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은 ‘세계여성의 날’이었습니다. 도내 여성단체들은 이날을 맞아 청주원불교 충북교구대강당에서 3·8세계여성의 날 기념 ‘2003 충북여성 한울림대회’를 열고 당면과제인 ‘차별 없는 양성평등’을 한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충북여성민우회, 청주여성의 전화, 충북여성정치세력연대등 12개 여성단체가 주축이 된 이날 대회는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시종 열기 속에 진행됐습니다.
세계여성의 날은 1908년 3월8일 1만 5000여 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뉴욕의 루트커스 광장에 모여 선거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대대적인 시위를 벌인 것에 그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당시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은 먼지 자욱한 노동 현장에서 하루 14시간씩 일하면서 귀부인들의 화려한 외출복에 은색, 금색의 번쩍이는 장식을 박느라 눈이 머는 사람마저 있었으나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선거권과 노동조합결성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여성들은 굶지 않기 위해 일하면서도 인간 이하의 삶을 강요당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해 3월 전 의류노동자들의 시위는 결국 1910년 ‘의류노동조합’이라는 조직을 탄생시켰고 3월 8일을 ‘세계여성의 날’로 정하여 1911년부터 전세계 곳곳에서 세계여성의 날 기념행사를 펼쳐 오고있습니다. 그로부터 미국에서는 해마다 3월 한 달간을 여성단체들이 다양한 행사를 가져오고 있고 중국에서는 3월 8일을 공식 휴일로 지정해 여성들을 위한 갖가지 행사를 국가에서 열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1920년대부터 3·8기념행사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으로 중지됐다가 해방 뒤 부활됐으나 1948년 정부수립 후 다시 맥이 끊겼다 30여 년이 지난 1985년 여성단체들이 연대하여 ‘민족자주, 민중과 함께 하는 여성운동’이라는 주제로 제1회 여성대회를 개최한지 올 해로서 열 아홉 해를 맞았습니다.
충북에서는 1997년 여성관련 시민단체주관으로 기념행사를 시작한지 올 해로서 7회 째를 맞았습니다. 3·8여성대회는 당면한 여성의 현실을 진단하고 권익을 향상시키기 위한 중점과제를 선정해 공동실천의지를 모아내는 단결과 연대의 자리라는 측면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아쉬웠던 것은 이날 대회에는 그 많은 기관 단체장 중 어느 누구도 행사에 참석해 격려의 말 한마디 해준 이가 없었던 점입니다. 평소 낯을 내는 자리라면 열 일을 제쳐놓던 기관장들이지만 이 날만은 누구 한사람 볼 수가 없었습니다.
또 여성의 날 이라면 당연히 모습을 보여야 할 그 많은 전문직 여성들은 왜 한사람도 참석하지 않은 것일까. 사내갈등으로 농성중인 월드텔레콤의 여직원들을 빼면 불과 몇 십 명의 여성단체회원들만이 겨우 자리를 함께 했을 뿐이기에 말입니다. 여성의 날은 의당 여성들 모두의 축제일 터인즉, 그 잔치를 여성들이 외면하고, 그 흔한 화환 하나 보내준 사람이 없는 것만으로도 오늘 우리지역 여성운동의 현주소는 분명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근년에 와서 여성의 권익은 눈에 띄게 신장된 것이 사실입니다. 사회 각 분야에 여성들의 진출이 늘어나고 가정이나 직장에서 여성들의 발언권이 커진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장관 한 두 사람 더 늘어나고 외식하는 주부들의 숫자가 늘었다고 해서 양성평등의 사회가 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우리 사회 의식을 지배하고있는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비단 남성들만의 일이 아니라 여성들 또한 더욱 그렇습니다. 여성이 여성의 존재를 존중하지 않으면서 양성평등을 기대한다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에 다름 아닙니다. 이날 결의문을 외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메아리 없이 애처로웠던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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