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있었던 SK에 대한 검찰 수사는 실로 복잡한 단상을 불러 일으킨다. ‘이번 수사는 노무현 정부의 의지와 무관하게 추진됐다는데, 그럼 정권변화라는 외부변수와 상관없이 검찰 스스로 판단해 결정한 순수한 산물인가. 전 정권때 비리를 확인해 놓고도 적당한 때를 기다리며 파일을 덮고 있다가 재벌개혁·원칙·투명성 등 개혁적 가치를 차별적으로 강조해 온 새 정권의 출범에 맞춰 검찰의 존재가치를 확인시키려는 절박한 필요성이 작용하진 않았나. 그렇지 않다면 하필 경제가 어려운 때…. 여당 사무총장의 오지랖 넓은 참견도 잘못됐지만 그렇다고 원칙을 강조해 온 새 정부의 경제부총리가 검찰에게 국가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고려해 달라고 요청한 것도 오해를 살만 한 일 아닌가. 아니 이 정도는 나라의 전체 이익을 고려해 용인될 만한 건 아닐까. 이런 문제까지 다 검찰에 맡겨야 하나. 외부회계시스템이나 증권거래소 금융감독원 공정거래위는 뭐 했는가. 정권의 연속성에서 볼 때 SK수사의 파장을 증폭시킨 건 검찰이 아니라 결국 정부 아닌가.’
이처럼 숱한 사변(思辨)이 꼬리를 무는 것은 노무현 정부가 집권후 처음으로 단행한 파격적 인사-집권초기의 특수한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스스로 원칙을 강조한 것에 비춰볼 때 문제가 있다는 평가가 많다-를 계기로 촉발시킨 검찰개혁 의제와도 연관이 있다.
특히 국민을 가슴졸이게 한 미증유의 ‘대통령과 검사와의 대화’ 과정에서 폭로된 여권과 정부의 외압관련 시비는 동시대 우리에게 깊은 고민거리를 던진다. 아울러 검찰개혁이 인사시스템 구축과 검찰의 정치적 독립이라는, 정치권력과 검찰권력간 양자만의 문제인 것처럼 논의되는 현상도 주권자인 국민 입장에선 크게 아쉽다.
결론부터 말해 검찰 독립은 우리 사회가 이뤄내야 할 숙제이며 SK수사는 경제정의라는 큰 가치를 달성하기 위한 정당한 것이었다는 판단이다. 어떠한 정치권력도 집권후 자기합리화의 모순에 빠져 항상 정의롭지만 않았다는 경험칙은 검찰개혁을 제도적으로 이뤄내야 한다는 생각에 조바심마저 부추긴다. 다만 모든 일에는 타이밍과 속도, 그리고 상황에 가장 적합한 방법론이 있기 마련이다. 더구나 수사만능주의를 부추길 수 있는 ‘검찰권력에 신성불가침적 지위 부여하기’는 곤란하다는 생각이다.
이는 검찰이 정치적인 사건 뿐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밀접한 일반사건을 다룸에 있어 항상 엄정하고 오류가 없었는가 하는 의문 때문이다. 역사의 교훈은 인간이 만들어낸 어떤 시스템도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이며, 그런 점에서 정칟검찰·언론·문화 권력 등을 막론하고 모든 권력은 상호견제와 감시를 받지 않으면 끝내 부패와 방종에 빠진다는 것이다. 더구나 조직특성상 검찰이 사회의 모든 현상을 사법적 판단의 눈으로만 재단하려는 경향을 갖기 쉽다는 점도 경계할 점이다. 경제계는 부적절한 검찰권의 개입,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면 자연과학적 지식을 결여한 수사권의 행사가 얼마나 끔찍한 사법피해를 낼 수 있는 지를 통조림의 포르말린 사건과 라면의 우지 사건에서 기억하고 있다. 검찰개혁 논의가 하드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함께 다뤄져야 하는 소이는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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