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담배 인심 같이 좋은 것이 또 있을까. 담배는 특히 남성들의 기호품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삼삼오오 담배를 피우며 정담을 나눴다. 기분이 좋아서, 속이 상해서, 여러 가지 이유로 애연가들은 담배 맛을 버리지 못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피우던 담배 중에 30% 정도가 청주 연초제조창에서 생산됐다. 1946년 문을 연 청주 제조창은 2003년 마지막 문을 닫을 때까지 수 많은 담배를 생산했다.
필자가 우연한 기회를 얻어 친구들과 청주 연초제조창을 견학한 적이 있었다. 작업장에 들어서니 1m 높이의 개피 담배가 곳곳에 쌓여 있었고 여성 근로자들이 능숙한 솜씨로 그것들을 담배 곽에 담는데 속도가 대단했다. 오른손으로 개피 담배를 집어 들고 왼쪽 손의 곽에다 넣는데 20개피를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넣었다. 놀라움에 감탄사를 연발하니까 우리를 보고 여직원들이 농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얘, 넌 담배를 많이 피워 키가 작은 것 같으니 어서 담배 끊고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와라? 야 제 코 좀 봐라. 사내구실 제대로 하겠는 걸? 구두도 반질반질 얼굴도 반질반질 넌 여자친구 많겠다. 여기저기서 킥킥대며 던지는 진한 농담에 우리는 당황했고 결국 창피함에 뛰쳐나오고 말았다. 안내원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회사에서 견학하는 사람들 오면 입 조심하라고 여러 번 주의를 줘도 워낙 입들이 거칠어 쉽지 않다”며 사과했다.
담배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들어온 것은 1623년 광해군 재위 시절로 일본을 통해 건너온 것으로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돼 있다. 처음 들어 왔을 때는 회충예방과 고뿔예방, 각종 질병을 치료하는데 탁월하다고 알려져 남녀노소 함께 피우는 만병통치약으로 애용됐다고 한다. 담배가 처음 재배된 곳은 경상남도였고 점진적으로 전국으로 확산됐는데 울산지역에 담바구 타령 민요가 생겨난 것을 보면 담배의 위력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충청북도는 1912년 청주, 괴산, 청안에 연초 조합이 설립됐다. 초창기에는 우리 풍토에 안착된 조선종과 일본종, 터키종들을 재배하다가 품질이 좋은 황색 연초를 확대 재배해 우량품의 잎담배를 일본으로 가져가 권련(개피 담배)으로 가공 생산해 우리나라 전국 판매를 독점했다.
조국 광복 후 일본인들의 담배 생산 공장을 이어받아 본격적인 국산 담배 생산이 시작됐고 1946년 청주 연초 생산 공장이 설립되어「장수연」과 「공작」권련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전국에서 가장 질 좋은 잎담배가 30%나 생산되는 충북은 농촌에서는 잎담배 재배로 농가 소득을 올렸고 청주에서는 연초제조창을 통해 경제 발전을 이뤘다. 그러나 소비가 줄고 제조창 기능이 약화되면서 청주 연초 제조창은 2003년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신탄진에 새로운 연초제조창이 생기고 원주창이 확대되고 최신 기계 설비를 갖춘 새로운 연초 제조창 유치를 놓고 청주와 경북 영주가 경쟁을 했지만 정치적 역량 부족으로 영주로 넘어갔고 청주 연초 제조창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현재 연초제조창 부지는 5만평 중 2만평을 청주시가 매입해 청주 첨단문화 산업단지로 활용하고 3만평은 담배인삼공사가 일부만 창고로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