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 노사분규 2년 5개월의 비망록

도내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의 대표적인 사례는 2004년 12월 시작된 하이닉스·매그나칩 하청지회 사태다.

하청업체 4곳의 노동자들이 노조를 설립, 원청인 하이닉스와 매그나칩반도체에 대해 직접 교섭을 요구했고 급기야 정규직 전환을 주장하며 2년6개월째 전면파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하청지회에 대해 회사 측은 고용당사자가 아니라며 이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고 수많은 고소고발 사건을 양산하며 노동자들은 생계가 위협받는 지경에 까지 내몰리고 말았다. 최근 하청지회가 직접고용 주장을 철회하고 사 측의 위로금 지급에 동의하면서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있지만 30개월의 지리한 싸움은 승자도 패자도 없이 서로에 생채기만 남긴 채 일단락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 하이닉스 하청지회 사태가 파업 30개월 만에 위로금 지급에 잠정 합의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하지만 정규직 전환이 무산되고 노조마저 유지할 수 없게 돼 합의안 추인 과정에서 커다란 진통이 예상된다. 사진은 지난해 하청지회 노동자들의 도청 옥상 점거 농성 장면. / 사진=육성준 기자
요원한 정규직 전환 목소리
하이닉스 하청지회는 사측이 제시한 24억원의 위로금과 8억원의 재취업 훈련비용에 잠정 합의했고 현재 조합원들의 추인 과정을 남겨 두고 있다. 추인 여부가 불투명 하기는 하지만 양 측 대표가 의견 접근을 이뤄냈다는 것 자체로도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당초 사 측은 이들을 고용한 당사자가 아니라며 직접 대화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하청지회 노동자들은 하이닉스의 협력업체의 직원들이며 이들의 고용 문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하청지회는 결국 하이닉스 정문 앞에서 천막농성을 이어갔고 중재를 촉구하며 도청 옥상 점거 농성이라는 극한 상황까지 연출했다.지난해 9월 하이닉스는 이들에게 1인당 1500만원의 위로금 지급을 제안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해를 넘겨 증액된 24억원의 위로금에 잠정합의하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협력업체지만 장기간 하이닉스 내에서 각종 업무를 수행했고 근로감독권 까지도 사실상 하이닉스가 갖고 있었던 만큼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충북도와 노동부, 지역 시민사회단체 까지 나서 중재위원회를 구성해 사태 해결에 노력했지만 양측의 입장차를 좁히는 데 실패했다.

싸움이 장기화로 치달으면서 하청지회도 지쳐가 직접고용 주장에서 물러났고 위로금 지급으로 논의가 압축돼 사태 일단락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이들이 그토록 염원했던 정규직 전환은 30개월의 피말리는 싸움을 통해서도 이뤄내지 못한 채 연봉에도 미치지 못하는 위로금과 재취업 훈련비용 지급을 명문으로 잠정 합의한 것이다.

연봉에도 못 미치는 위로금
하이닉스 사측과 하청지회가 합의한 위로금은 24억원. 여기에 재취업훈련비용 8억원이 더해져 모두 32억원이다. 이를 86명의 조합원 개인으로 환산하면 위로금은 2790만원이며 재취업훈련비용은 930만원이다. 하이닉스 측은 위로금에 대해 ‘인도적 차원’임을 강조하고 있다. 위로금을 지급한다고 해서 하청지회를 교섭의 대상으로 인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의미다. 결국 사태 해결의 명분용이며 하청지회가 요구했던 정규직 전환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당초 입장에서 조금도 물러나지 않은 것이다.

이 위로금은 월평균 93만원 꼴로 이들이 받아왔던 월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고 당초 요구사항인 정규직 전환은 논의 조차 하지 못해 이대로 사태가 마무리된다 해도 승자도 패자도 없는 결과가 된다.현재 하청지회 대표가 잠정 합의한 상태지만 조합원 총회에 부쳐 최종 추인을 받아야 하는데 그 결과를 예단할 수 없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사 측과 밤샘 대화 끝에 잠정 협상안을 도출했지만 직후 하청지회 내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자체 인터넷 게시판에는 익명의 반대 성명서가 게시되기도 했고 지도부는 조합원 총회 일정 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 관계자는 “욕설이 오갈 정도로 내부 분위기가 험악하다. 86명의 조합원 중에 40명 이상이 잠정 합의안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정규직 전환이나 노조인정 등 중요한 사안이 모두 빠진 것을 문제삼고 있다. 총회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상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만약 지도부의 잠정 합의안이 총회에서 거부된다면 사태는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지도부 사퇴와 잠정 합의에 대한 책임 추궁 등이 이어질 것이고 비상대책위 등을 구성해 새로운 싸움에 들어갈 확률이 높다. 이 경우 하이닉스 측의 대응도 전혀 달라질 것이고 싸움의 수위도 상당히 높아져 극한 상황으로 치달을 우려도 크다.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30개월을 달려온 하이닉스 사태의 끝은 조합원 총회에서 잠정 합의안이 받아들여지느냐의 여부에 따라 결말이냐 또다른 시작이냐의 기로에 놓인 것이다./ 김진오 기자

하이닉스 하청지회 조합원 수 논란
사측과 86명 합의 불구 중도 이탈자 구제 목소리


하청지회는 하이닉스 측과 잠정 합의하면서 조합원 수를 86명으로 못 박았다. 이들에게 위로금과 재취업훈련비용을 지원한다는 것. 하지만 일각에서는 중도에 탈퇴한 24명에 대해서도 회사나 하청지회 차원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2004년 하청지회를 결성하고 파업에 돌입할 당시에는 4개 협력회사에 200명이 넘었다. 이중 한 개 회사가 이탈하고 2년이 넘도록 싸움을 벌여오면서 탈퇴 조합원이 늘어 현재는 86명이라는 것.

일각에서 주장하는 24명은 지난해 9월 지자체와 노동부, 시민사회단체 등이 중재위원회를 결성해 최초로 양측의 대화가 시작한 이후 탈퇴한 경우다.

한 관계자는 “비록 중도에 조합을 탈퇴했다 해도 이들에 대한 배려가 없어서는 안된다. 이들 중에는 생계 조차 잇지 못해 마지 못해 새로운 일을 찾은 경우도 있고 조합에 의해 제명된 사람도 있다. 끝까지 함께 하지 않았다고 해서 위로금 지급과 재취업 훈련 대상에 조차 포함시키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하청지회 측은 사실상 이들까지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지난해 중재위를 통해 사 측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몇몇 조합원이 다른 목소리를 냈고 내부 결속을 위해 제명할 수밖에 없었다. 직후 도청 옥상 점거농성도 흔들리는 내부 분위기를 반전하기 위한 측면도 있었다. 장기간 싸움을 진행해 오면서 상당히 지친 것이 사실이고 이번 교섭에서 이들까지 염두할 여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