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15만에 할인점 1개’ 지침 논란일어
시·군 “상위 법 무시한 졸속 면피용 방책”

충북도가 대형할인점의 무분별한 입점을 막는다며 인구 15만명당 1개소로 업체수를 강력히 제한할 것을 도내 시·군 자치단체에 지침으로 확정·통보한 것과 관련, 새 지침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과 함께 민감한 사안에 대해 일선 시·군에 책임을 떠넘기려는 충북도의 무소신 행정 태도가 새삼 비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충북도는 지난 12일 “재래시장 등 기존 영세상권의 위축 가속화, 지역자금의 역외유출, 교통체증 유발, 대형점의 과다 경쟁 등 대형할인매장의 과도한 입점으로 발생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충북도정(道政)조정위원회를 열어 입점업체를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대형점 입점에 따른 개선대책’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도는 이 자료에서 ‘삼성경제연구소의 연구결과 대형할인점은 인구 15만명당 1개소가 적당하다는 분석결과를 참고하고 재래시장 등 기존상권과의 조화로운 발전 및 지역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고려해 시·군별로 인구 15만명당 매장면적 3000평방미터(약 900평)이상 대형할인업체에 대해선 1개소만 입점을 허용토록 했다’고 지침 내용을 설명했다.

시·군에만 책임전가
이 지침대로라면 현재 각각 7개 업체(중원 홈플러스 포함)와 2개의 대형할인업체가 입주해 영업하고 있는 청주와 충주는 이미 적정 점포수를 넘게 돼 두 지역에서는 향후 할인업체의 추가 입점이 불가능하게 된다. 또 제천은 최근 2건의 대형할인매장 신축을 위한 사전복합민원서가 접수돼 있는 상태이지만 새 지침의 권고대로라면 한 업체도 들어올 수 없게 된다. 제천시 인구는 현재 14만 4000여 명으로 시는 1개 업체의 입점은 가능한 것으로 해석하는 분위기지만 충북도의 지침을 엄격히 해석하면 이것 마저도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충북도의 이런 지침은 대형할인업체의 설립을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완화한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을 정면에서 배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효성 논란과 함께 충북도가 책임소재를 시·군 자치단체에만 떠넘기는 것이 아니냐는 반발과 비난을 초래하고 있다.
도내 시·군 자치단체들은 “충북도가 왜 이런 지침을 만들었는지 고충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는 명백히 상위규정인 유통산업발전법과 배치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며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 아래에서 대형할인점이 충북도의 교통영향평가를 거쳐 건축허가를 신청해 올 경우 시·군으로선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도의 지침이라고 해서 현행법에 따라 신청된 건축허가를 이유없이 처리하지 않을 경우 행정소송에 휘말려 패소할 것이 뻔하고 이에따른 소송 비용 및 행정력 낭비는 불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도의회 의식해 선수치기 의혹도
청주시 관계자는 “대형할인매장이 무분별하게 입점해 과당경쟁을 벌임으로써 지역경제에 심각한 부작용을 발생시키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이는 정부가 IMF이후 외국자본의 국내유입 문턱을 없앤다며 유통시장을 개방한 이후 벌어지는 불가피한 현상으로 현행법상 규제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 고민”이라고 충북도의 지침을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대형할인매장의 무분별한 입점에 따른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관련법 개정이 선결돼야 한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재래시장과 소상공인들은 이런 충북도의 지침에 대해 “까르푸와 중원호텔내 대형매장을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교통영향평가 과정에서 승인해준 장본인은 바로 충북도 아니냐”며 “이 과정에서 밀약설, 특혜의혹 등 각종 의문점을 자초한 충북도가 일은 다 저질러 놓고 뒤늦게 실효성없는 대책을 뒷북치듯 내놓은 건 면피만 하고 보자는 전형적인 구태”라고 비판했다.
더구나 충북도는 문제의 지침을 도의회가 열리는 시점에 교묘히 맞춤으로써 의원들의 추궁을 비켜가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받고 있다. 의원들이 대형할인매장 문제에 대해 잔뜩 벼르고 도정질문을 준비하고 있는 사실을 간파하고는 사전에 김빼기용 모범답안을 허겁지겁 만든 흔적이 노출된 때문이다. 충북도는 이 지침을 도정질의가 끝난 뒤 긴급발표 형식으로 언론에 배포했다.
충북도의회 교육사회위원회 소속 오장세 의원과 이대원 의원은 지난 12일 도의회 임시회에서 해당 상임위의 분야와 무관한 주제인 재래시장 활성화 방안 및 무분별한 대형할인매장의 입점허가 문제에 대해 이례적으로 집중질의하고 보충질문까지 하는 등 충북도를 추궁하고 나섰다.

청주시 “지침 수용 곤란”
이대원 도의원은 특히 이날 도정질의에서 “광주시는 지역주민 및 상권 보호를 위해 대형할인업체에 대한 교통영향평가를 4년이상 시간을 갖고 충분히 의견수렴을 통해 심의했는데 충북도는 불과 2∼4개월만에 관련심의를 통과시켰다”며 “특히 규모가 까르푸의 4배가 넘는 1만2500평의 초대형 유통시설을 중원호텔에 입주시키기로 한 충북도의 결정은 이것이 호텔인지 아니면 호텔을 빙자한 대형매장의 변형된 입주인지를 분간하지 못하게 하는 본말이 전도된 행정처리”라고 비판했다.
한편 까르푸(정확히 말하면 교보빌딩내 대형할인매장)의 입점에 대해 반대 입장을 충북도에 피력했던 청주시는 지난 14일 부시장을 이원종 도지사에게 보내 이 지침과 관련한 청주시의 견해를 전달한 것으로 밝혀져 주목된다. 청주시는 이날 도지사에 대한 보고에서 ‘대형할인매장은 지역경제에 도움이 안될 뿐더러 교통혼잡 유발 등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인식에 전폭적인 동감을 표시하면서도 동시에 가경동 홈플러스, 율량동 까르푸, 월마트 등에 대해 교통영향평가를 충북도가 승인해준 상태에서 청주시가 관련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을 수는 없다는 입장임을 분명히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청주시 관계자는 “사전에 교통영향평가 심의과정에서 승인해 줘 놓고 시·군에게 건축허가를 내주지 말라는 충북도의 지침은 현실적으로 따르기 곤란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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