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제 청주지검장이 서울지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느 기관이든 인사는 큰 의미를 띤다. 그 의미라는 것은 동질집단 내부의 속내일수도 있고, 주변으로부터 가해지는 평가일수도 있다. 어쨌든 서지검장의 영전인사는 축하해야 할 일이다.

대개 초임 발령자의 몫이었던 청주지검장이 곧바로 ‘검찰의 꽃’이라는 서울지검장으로 파격 전보된 것은 전례가 없다. 검찰파동의 여진이 남은 상황에서 그의 인사에 대한 조직내 진단은 여전히 관심거리이지만 청주지역 특히 충청리뷰가 느끼는 사감(私感)도 결코 예사롭지 않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솟구칠 때 우리는 으레 만감이 교차한다는 말로 얼버무린다. 지금 리뷰의 심정이 바로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이미 잘 알려진대로 충청리뷰는 지난해 말 청주지검과 관련돼 약 두달간 힘든 시간을 가진 적이 있다. 이젠 많은 시간이 흘렀기에 이 정도의 표현으로 갈무리하지만 청주지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맞섰던 당시엔 정말 자진(自盡)하고 싶다는 말밖에는 적당한 표현을 찾지 못했다. 검찰을 한번 비판했다고 해서 사주가 구속되는 보복수사를 당했고 광고주들이 줄줄이 불려가 곤욕을 치렀는가 하면 그 유탄으로 지역의 명망인사가 영어의 신세로 추락하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지난번 노무현대통령과 평검사들의 토론을 지켜 보면서 리뷰직원들은 아주 색다른 감흥(?)을 경험했다. 공개토론, 그것도 TV로 생중계되는 자리에서 대통령의 ‘흠집’을 지적하는 젊은 검사의 모습이 당시 리뷰사태와 오버랩되어 머리칼을 솟구치게 했기 때문이다. 누구는 저렇게도 비판하는데, 우리는 왜 그 고생을 했을까. 그것도 대통령과 비교가 안 되는 ‘인물’과 ‘비판’을 놓고 말이다.

리뷰사태 이후 나는 좀체로 그 때를 말하려 하지 않는다. 굳이 누가 캐물으면 그저 그 상황에서 언론의 소임을 다 했을 뿐이라고 받아넘긴다. 그래도 가슴 한 켠을 무겁게 짓누르는 응어리는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가족과 떨어져 차디찬 사무실 바닥을 전전했던 철야농성이 억울해서가 아니다. 뜻하지 않은 일로 영영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심장속에 묻고 있을 여러 사람들 때문이다.

당시 수사라인의 정점이던 서영제 검사장을 의식속에서 쉽게 놓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가 영전의 축복속에 표표히 청주를 떠나는 순간 한편에선 전과자라는 굴레를 또 한번 뼈저리게 되새김질해야 하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이 있다. 그들의 혐의에 대한 무조건적인 변호가 아니라 검찰의 수사의도가 온당치 않았음을 말하는 것이다.

얼마전 주변의 주선으로 직접 만나 본 서영제검사장은 사실 나의 경직된 선입견을 많이 희석시켰다. 한쪽은 ‘신문같지도 않은 신문’으로, 다른 한쪽은 ‘오만방자한 검찰 공권력의 횡포’로 상대를 철저하게 불신했었는데 막상 서로가 조금씩 실체를 확인하면서 아쉬운 점도 많았다. 비록 정제된 말만을 교환했을지언정 불신이 조장하는 인간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재삼 떠올리게 한 자리였다.

악연으로 만났지만 그래도 별리(別離.)는 묘한 감정을 낳는다. 같이 만난 후배검사들의 평가대로 그가 검사로서 원칙에 충실하고 섬세한 식견과 학구열로 가득찬 인물이라면 이번 서울지검장 발탁은 향후 자기발전의 예고편에 불과할 것이다. 때가 되면 검찰총수에 오를지도 모른다. 나의 이런 사념은 두가지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한번 다퉜던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고 다른 하나는 그 동안의 피해의식에 대한 보상심리의 발로다. 더 솔직히 말해 앞으로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리뷰 사태를 계기로 주변 사람들을 폭넓게 만난 것으로 알려진 서검사장에게 한마디 더 하고 싶다. 일을 벌인 후에 굳이 자기이해와 합리화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꼭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오히려 본인의 정체성을 구길 수 있다. 검사에 대해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투명한 신념이지 자의적인 위무(慰撫)가 아니다.

리뷰가 바라는 것도 당시 수사건에 대한 명쾌한 ‘답(答)’이지 본말이 무시된 ‘덕담’이 아니다. 이런 아쉬움은 여전히 남을 것이다. 그래서 언젠간 서로 직업과 직책의 구속을 받지 않을 때 꼭 이 질문을 던지고 싶다. “왜 그 때 리뷰를 죽이려 했는지.” 다시 한번 서영제검사장의 영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