 자체를 냉소적으로 보는 경향이 날로 확산되는 추세다.

시민운동가 Q씨는 “10여년 넘게 지역운동에 종사해 왔는데, 몇 년 전부터 ‘정치에 뜻이 있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며 “중앙은 모르겠지만 지역의 운동가들은 대부분 대중운동의 방식을 통해 자신의 목표를 실현하려 한다”고 강조했다.

Q씨는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지역의 토호들보다는 양심적인 교수와 같은 전문가들이 지방자치에 나서는 것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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