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금 제외된 24명 비대위 결성 논란

하청지회 ‘회사가 책임’, 하이닉스 ‘제명자 합의한 적 없다’

30개월째 장기 분규 사태를 빚어온 하이닉스·매그나칩 하청지회 문제가 위로금 24억원과 재취업훈련비 8억원 등 32억원 지급에 합의, 종결되는 듯 했지만 제명된 24명의 노조원에 대한 문제로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지난달 26일 하이닉스와 하청지회 대표들은 새벽까지 진행한 협상에서 위로금 지급에 합의했다. 양 측 대표의 합의 소식에 하청지회 내부에서는 당초 목표했던 고용과 노조인정 문제가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며 격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급기야 민주노총이 반성 성명을 발표하고 지난 17일에는 노조원들의 통장으로 3000여만원씩 입금됨으로서 사태는 일단락 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양측이 전체 노조원 수를 86명으로 합의함으로서 결정적인 불씨를 남겨 뒀던 것이다.
당초 노조원은 111명으로 이중 한명이 자진 탈퇴했으며 24명은 지난해 4월께 지도부와의 마찰로 제명됐다. 이중에는 뇌종양을 앓는 부인의 병수발과 생계 때문에 농성에 자주 빠져 제명된 사람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제명 노조원들이 위로금 지급 대상에서 조차 제외되면서 또다른 논란을 낳고 있는 것이다.

합의내용, 작년 4월에 나왔던 얘기
위로금 지급 대상에서 제명 노조원들이 배제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공식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이들은 제명이 지난해 3월 제시됐던 위로금 협의가 발단이 됐다는 점에서 배신감 마저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비대위에 따르면 이들이 제명된 것은 지난해 4월 이후로 당시는 도내 시민단체와 충북도, 노동부 등이 사태 해결을 위해 범대위를 구성해 활발한 활동을 벌이던 때였다.
당시 범대위는 중재위원회 까지 구성해 하이닉스와 하청지회 양측을 오가며 절충점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 하고 있었으며 그 결과 공식적인 것은 아니지만 회사측으로부터 위로금 제의를 받아 노조원 간담회를 통해 논의를 시도했었다.

신경호 비대위 부위원장(40)은 “그때만 해도 1년 이상 싸움을 이어왔기 때문에 노조원들이 상당히 지쳐 있었다. 당장 가정의 생계가 막막한 사람도 많았고 명분만 있다면 싸움을 정리하고픈 분위기도 돌았다. 이런 가운데 사측이 위로금 지급 의사를 전해 왔고 이를 논의에 부쳐 보자는 것이 상당수 노조원들의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지도부는 이런 의견을 수용하지 않았고 고용 문제가 빠진 위로금 지급은 협의대상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신 부위원장은 “당시 사측은 위로금 2500~3000만원 지급과 생수나 소모품, 사무용품 등 노조원이 납품회사를 설립한다면 우선적으로 협력업체로 등록해 줄 것 등을 제의했었다. 결국 범대위가 마련한 간담회에 30여명이 참석 했고 이것이 빌미가 돼 지도부와 마찰을 빚어 제명됐다”고 덧붙였다.

결국 최종 합의된 위로금과 재취업훈련비용 등의 내용은 이미 지난해 3월 논의됐던 것으로 위로금 지급대상에서 제외된 24명은 당시 사측의 제안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던 사람들인 셈이다.

또다른 비대위 관계자는 “같은 내용에 대해 1년전에는 관심을 가진 노조원을 제명하고 지금은 지도부가 나서 수용한 격이다. 그러나 1년전 그 사람들은 노조에서 제명돼 한푼의 위로금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서로 책임 떠넘기는 하청지회-하이닉스
비대위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는 것은 노동단체들도 인정하고 있다.
1년6개월 이상 함께하던 동지들이 지도부와 뜻을 같이 하지 않아 갈라서게 됐지만 그동안 이들도 파업에 동참하며 누구보다 열심히 싸워왔던 것이 분명한 만큼 인도적인 차원에서라도 이들에 대한 배려가 없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합의 당사자들은 상대에게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해 하고 있다.
제명된 24명의 노조원 문제가 불거지고 이들이 비대위를 구성하자 민주노총은 성명과 촌평을 발표, 사측에 이들에 대한 대책을 세울 것을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원인제공자인 사측이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단물만 빨아먹고 헌신짝처럼 버리는 비정한 모습은 최첨단 산업임을 자랑하는 하이닉스-매그나칩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우리는 비대위의 활동을 관심있게 지켜볼 것이다. 아울러 회사측이 조속한 시일내에 해결방안을 제시할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고 사측을 압박했다.

하이닉스도 20일 이와 관련한 보도자료를 내고 입장을 밝혔다. 하이닉스반도체는 “옛 사내하청노조에서 제명된 조합원들에게 영향을 미칠 어떤 행위도 한 적 없고, 위로금 지급 합의과정에서도 제명자들을 합의에서 배제한다고 합의한 바 없다”고 밝혔다. 결국 하이닉스는 제명 노조원 문제와는 무관하며 하청지회에서 알아서 하라는 입장인 것이다.

또한 “이번에 합의한 위로금 성격 또한 당사의 법적의무가 있어서 지급한 것이 아니라, 당사가 지역사회의 일원인 점 등을 이유로 지역사회의 산업평화 등을 위한 결단이었다. 이로 인해 더 이상 어떠한 문제없이 지역의 안정된 노사관계에 기여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여 이들에 대해 책임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 김진오기자


받아주는 직장 없는 것도 서러운데…
신경호 부위원장, “제명 절차도 편법이었다” 주장


신경호 하이닉스·매그나칩 하청지회 비상대책위원회 부위원장(사진)은 노조가 24명을 제명한 것도 절차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편법이었으며 이번 합의에서 제외시킨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 부위원장은 “하청지회는 금속노조 소속으로 지회차원의 제명은 불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노조원을 제명하기 위해서는 상급단체인 대전·충북지부가 징계위원회를 열어야 하며 그 결과에 불복해 이의신청도 할 수 있다. 그럴 경우 또다시 금속노조 중앙위원회가 징계위원회를 소집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절차를 거쳐 징계가 결정된 경우는 없다”고 주장했다. 신 부위원장 조차도 대전·충북지부 징계위원회 결정에 불복해 중앙위의 징계위원회까지 열렸지만 결과를 통보받지 못한 상태라는 것이다.

신 부위원장은 “거의 대부분의 노조원이 하청지회 자체에서 제명이라는 징계가 이뤄졌는데 이는 명백히 절차를 위반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 사측과 합의대상에서 조차 배제시킨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신 부원장은 또 “제명된 24명은 그동안 변변한 직장 조차 갖지 못했다. 이력서를 제출하면 ‘다 알잖느냐. 미안하다’며 입사를 거부당하기 일쑤였다. 대부분 일용직 막노동이나 보조 인력으로 생계를 잇고 있다. 노사 양측이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형화적으로 해결했다는 것은 대승적 차원에서 크게 환영하지만 제명 노조원들에 대한 분명한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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