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재 표 정치부 차장

단체장을 선거로 뽑는 지방자치제도가 실시되면서 지방자치법 시행령에 따라 도입된 정무부지사는 ‘도지사 궐위 시 행정부지사에 이어 권한을 대행하는 것’이 그 권력의 정확한 좌표지만 무엇을 하는 자리인지는 사실상 명확하지 않다.

이름만 놓고 보면 ‘국회나 지방의회, 정당 등을 상대로 협의를 하는 등 정치적으로 도지사를 보좌하거나 지방자치단체장이 특별히 맡기는 업무 등을 총괄’하는 것이 맞지만 지금까지 정무부지사의 역할은 도지사가 누구고 어떤 역할을 맡기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다소 미안한 얘기지만 최소한의 정무부지사는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어야 하는 도지사 대신 행사에 참석해 축사를 대독하는 것이었다.
민선 1기 도백인 주병덕 전 지사는 행정공무원 출신의 김광홍 전 충북과학대 학장, 정치인 출신의 조성훈 현 동양일보 사장, 언론인 출신의 김영회 현 충북적십자 회장 등 다양한 인물을 정무로 기용했다.

이에 반해 민선 2,3기 수장인 이원종 전 지사는 조영창, 남상우, 한범덕 등 행정공무원 출신을 내리 정무부지사 자리에 앉혔다. 이 전 지사가 예상을 깨고 전반기 정무에 고 조영창 전 부지사를 임명하면서 기자들에게 전한 메시지는 지금까지도 인구에 회자된다.

“행정공무원을 임명함으로써 구조조정설로 불안한 공직사회를 안정시키고, 상대 진영에서 있던 사람도 포용할 수 있다는 아량을 보여주겠다. 그리고 몸을 도끼처럼 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당시 조 전 부지사는 주병덕 캠프에 가담했었다는 것이 정설이었고, 이 전 지사가 보여준 아량만큼 몸을 던져 일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낙선했지만 역시 행정공무원 출신인 한범덕 부지사는 도지사와 당적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자타가 공인하는 포스트 이원종이었다. 이 전 지사는 한 전 부지사에게 자신이 명운을 걸고 추진해온 ‘바이오 충북’ 관련 사업을 전적으로 맡겼고, 한 전 부지사도 선거 당시 이 전 지사의 업적을 잇겠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이 전 지사가 한 전 부지사에게 대형 성경책을 선물하며 ‘여호수아’편을 읽도록 당부한 것은 한 전 부지사를 사실상 자신의 적자로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행정관료 출신임에도 누구뭐래도 ‘정치인 지사’로 분류되는 정우택 지사는 정무부지사 임명과 관련해 가장 시끌벅적한 이벤트를 펼쳤다. 당초 정무부지사 대신 ‘경제부지사’를 선임하겠다고 밝혔으나 명칭변경에 따른 절차상의 어려움 때문에 포기했다.

어찌 됐든 IMF 이후 국민들의 경제적 박탈감이 해소되지 않고있는 상황에서 ‘경제부지사, 경제특별도’ 이벤트는 나름대로 정 지사의 의지를 보여준 측면이 있다. 타 시도의 경우에도 경제인이나 정부 예산부처 관계자 등을 경쟁적으로 임명하는 것이 추세였다.

경제인 중에서도 노화욱 전 하이닉스 전무를 기용한 것에 대해서는 사실 의견이 분분하다. 당초 당선인 신분의 정 지사는 “중앙에서 CEO급을 데려오겠다”고 호언했기 때문이다. 다만 정무부지사 연봉으로 최고경영자 수준의 거물을 데려오기도 쉽지 않았고, 지역의 지인들이 노 부지사를 강력히 천거했다는 사실 정도만 알려져 있다.

하이닉스 공장 증설은 2010년까지 진행될 예정이고 정 지사는 임기 내내 유효한 카드를 사실상 성사시켰다. 아직 결과를 예단하기는 이르지만 정 지사가 정무 기용에 있어 정치인 다운 ‘노림수’를 보여준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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