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불타고있습니다.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아비규환의 전쟁상황이 밤낮없이 전 세계의 TV화면을 붉게 물들이고 있습니다. 온 세상이 불탄다 한들 이상할 게 없을 듯합니다.
함정에서 쏘아대는 미사일이 쉴 사이 없이 날아가고 전폭기들의 한밤 융단폭격이 도시를 불바다로 만듭니다. 중무장 탱크들이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질풍노도처럼 사막을 휩쓸고 갑니다. 미영연합군은 바다에서, 공중에서, 지상에서, 컴퓨터게임을 하듯 그렇게 전쟁을 즐기고 있습니다.
공습을 알리는 긴박한 사이렌소리, 밤하늘을 대낮처럼 밝히는 화염, 귀를 찢는 폭발음과 눈부신 섬광, 하늘로 치솟는 검붉은 연기. 고이 잠자야 할 도시 바그다드는 지금 피에 굶주린 이들로 하여 연옥(煉獄)이 된지 오래입니다. 천지개벽(天地開闢)? 경천동지(驚天動地)?, 아니 그 어떤 말로도 이 단말마의 숨막히는 전쟁을 설명하기란 어렵습니다.
미국은 참 대단합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초강대국다운 군사력도 군사력이려니와 첨단의 신무기들, 그 과학기술도 정말 대단합니다. 수백 리 밖 해상에서 육지의 표적을 족집게로 찍듯 정확히 박살내는 귀신같은 기술력은 가위 혀가 내 둘러질 뿐입니다. 그런데, 더 대단한 것은 전 세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굳이 전쟁을 벌이는 그 뱃심입니다. 지금 미국에게는 유엔도 없고, 우방도 없고, 여론도 없습니다. 그저 모르쇠와 독선과 아집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기에 미국은 ‘대단한 나라’입니다.
잘 몰라서 그렇지 원래 미국은 그런 나라입니다. 미국은 반미성향을 보이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민족주의자는 그때마다 제거해온 많은 전례를 갖고있습니다. 1953년 이란에서 합법선거로 뽑힌 모사데크총리를 축출하고 친미성향의 팔레비 꼭두각시정권을 수립한 것을 비롯해 2001년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정권 축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정부를 쓰러뜨려 왔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1964년의 브라질정권 전복입니다. 당시 미국은 군부를 교사해 쿠바의 카스트로와 가까운 굴라트대통령을 축출합니다. 브라질국민은 그로부터 21년 동안 군부독재에 시달립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1965년 반공군부세력을 부추겨 쿠데타를 일으키게 하고 수하르토의 30여 년에 걸친 독재를 지원합니다.
1989년 중남미의 소국 파나마에서는 더욱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입니다. 미육사출신의 친미파 노리에가가 말을 잘 듣지 않자 해병대원 2만명을 파나마로 침투시켜 그를 체포, 미국으로 압송해 마약밀매혐의를 씌워 교도소에 수감합니다.
미국은 그밖에도 1954년 과테말라에서, 1973년 칠레에서, 1974년 니카라과에서, 1994년 아이티에서 합법적인 정부를 전복시키고 친미정권을 세웁니다. 1960년 한국에서 4월학생혁명이 일어나 이승만대통령이 권좌에서 쫓겨났을 때도, 1979년 박정희대통령이 총탄에 쓰러졌을 때도 미국 배후 설이 나돌았습니다.
한때 우리는 미국을 평화의사도 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허상이었습니다. 미국을 평화의사도 라고 부르는 나라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지금 피 흘리며 죽어 가는 이라크인 들에게 미국은 무도한 침략자일뿐입니다.
지금 전 세계 곳곳에는 연일 미국을 규탄하는 수백만의 시위대가 ‘No War’를 외치며 물결처럼 거리를 누비고있습니다. 바오로2세 교황도 수만 명의 순례자들 앞에서 전쟁중단을 촉구합니다.
미국은 이번 전쟁을 이라크의 대량 살상무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석유 때문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든 어떤 구실도 전쟁의 명분이 될 수는 없습니다. 전쟁의 또 다른 이름은 대량살인입니다.
역사가 정의의 편이라면 훗날 세계는 부시를 전범(戰犯)으로, 미국을 침략자로 기록할 것입니다. 아름다운 티그리스강이, 더 이상 피로 물들기 전에 전쟁은 빨리 끝나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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