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정치·사회분야에서 총체적으로 나타나
변화 견인해 새 모델 제시할지는 아직 미지수

지난 3월 29일 옥천군청에선 눈길을 끄는 사건(?)이 하나 벌어졌다. 이날 군청측과 공무원직장협의회가 인사 다면평가를 위한 과정에 공직협 대표를 참여시키는 안을 전격 합의한 것이다. 인사위원회에도 공직협에서 추천하는 인사 한명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협상안을 타결지은 것이다. 이를 두고 군청관계자는 “공직사회에 쿠데타가 일어났다”고 표현한 반면, 옥천공직협 김우현회장은 “역사적이고 획기적은 쾌거”라고 밝혔다.
나흘 후인 2일 낮엔 청주의 한 음식점에서도 아주 이색적인 모임이 있었다. 올초 창간한 인터넷신문 ‘청주기별’의 1차 독자모임이 참석자들의 자비로 열린 것이다. 지난 대선을 통해 국내 영향력 1위의 언론매체로 급부상한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 제도를 도입한 이 신문은 기존의 지방언론과는 판이하게 다른 컨셉으로 대중앞에 나타났다. 이날 모임을 주선한 남정현씨(충북여성민우회 부대표)는 자신의 시민기자 입문에 대해 이런 투고를 올렸다. ‘살림정치, 주민정치의 시작이야말로 지방자치에 대한 그 길고 지루한 세미나와 교양에서가 아니라 이름하여 이태껏 비주류, 주변으로 치부되었던 소외계층과 여성들의 수많은 이야기와 수다거리가 언론의 주류기사로 존중되는 것에서부터 시작돼야 하지 않을까?’
아직은 조용하지만 사회변화의 조짐이 지역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참여정부 출범 초기 한국사회를 바짝 긴장시켰던 소위 ‘주류의 교체’가 충북에서도 그 단초를 조금씩 내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는 여기저기서 쉽게 목격된다. 수구 언론에 의해 끊임없이 발목이 잡히던 시민단체는 어느덧 지역 현안의 주체로 부각됐다. 견제와 비판의 대자적 역할에 충실하던 시민단체가 이젠 지방자치단체의 각종 시책결정에서부터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대표적 사례가 행정수도이전과 지방분권 등에서 나타난다. 이들 문제와 관련된 각종 공적 기구(機構)에서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그동안은 주변으로부터 대안없는 반대만 일삼는다는 비판을 줄곧 받아 왔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비판을 오히려 조직 내부에서 먼저 제기한다. 시민운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커진 만큼 자기개혁과 전문성이 절실히 요구되기 때문”이라는 한 시민운동가의 말엔 지금의 분위기가 잘 농축돼 있다.

공무원노조 인사관여는 당연한 권리
주변인이 주류로 변신하려는 움직임은 공직사회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충북 공무원사회의 변화는 얼마전 언론을 시끄럽게 했던 기자실폐쇄와 기능전환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났다. 모순된 관행에 대한 집단적 견제가 최근 본격적으로 힘을 받는 것이다. 기자실 폐쇄를 주도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충북지역본부(본부장 정세영)는 지금 시.군공무원직장협의 노조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11개 시.군 직협중에서 청원 진천 괴산 음성 등이 이미 노조체제로 전환했고 나머지 지역도 오는 5월까지는 대부분 공무원노조로 탈바꿈한다. 정세영충북본부장은 이에 대해 분명한 소신을 밝힌다. “노조와 직장협을 굳이 구별한다면 소속 공무원들에 대한 조직의 책임이 서로 다르다. 다시 말해 노조가 아닌 상태에선 인사에 대한 어떠한 개입도 심사, 결정권이 없는 단순한 협의에 불과한 것이다. 조만간 모든 시.군직장협이 조합으로 전환할 것이다. 조합원 인사에 대한 노조의 관여는 노동법상 주어지는 당연한 권리다. 앞으로 이 문제에 철저히 대처하겠고, 옥천군의 사례는 하나의 시발점이다.”
공무원 인사와 관련, 일정한 발언권 행사를 명문화한 옥천군공무원직장협 김우현 회장은 전후 관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일종의 사전 작업이랄 수 있는 다면평가 과정에 직협 관계자가 참여하는데엔 별 장애가 없다. 아직은 양측간 합의가 중시되는 임의기구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사위원회 구성 등 다면평가 절차에 절반 정도로 참여키로 했다. 그러나 인사위원회 참여는 관련 규정때문에 성격이 좀 다르다. 현재 부군수가 위원장인 인사위는 6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는데 이중 3명은 외부 인사의 몫이다. 이 3인중에 직장협의회가 추천한 한명이 들어가는 것으로 타결됐다. 인사의 공정성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본다.” 옥천군의 사례는 다른 자치단체에도 곧바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노조의 인사관여에 대해 공무원노조 충북본부가 특정한 가이드라인을 설정한 것은 아직 없다. 합법화 등 법적인 문제가 여전히 선결과제로 남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충북본부는 인사뿐만 아니라 다른 사안에 대해서도 앞으로 분명한 목소리를 낸다는 자세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툭하면 동원되는게 공무원인데 이것도 고쳐져야 한다. 정당한 절차에 따라 정당하게 일하고 그에 상응하는 처우를 받아야 한다. 이래야만 직업공무원으로서 역할할 수 있고 투명한 행정과 예산집행이 보장된다. 언론은 물론 대 의회 관계에 있어서도 그동안의 부당한 관행을 척결하겠다. 특히 무원칙한 해외연수 등 지방의회의 낭비적 요인에 대해선 철저하게 따지겠다.”
도내 공직사회의 이런 추세는 당장 자치단체장들의 인식변화로 이어졌다. 이원종충북지사는 최근 모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공무원노조가 됐건 직장협의회가 됐건 앞으로 모든 현안에 대해 이들 단체와 동반자로서 머리를 맞대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공개적으로 했다. 현재 시.군을 순방중인 이지사는 이들 단체로부터 한때 방문거부 의사를 듣기도 했다.

시민운동의 전문성 기할 때
지난 1년간 교환교수로 미국에 체류하다가 얼마전 귀국, 현업에 복귀한 서원대 김진국교수(정치행정학과)가 지역사회의 변화를 느끼는 체감지수는 더 각별하다. 그는 2000년 충북총선시민연대를 이끌었던 대표적인 시민운동가다. “나 스스로 사회운동을 해 왔지만 지난 1년동안의 변화에 놀랍기만하다. 제도권 밖에서 활동하던 분들이 국가 전략, 정책결정의 책임자로 나섰는가 하면 일반 시민들의 역사, 사회인식에도 엄청난 변화가 온것같다. 지금 지방에서도 광범위하게 벌어지는 반전 평화시위가 그 증거다.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하던 현상들이다. 굳이 우리사회의 주류문화가 바뀌고 있다고 표현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 물론 지구촌 전체의 변화와 맥을 같이 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김 교수는 일련의 분위기에 대해 고언을 빠뜨리지 않았다. “참여정부 출범으로 시민단체와 시민운동에 대한 주변의 시각이 많이 좋아진 건 사실이다. 외적인 환경이 과거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우호적이다. 이 시점에서 꼭 필요한 것은 시민단체의 내부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시민들의 광범위한 참여로 재정자립을 꾀하고 전문성과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이런 노력을 소홀히 한다면 어느 시점엔 대중들로부터 외면받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은 정확한 패러다임이 정립되지 않았다고 본다. 시작단계이자 과정일 뿐이다. 이런 추세를 거부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확대해석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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