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밤 9시. 문화공간 너름새에서는 청년극장 단원들이 따끈따끈한 대본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왜 여기서 직지축제를 강조해야 하는 거야” “직지를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들을 따져보고 가야지~” 이번 무대의 주인공들은 대본 한마디 한마디가 쉽게 넘겨지지 않는다. 대본이 벌써 10번도 넘게 바뀌었다고 한 단원은 귀띔했다.

청년극장은 4월 22일 제25회 충북연극제에서 ‘직지’를 무대에 올린다. 대본은 극작가 우현종씨가 뼈대를 놓았고, 청년극장 단원들이 공동 창작했다. 우현종씨는 지난 2000년 청년극장이 전국연극제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세월이 가면’을 쓴 작가다. 이번 연출은 청년극장 진운성 대표가 맡았다.

“또 직지야” 기대감과 불안감 교차
이러한 직지 문화상품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오페라(직지오페라추진위원회 ·2000년 초연), 춤 직지(청주시립무용단·2003년 초연), 연극 직지(청주시연극협회·2006 초연)가 있다. 더 나아가 직지 넥타이부터 직지 초콜릿까지 나왔다. 그러나 아직까지 뚜렷한 성공을 기록한 작품은 없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직지문화상품은 아직까지 흥행력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진운성 청년극장 대표는 “청주는 어느새 직지의 고장이 되버렸죠. 사업가는 사업가대로, 문화운동가는 운동가대로 활동을 펼칩니다. 예술가도 자신의 영역에서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었어요. 이 지역에 살면서 모든 사람들이 직지를 말할 때 외면한다면 방관자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연극적인 시각으로 직지를 문화상품화하는 것이 목표입니다”고 말했다.

직지는 지난해에도 연극무대에 올랐다. 청주시연극협회가 제작한 연극 직지는 김태수씨가 대본을 쓰고, 이창구 전 청주대 교수가 연출을 맡았다. 직지 본질에 대한 접근은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금속활자 제조과정의 우연적 처리나, 드라마 구성은 흥미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일었다.

여하튼 연이어 같은 소재가 무대에 올려지는 셈. 연극계에서는 미묘한 부분이아닐 수 없다. 이에 진대표는 “사실 연극 직지는 꽤 오래전부터 준비를 해왔어요. 지난해 먼저 드라마 작가에게 의뢰해 대본을 받았지만,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아 접었죠. 직지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긍정적인 시도 아닐까요”라고 대답했다.

이어 “그동안 직지가 오페라, 무용, 연극, 드라마(MBC문화방송 단막드라마) 등 여러 장르로 표현된 것을 꼼꼼히 모니터했어요. 그런데 모두 직지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의미를 찾는 ‘과거 시젼에만 머물러 있더라고요. 그러다보니 동시대성이 떨어지고, 이야기도 구태의연하고요”라고 덧붙였다.

“동시대성 부여했다”
그렇다면 현재 시점에서 바라보는 직지는 어떤 모습일까. 청년극장 단원들은 “직지가 현존 최고 금속활자본이지만, 직지보다 오래된 금속활자본이 발견됐을때의 상황, 직지가 끝까지 발견되지 않을 경우 등 딜레마와 직지를 주제로 한 다양한 문화행사들의 실태 등 강도 높은 질문을 던질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무대는 직지와 청주와의 끈질길 인연을 다룬다. 그래서 제목도 ‘직지 그 끝없는 인연’이다. 직지를 인연의 관점에서 풀어가는 것이 일단 흥미롭다. 우현종 작가는 “직지가 왜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는지 반성해봐야 합니다. 잃어버린 문화재, 문화유산에 대한 관리소홀을 냉정하게 따져봐야죠. 어쩌면 직지가 그나마 프랑스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알려진 것이 아닐까요. 이번 연극은 픽션과 드라마로 삶의 갈등을 총체적으로 담고 있습니다”고 말했다.

청년극장이 이번 충북연극제에서 우승을 하면 자동적으로 전국연극제에 진출하게 된다. 이번 충북연극제는 청년극장, 시민극장, 달래, 늘품, 상당극회 등 총 5팀이 참가하며 4월 21일부터 24일까지 청주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수상작은 5월 18일부터 6월 3일까지 경상남도 거제에서 개최되는 전국연극제에 참가하게 된다.

진대표는 “청년극장은 전국연극제 수상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이유는 직지를 큰 무대에서 더 많이 알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청년극장이 직지의 현재를 조명하고, 미래를 진단할 수 있을지 기대를 모은다. 이번 연극에는 김상규, 임은옥, 진운성, 방근성, 이미영, 권영옥, 윤원기, 김정수, 유지현, 최영갑씨등이 출연한다.

한편 이번 연극을 통해 연극계가 관립극단의 필요성을 제기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들린다. 이에 진대표는 “관립극단이 된다면 지역순회공연이 용이하고, 상설공연도 가능해지겠죠. 또한 기타 시립예술단과 함께 장르 교류해 총체극의 시너지 효과도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라며 희망사항을 내비쳤다.
/ 박소영 기자

“그동안 짝사랑 키워왔어요”
직지 대본 맡은 우현종 작가


우현종씨는 청주대 연극영화과 91학번으로 재학시절부터 청년극장과 연을 맺었다. 2000년‘세월이 가면’으로 대통령상을 받았고, 그 후‘왔소 왔소 내가 왔소’등을 썼다. 청주가 ‘연극적 고향’이라는 그는 서울과 청주를 오가며 활동중이고, 현재 혜화동 1번지 4기 동인이다. 또한 프로젝트 그룹 ‘추파’의 대표도 맡고 있다.

우씨는 “4~5년전부터 직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어요. 2004년 직지축제에서 고려퍼레이드를 연출하면서 청주를 고려시대와 연결짓기도 했죠”라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직지에 대한 짝사랑을 키워왔어요”라고 고백한다.

이번 대본은 지난해 10월부터 써내려갔다. 우씨는 “직지는 고승들의 선문답집일뿐인데, 현재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갚 줄곧 생각했다고.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직지보다 30년 늦은, 구텐베르크보단 앞선 금속활자본 10권짜리 가 우리나라에 존재하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관리소홀로 10권의 책은 뿔뿔히 흩어져 있습니다. 우리나라 문화의식의 수준을 보여주는 대목이죠. 이처럼 직지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이지만, 문화재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은 극히 부족해요.” 이러한 주제의식이 전체적인 플롯에도 반영된다. 전문 문화재털이범이 훔친 물건은 모 기업의 박물관에 있다던가, 우연히 책을 보고 불교에 관심을 가진 주인공이 막연한 직지찾기 운동에 뛰어들면서 벌어지는 해프닝들이 전개된다.

연극은 현재시점과 과거 백운이 직지를 편찬했을때의 시대상황을 교차편집한다. 과거장면에서는 공민왕, 백운, 보우, 신돈을 한꺼번에 등장시킨다. 우씨는 “공민왕을 노대통령으로, 보우와 신돈을 각각 여당, 야당으로 그리려 했죠. 또한 여기에서 백운은 정치적인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직지 편찬에 매달린다는 설정입니다. 시간이 모자라 캐릭터연구가 부족했다는 아쉬움도 남아요”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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