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의사결정권 “이젠 통합의 과정으로”
총선의 ‘가늠자’도 확연하게 달라질 듯

충북의 지방언론에 툭하면 등장하는 말이 하나 있다. 이른바 ‘어른이 없다’다. 특별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지역사회를 대표해 해결사로 나설 책임있는 인사가 없음을 이런 식으로 표현해 왔다. 얼마나 자주 거론됐으면 이젠 ‘어른 론(論)’으로까지 표현될 정도다. 얼핏 듣기엔 그럴듯해 보이지만 상당한 모순을 안고 있다. 심한 경우 주민의식의 노예근성이라는 비판마저 받는다. “문제를 사회의 기능적 측면에서 이해하기 보다는 스스로 소패권주의를 자초하는 조잡한 정서로써 재단한다”고 꼬집는 전문가들도 있다.
꼭 이런 분위기를 반영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청주지역엔 오래전부터 특정인들의 존재를 의식하는 말이 끊임없이 나돈다. 이들이 지역의 어른으로 인정받느냐 하는 것은 논외의 문제다. 다만 지역 사회의 현안에 줄기차게 관여하고 있고, 또 일정 수준에서 관(官)의 지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른바 누구누구 사단(師團)이니 누구누구 가문(家門)이니 하는 말들이 그 사례다. 이들이 나서면 없던 자리도 만들어 낸다는 인식마저 팽배하다. 최근 지역에 파문을 던졌던 일엔 예외없이 이들 이름이 거론됐다. 과거 관선시대 때는 수급기관장들의 사적 모임인 이른바 대책회의가 지역현안의 실질적 의사결정 기구였다면 지금은 이 특정인들이 공유하는 이너서클이 그 역할을 대체했다는 자조마저 나온다. 흥미있는 사실은 서로 각별한 인맥을 형성하면서도 표면적으론 아주 소홀한 것처럼 위장한다는 것이다. 이건 일종의 속임수다. 스스로들도 그만큼 주변을 의식함을 시사한다.

충청리뷰?청주상의 사태 상징적 사례
실제로 이들에 대한 주변의 시각은 반반이다. 인물난 속에 그나마 지역을 대표한다는 호의적인 평가와 함께 정보를 독점하며 지역을 주무른다는 냉혹한 비판이 교차한다. 지역사회의 주류로 행세하는 이들에 대한 반감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은 청주지역에서 최근 관행적인 주류문화에 반기를 든 대표적 사례로 두가지를 꼽는다. 지난 연말 충청리뷰사태와 얼마전의 청주상공회의소 사태다. 검찰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50여개 시민단체가 맞섰던 리뷰사태는 당초의 압도적인 비관론과 반대에도 불구, 집단적인 저항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평가를 받는다. 당시 연대투쟁에 적극 동참했던 한 인사는 “지금이야 지난 얘기쯤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막상 그 땐 부담이 컸다. 청주 지역에서 언론과 검찰 시민단체가 서로 사활을 건 대립각을 세웠다는 것은 이곳의 역학관계상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어쨌든 이 일이 일반 시민들의 인식변화에 큰 동인을 제공한 게 사실이다”는 견해를 밝혔다. 청주상공회의소 사태 역시 이해집단의 성패를 떠나 조직변화의 필요성을 보편적으로 공감하는 시기에 부회장단을 중심으로 반기가 올려졌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컸다.

인물의 정치가 시스템의 정치로
주류문화의 변화는 지역 정계에서도 뚜렷히 나타나고 있다. 과거 인물본위의 정치문화가 급격하게 시스템화되는 것이다. 지난 대선을 정점으로 폭발한 유권자의식의 변화 때문이다. 이와 관련, 얼마전 다년간의 정당생활을 마감한 유철웅 전 자민련 충북도지부 사무처장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지난날의 지역정치는 사람에 의해 이끌렸다. 거물정치인 예를 들어 8,90년대만해도 이춘구 김종호 정종택 박준병 등 소위 한 시대를 풍미한 정치인들이 대세를 가름하는 한 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물론 인물의 등장을 고대하면서도 과거와같은 외형적 힘의 논리보다는 정당한 절차에 의한 인물부각에 관심을 갖는다. 정치인들이 부정을 저지르고도 선거를 통해 적당히 명예회복하는 일은 앞으로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지난 대선 때 노사모와 개혁적국민정당 창당멤버로 활동한 이광희씨(전 KYC 대표)는 경선제도가 정치의 주류문화를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인기 드라마 전원일기가 중도하차한 이유는 분명하다. 사회인식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밖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지역 정치판에도 엄청난 변화가 일고 있고 그 결과는 내년 총선에서 나타날 것이다. 유권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소홀히 하면 무조건 망한다. 현역 의원들이 특히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지난 대통령선거 과정과 반미 반전운동으로 성장한 시민의식은 분명한 방향을 견지하고 있다. 정치의 일방적 수용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참여의식이고 이는 정치의 주류와 세대교체를 수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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