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오늘도 다리를 절룩거리면서 아침 일찍 내덕동집을 나서 사직동 언덕바지에 있는 직장으로 출근했습니다. 충북장애인협회 4층에 있는 지체장애인법률상담실. 그의 직책은 상담실장입니다. 사무실이라야 네 평에 불과한 작은 공간이지만 지체장애 3급인 그는 아침부터 혼자 전국에서 걸려오는 상담전화를 받으며 바쁘게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가 봉급도, 아무 것도 없는 상가임대차 무료법률상담을 해 온 지는 올 해로서 3년째 접어들었습니다. 하루에 걸려오는 전화는 20∼30통, 직접 찾아오는 상담자도 10여명이나 되는데 그 동안 상담에 응 해준 사람은 줄잡아 2천여 명이 넘습니다. 모두가 하나같이 힘없는 사람들, 억울한 사람들의 하소연입니다.
그가 이 일을 결심한 것은 10년 전입니다. 포장마차로 얼마의 돈을 모아 조그마한 음식점을 열었다가 터무니없이 집세를 올려달라는 악덕 건물주에게 피해를 당하고 쫓겨난 것이 동기였습니다.
그는 이때부터 ‘인생’을 걸고 건물주의 횡포에 대항하기로 결심합니다. 생계를 꾸리기 위해 군밤장수, 두부행상도 마다 않고 여론을 환기시키기 위해 한복에 갓을 쓰고 등에는 ‘상가임대차보호법을 제정하라’는 구호를 붙이고 엿장수로 변신해 전국 방방곡곡, 골목골목을 누빕니다.
그는 각 도의 영세상인 2천여 명의 서명을 일일이 받아 1993년 12월 상가임대차보호법 입법청원을 국회에 제출합니다. 하지만 의원들의 무관심과 무성의로 별 다른 성과를 얻지 못합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국회와 각 정당 정부부처 언론사를 끊질기게 찾아다니며 호소에 호소를 거듭합니다. IMF때는 노숙자들과 숙식을 함께 하며 영세상인들의 피해사례를 수집했고 2001년 5월에는 국회의사당 앞 인도에서 상복에 삭발을 하고 20일간에 걸친 단식투쟁을 벌이면서 입법을 촉구합니다. 8년에 걸친 피나는 투쟁 끝에 상가임대차보호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2001년 12월 29일 이었습니다. ‘인간승리’의 벅찬 순간, 그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립니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이란 시도 때도 없이 마구 집세를 올리는 건물주들의 횡포로부터 세 들어있는 영세상인들을 보호하려는 것이 골자입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억울함 때문에 시작한 일 이었지만 주변에 더 억울한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고 아주 이 일에 매달려 싸워온 결과 그는 이제 상가임대차보호법에 관한 한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임대차 피해에 관한 그 동안의 여러 사례와 대처방안, 소송방법 등을 모아 한 권의 책을 엮어 며칠전 장애인협회강당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졌습니다. 이날 모임에는 남상우 충북정무부지사, 김현수 전청주시장, 최병훈 청주시의장, 한원전 전 청주대학장 등 뜻 있는 인사들 1백여 명이 참석해 축하해 주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결혼 뒤 줄곧 어려움 속에 남편을 뒷바라지하고 생계를 꾸려온 부인 윤영화씨(49)는 시종 눈시울을 붉혔으며 장남 용현군(21)은 “어릴 때 집안이 너무 어려워 아버지가 바보인줄만 알았는데 오늘 비로소 아버지가 훌륭한 분 인줄 알게됐다”면서 목이 메인 채 아버지를 끌어안아 보는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그는 지금 대학생인 두 아들과 함께 네 식구가 보증금 30만원, 월세15만원의 셋 방에 살고있습니다. 부인은 저녁이면 운천교 건너 포장마차에서 생활비를 버느라 밤을 지새웁니다. 그의 마지막 꿈은 법무사가 되어 집주인의 눈치를 보며 불안한 나날을 보내는 전국의 400만 영세임차인을 위해 여생을 바치는 일입니다. 그러나 중졸학력이 전부인 그에게 그 꿈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밤하늘의 별처럼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 일신과 가족의 안일만을 추구합니다. 밤하늘의 별은 그 빛이 미약하지만 어두운 밤, 길을 잃은 사람에게 빛이 되어줍니다. 많이 배운 사람들일수록 저 밖에 모르고 더 갖기 위해 아귀다툼을 하는 세상에 그는 진정 어두운 밤하늘의 별 입니다. 아주 아름다운 별.
나이 쉰 셋, 그의 이름은 백상기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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