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 상근인력 522명, 전체 인원 27%
쓰레기 수거, 밤샘업무에 연봉 1700만원

117년에 이르는 ‘노동절’의 역사 굽이굽이에 노동자들의 권익을 드높이기 위한 노력과 투쟁의 발자국이 새겨져 있지만 ‘반쪽 노동자’로도 불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제부터 험난한 역사를 써야만 한다. 일상적인 상대적 차별과 끊이지 않는 해고 압력이 그들을 괴롭히는 가운데, 비정규직 고용은 날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오는 7월부터 비정규직 관련 법안이 시행에 들어가지만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는 입법 취지와 달리 제도적으로 미비한 점이 많아 오히려 무더기 해고가 우려되고 있다.

특히 청주지역에서는 직장폐쇄된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 하청노조의 농성이 2년4개월 동안 이어지면서 지역의 최대 현안이 됐지만 풀릴 듯 하면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노동절을 계기로 충북지역 비정규직 고용의 실태와 문제점을 집중 취재했다. / 편집자

청주시 음식물 쓰레기 수거 위탁업체인 ‘삶과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 Q씨는 남들이 잠자리에 들 시간인 밤 9시에 출근한다. 3인 1조로 일하는 음식물 쓰레기 수거업무에서 Q씨가 담당하는 역할은 쓰레기통을 수거용 차량과 연결시키는 일이다. 고약한 냄새를 맡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음식물 쓰레기가 튀어 옷에 묻는 경우도 다반사다.

작업시간은 다음날 새벽 5시까지지만 정확히 끝나는 경우는 드물다. 대개는 6톤이 정량인 수거차량으로 두 번 정도를 수거하면 작업이 끝나지만 과일껍질 등이 많이 나오는 여름철에는 꼬박 3번을 수거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출근하는 오전 8~9시에야 일이 끝난다. 수거지역을 교대로 바꾸지만 언덕배기를 올라야 하고 길이 구불구불한 일반주택을 주로 수거할 때는 힘이 두 배로 든다.

10시간 정도를 일하는 가운데 야식을 먹는 30분을 제외하고는 별도의 휴식시간도 없다. 냄새나는 옷을 입고 식당을 출입하는 것도 눈치가 보여 항상 들르는 식당만 이용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라고 교통비가 지급되지만 버스를 타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청주시가 직영하는 환경미화원들은 업무가 끝난 뒤 자체 운영하는 목욕시설에서 씻은 뒤 옷을 갈아입지만 위탁업체 직원들은 손을 씻을 곳도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탁업체의 월급은 직영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양쪽 다 비정규직이지만 위탁업체 선정에서 탈락하면 고용조차도 보장받기 어려운 이들은 더욱 서럽다.

Q씨는 “공무원들이 탁상행정을 하기 때문에 톤(ton) 수를 잘못 계산해 과다한 업무에 시달리는 반면,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는데 자괴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의 업무를 위탁받아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주소다.

충북 노동자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
청주시의 경우 단순업무 등을 비정규직화하라는 정부방침에 따라 청원경찰 116명을 비롯해 도로보수, 청사관리, 비서, 문서수발 등에 상근인력(비정규직)으로 270명을 고용한 상태다. 역시 상근인력인 환경미화원의 경우 직영이 252명이다. 이를 더하면 청주시의 비정규직은 모두 522명이다. 앞서 예로 든 Q씨와 같은 위탁업체 직원은 이 숫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청주시의 경우 직영 외에도 환경미화 업무를 외부에 위탁해 현재 4개 업체 120명이 수거업무를 맡고 있다. 이들까지 합치면 실질적인 비정규직은 약 650명에 달한다. 청주시의 정규직 공무원 1736명에 이들 비정규직을 포함시키면 약 2300여명이고 이 가운데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중은 27.2%에 이른다.

충북 전체 근로인구 가운데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중은 정확하지 않다. 아니 그 개념부터가 혼란스럽다. 통계청 충북통계사무소가 밝힌 충북의 2007년 1/4분기 고용동향에 따르면 전체 취업자 67만9000명 가운데 41만6000명이 월급이나 일당을 받는 임금 근로자다. 이 가운데 상용 근로자가 55.7%에 이르는 23만2000명으로 가장 많고, 임시 근로자는 13만1000명, 일용근로자는 5만3000명이다.

이 수치만 놓고 보더라도 비정규직은 44.2%에 달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상용 근로자 중에도 일정 부분의 비정규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상용 근로자 안에 숨어있는 비정규직의 규모는 알 수 없다.

민주노동당 충북도당 이인선 사무처장은 “아무리 낮게 잡아도 비정규직의 비중이 절반을 넘는 것은 분명하다. 민주노동당은 국회 의석을 가지고 있는 만큼 법제 차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의원 수의 열세 때문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저임금 보다 고용승계 여부에 떤다
IMF 이전까지만 해도 비정규직이나 위탁 등 사내 하청도 고용의 안정성 측면에서 정규직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정규직화를 요구하다 직장 폐쇄로 거리에 내몰린 하이닉스 매그나칩 하청노조가 대표적인 경우다. 이들은 신분상 하청업체 직원이지만 채용과정에 당시 LG반도체 임원이 면접관으로 나왔고, 업무나 대우에서 반도체 직원들과 차별 대우를 받지 않았다.

문제는 상황이 어려워질 때다. 인원 감축 요인이 발생했을 때 비정규직에 먼저 메스를 들이대기 때문이다. 위탁업체의 직원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들은 1~2년 단위로 이뤄지는 공개경쟁 입찰에서 자신들이 속한 업체가 탈락할 경우 고용을 보장받을 길이 없다.

행정기관의 경우 새로 선정된 업체에게 고용승계를 권고하지만 이를 지키는가 여부는 철저하게 업주의 몫이다. 고용승계 여부를 놓고 332일 동안 농성을 벌인 끝에 원직복직에 합의한 옥천군 환경미화원 노조 사태가 대표적인 경우다.

옥천군은 청소업무 일체를 외부에 위탁하고 있는데, 2005년 말 쓰레기 업무를 위탁받은 옥천환경개발이 고용승계를 거부하자 실직 미화원들이 2006년 1월2일부터 농성에 들어가 11월30일 원직복직을 쟁취한 것이다. 위탁업체 관련 노사분규는 사실상 행정기관과는 무관한 것이어서 지루한 법정공방으로 이어지기 일쑤다.

민주노총 산하 전국민주연합노조 이성일 조직국장은 “쓰레기 수거 위탁업체의 경우 인력과 장비를 갖추고 입찰에 응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낙찰을 받은 뒤 인력과 장비를 갖춰서 최종 등록을 하게 된다”며 “위탁업체가 바뀔 때마다 고용승계를 둘러싼 갈등이 우려되는 만큼 고용안정과 근로조건 하락을 막기 위한 법적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정규직 법안 오히려 악용 우려
이러한 가운데 7월1일부터 시행에 들어가는 비정규직 관련 법안은 제도적으로 미비한 점이 많아 오히려 악용될 우려가 높다는 지적이다. 법안의 핵심은 전국적으로 545만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가운데 과반수를 차지하는 기간제 노동자가 2년 이상 일하면 당사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간제 노동자 고용의 사유 제한 등 중요한 보완 조치들이 빠져 오히려 고용 불안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2년 이내에는 언제든 ‘해고’를 할 수 있어 같은 직종의 다른 기간제 노동자로 얼마든지 대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1년 단위로 재계약이 가능했던 대다수 기간제 근로자들로서는 법안 시행으로 2년에 한 번씩 직장에서 내쫓겨야 하는 ‘시한부 인생’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한 경영자단체는 자체 지침서를 통해 근로자에 대해 기간제와 파견제 계약을 번갈아가며 체결하는 이른바 회전식 고용으로 법적인 제약을 피해갈 수 있음을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이 같은 기류를 반영하듯 최근 한 인터넷 취업사이트가 비정규직 종사자 1천45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비정규직 법안 시행 이후 실직이 우려된다는 응답이 65.7%(958명)에 달했고 정규직화가 기대된다는 응답은 불과 17.6%(256명)에 그쳤다. / 이재표 기자

비정규직 문제 해결사
이성일 전국민주연합노조 조직국장


전국민주연합노조(이하 연합노조) 이성일 조직국장은 청주가 활동 근거지이지만 전국을 무대로 뛴다. 연합노조란 금속이나 보건 등 산별 영역이 구축되지 않은 부문의 개별 노동조합들이 집단교섭을 벌이기 위해 만든 연합체다.

현재는 경기지역을 중심으로 조직을 확대하고 있으며, 충북에서는 충북일반노동조합, 제천지역 공공기관 상용직노조 등이 가입돼 있다. 이 조직국장은 2003년 5월 충북일반노동조합 위원장을 맡아 노동운동의 전면에 나섰다.

상식적으로 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하는데는 최소한 두 명이 필요하지만 일반노동조합을 통해서는 단 한 명도 노조를 만들 수 있다. 단위 사업장 별로 한 명 이상이 분회를 만든 뒤 일반노조에 분회로 등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섭권은 일반노조 위원장에게 있다. 결국 일반노동조합은 비정규직 노동자나 중소 영세사업장의 노동자들을 위한 단일 노조인 셈이다. 이성일 조직국장은 일반노조 시절부터 노동운동의 마이너리그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처리하고 있다.

충남 아산이 고향인 이성일 조직국장은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88학번으로, 학창시절 총학생회 부총학생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2000년 청주로 이사를 온 뒤부터 기층 노동운동에 열과 성을 바쳐 왔다.

이 조직국장은 “비정규직과 위탁업체 노동자들은 낮은 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며 “예를 들어 위탁업체 소속 환경미화원들은 행정기관이 1인당 월 300만원 안팎의 비용으로 원가상정을 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받는 임금은 150만원 안팎에 불과할 정도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 조직국장은 “그래도 노조에 가입된 경우에는 상황이 달라진다”며 노동조합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 이재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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