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끄는 ‘근거 있는’ 낙관론의 실체
유진공장 대미수출 80%담당… 수출선 다변화 모색

미 상무부(DOC)의 보복적 상계관세 부과 잠정결정의 이면에는 한국정부의 하이닉스에 대한 보조금 지급 혐의(?)에 대해 미국이 ‘확신’하고 있음을 뜻한다. 따라서 앞으로 진행될 DOC의 확정결정과 ITC의 최종판정 과정에서 이 문제는 한-미 양국간 최대의 논점으로 부각될 것이 확실하다. 미국의 이 판단은 어떤 근거에서 나온 것인가.
미국은 하이닉스의 채무를 재조정하거나 부채일부를 출자전환 형식으로 탕감해 준 채권은행들이 한국정부의 소유은행이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한국정부가 절대지분, 또는 상당한 지분을 소유한 은행들이 하이닉스를 ‘지원’한 것은 결국 정부의 지원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한국정부는 IMF이후 금융권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은행들에 투입했고, 이 공적자금에 해당하는 부분만큼 해당은행에 대해 ‘지분’을 갖고 있다.

대북송금 연계도 악재로 작용
하지만 하이닉스측은 이런 미국측의 설명에 대해 “논리적 타당성을 잃은 일방적 주장”으로 해석한다. 하이닉스에 대한 채권은행단의 지원, 즉 여신지원은 한국정부가 해당 은행들에 공적자금을 투입하기 전부터 이뤄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여전히 한국정부-하이닉스 채권은행-하이닉스간 관계를 정상적인 관계를 넘어 이상한 ‘관계’로 보는 것 같다. 지난 연초 대북송금 문제가 불거졌을 때 하이닉스측은 현대전자의 연루설 때문에 대내외에 악영향이 있지 않을 까 우려했다. 그리고 실제 마이크론 소재 아이다호 공화당 출신인 래리 크레이그 상원의원은 올 2월 “하이닉스가 부당하게 160억달러 규모의 정부보조금을 받아 미국에 반도체를 저가로 수출함으로써 미국내 반도체산업에 큰 피해를 끼쳤다”며 ITC의 판정절차와 관계없이 미 상무부 장관이 임의로 80%의 상계관세율을 부과토록 하는 법안을 제출하면서 그 근거로 “하이닉스가 2000년에 불법으로 대북송금에 간여했다”는 점을 들었다.

반덤핑 제소 등 악재 잇따를까 걱정
어쨌든 DOC의 상계관세 고율부과 잠정결정으로 인해 하이닉스가 받을 악영향은 여러 분야에 걸쳐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이닉스측은 “ITC의 확정판정이 어떻게 나오든 DOC의 결정으로 당장 미국수출품에 대해 예치금을 납부해야 됨으로써 월 2400만달러 이상(약 290억원)의 추가 재정부담이 우려된다”며 “진입장벽으로 미국내 판매시장이 제한되면 현물시장에서의 판매를 증가시킬 수밖에 없는데 이럴 경우 판매가격이 더욱 하락하는 악순환도 걱정된다”고 밝혔다. 아울러 현재 하이닉스가 M&A(합병)와 투자유치 등 자구노력 차원에서 기울이고 있는 추가 구조조정에 큰 장애가 발생하는데다, 새롭게 제출된 미국의 반덤핑(Anti-dumping) 법안이 통과될 경우에는 보조금을 수출가격에서 차감하게 되어 추가로 반덤핑 제소를 당할 가능성이 큰 등 복합악재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뿐아니라 이번 DOC의 결정은 미국과 유사한 절차를 밟고 있는 EU의 움직임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앞서 밝혔듯 EU 집행위는 인피니온사의 요구에 따라 하이닉스에 대해 최고 30%에 달하는 징벌적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이닉스 청주사업장은 공정공시 제도 등의 제약점을 들어 하이닉스의 대미수출실적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지만 DOC의 결정으로 납부해야 할 예치금 규모가 월 2400만달러 가량 이른다는 설명으로 미뤄 수출규모가 4000만달러(연 5억달러 안팎) 정도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너를 믿는다! 유진공장”
그러나 DOC의 예비판정과 이로인한 ITC의 최종판정이 어떤 식으로 결말 지어지든 하이닉스가 실질적으로 받을 피해는 우려하는 만큼 심각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상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제기되고 있어 주목된다.
“미국 오리건주에 있는 하이닉스 유진공장의 주력 생산품은 256 DDR과 256 S D 램으로 월 생산규모가 3만5000장 정도에 달한다. 거기에다 회사에서는 지난해 1억달러를 유진공장에 투자, 생산시설을 업그레이드, 생산성이 크게 높아졌다. 여기에 기존 재고도 많아 유진공장 하나만으로 하이닉스의 미국 수출분의 80%정도를 커버하고 있다.” 하이닉스 청주사업장 관계자는 “따라서 상계관세 부과가 확정되더라도 대미수출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나머지 20% 물량에 국한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미·유럽 선적분의 1%만 영향”
독일의 반도체 시장조사기관인 디디오스(De Dios)도 5일 “하이닉스의 미국·유럽 D램 수출량 중 70∼80%는 미국 유진공장에서 생산이 가능해 관세를 물어야 할 물량은 나머지 20∼30%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함으로써 하이닉스의 견해를 뒷받침했다. 디디오스는 또 미국 및 유럽 외 지역으로 하이닉스가 D램 물량을 재배치하는 노력을 기울임에 따라 관세부과 대상이 더욱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따라서 관세가 부과되는 D램은 미국 유럽으로 들어오는 선적분의 1%에 그칠 것이라는 게 디디오스의 견해다.
다만 문제는 하이닉스에 대한 DOC의 결정이 한국의 특정기업에게 족쇄를 채우려는 차원에서 뿐 아니라 미국에 일고 있는 거대한 보호무역주의의 조류를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다. 미국이 보호주의로 회귀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나라의 대미수출 전선에는 반도체 분야는 차치하고 전분야에 걸쳐 이미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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