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오지학교 탐사대' 16일간의 방문일지

도내 교사·학생 40명으로 구성된 ‘히말라야 오지학교 탐사대(대장 김영식)’가 지난 1월 중순부터 16일간 네팔을 방문했다. 지난 2005년부터 히말라야 오지학교 방문을 시작한 탐사대는 올해 3번째 행사를 마쳤다.

이들은 오지학교를 찾아 후원활동도 하지만 히말라야 등반도 빼놓을 수 없는 탐사목적이다. 코스는 원만하지만 해발 5416m가 넘는 코롱라봉을 38명의 대원이 무사히 등정했다. 대원들의 안전한 등반을 책임졌던 탐사대 박연수 부대장(43·충북산악연맹 산악구조대장)이 탐사일지를 작성했다. 지면관계상 탐사일지의 일부를 발췌해 소개한다. <편집자주>



1월15일 총 39명으로 이루어진 탐사 대원들은 네팔의 오지학교 학생들에게 나누어줄 작은 선물 꾸러미와 마음의 정겨움을 가지고 대한항공에 몸을 싣고 출발하였다. 초등 4년생부터 퇴직하신 선생님까지 남학생 7명, 여학생 2명, 남선생님 23명 여선생님 7명으로 구성된 히말라야 오지학교 탐사대는 2005년 랑탕히말에서의 1차 탐사를 시작으로 작년 안나푸르나에서 2차 탐사를 실시하였고, 이번이 3번째 탐사로 에베레스트가 있는 쿰부히말의 칼라파트라(5,545m)를 최종 목적지로 계획하였다. 그러나 신의 허락이 있어야만 입산이 가능한 이곳에서 우리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온난화 현상으로 인해 매일 안개가 끼고 우리의 목적지인 에베레스트 지역으로는 비행기가 운행을 하지 못했다. 급하게 우리는 일정을 바꾸어 안나푸르나 트레킹의 반쪽인 무스탕지역으로 트레킹 및 방문학교를 변경하게 되었다. 1월17일 안개로 뒤덮인 카투만두 하늘을 뒤로하고 버스를 이용해 나야풀로 향했다. 맑아진 공기사이로 차선도 없는 도로를 버스는 질주를 한다. 강원도 보다 더 산비탈인 절벽을 옆으로 두고 버스는 곡예 하듯 달린다. 차창 너머로 계단식 논이 보인다. 아주 가파른 곳을 제외하고는 산 전체가 계단식 경작지로 개간이 되어 있다. 네팔은 농업이 80%로 인도에 쌀을 약간 수출한다. 그 외 관광 사업과 상업이 주된 직업들이다. 도로 오른쪽으로 트리슐리 강이 흐른다. 여름에 레프팅 장소로 유명한 트리슐리강은 랑탕히말에서 내려와 흘러흘러 인도 바라나시(Varanasi)의 갠지스강으로 간다. 들판이 넓어지며 유채꽃 밭이 장관을 이루는 것을 ! 보니 포카라에 도착한 듯하다. 포카라는 네팔의 휴양도시로 안나푸르나산군이 투영되는 페화호가 있으며 왕의 별장이 있는 곳이다. 포카라에서 입산허가를 새로 받고 트레킹 출발지인 나야풀에 도착한 시간이 4시30분! 장장 9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도착한 마을 입구엔 대나무 장대를 이용하여 높이 현수막을 하나 걸어놓았다. 현수막에 이러한 글귀가 쓰여 있었다. “이곳은 우주의 신성한 어머니이며, 찾아오는 순례자들에게 행복, 평안, 평화, 부귀, 구원을 안겨주는 성스러운 장소인 안나푸르나로 가는 입구입니다.” 나야풀은 담푸스를 통해 푼힐전망대로, 난드룩을 통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로 가는 기착지이다. 30분을 걸어 비레탄티(1,050m)에 도착했다. 거대한 계곡이 합수하는 곳으로 물소리가 매우 우렁차게 들렸다. 어쩌면 성스로운 곳에 진입하는 인간들에게 겸허한 마음으로 입산하라는 메시지처럼 들렸다. ▲ 토롱라봉(5416m)정상에서 박건영군(초등5)이 소원캡슐을 묻고 있다.
1월18일 일어나자마자 하늘을 바라보니 하늘을 빼곡히 채운 별은 어서 오라 손짓 하고 산기슭의 초승달은 실쭉실쭉 웃는다. 나를 보고 웃던 달도 이내 안개가 뒤덮는다.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은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따라 오르다보니 옛 설악을 생각게 한다.

한적한 산길의 물소리는 상념을 잊게 하고, 폭포 소리는 근심을 잊게 한다. 저 멀리 고기 잡는 젊은이는 연실 고기주머니에 고기를 집어넣느라 바쁘고 방울소리 내며 내려오는 나귀는 이곳이 설악이 아님을 알게 해 준다. 길가에서 짙게 베어 나오는 소똥냄새는 이곳의 향기를 느끼게 해주고 ‘나마스떼’하고 나누는 인사는 정겨움을 가져다준다.

계곡을 건너는 구름다리는 초등학생들에게! 놀이터로, 여선생님들에게는 비명을 지르는 공간으로 변한다. 길가에는 병아리가 노래하고 우리나라 달맞이꽃 같은 노란 꽃은 화사함을 더해준다.

따뜻한 기후 덕에(?) 포인세티아가 더욱 빨갛게 빛난다. 또한 60년마다 한번 핀다는 대나무 꽃이 우리를 반긴다. 잠깐의 휴식시간을 이용해 윤석주 선생님께서 한마디 하신다. “NEPAL이 무엇의 약자일까?” “Never End Peace And Love”라 하시며 결코 희망과 사랑이 끝나지 않는 나라가 되길 희망하신단다.

앞사람의 궁둥이가 코에 닿을 듯한 급경사를 올라 고레파니에(2,800m) 도착했다. 급작스런 일정 변경으로 보통의 트레커들이 하루 반나절에 갈 거리를 하루 만에 올랐는데 모두들 잘 오른다.

▲ 해발 2천m의 가사마을 학교에서 탐사대는 80여명의 학생들에게 학용품을 전달하고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1월19일 하늘엔 별들이 빼곡히 모여 서로 자리다툼을 하느라 바쁘다. 새벽 4시 중무장을 한 대원들은 헤드랜턴 불빛을 밝히고 푼힐전망대(3,210m)를 향해 출발하였다. 39명의 긴 행렬의 불빛은 밤하늘의 별빛과 맞물려 위아래에서 실루엣을 만들어 낸다. 가끔씩 우리를 앞지르는 외국 트레커들을 제외하곤 고요함과 숨소리 뿐 자연과 우리가 하나 됨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산불 감시 초소보다 5~6배 큰 전망대가 나타나면서 거친 숨소리는 평온과 기대의 숨소리로 바뀌었다. 저 멀리 어둠속에 다울라기리(8,167m), 투크체(7,010m), 닐기리봉(6,940m)과 함께 안나푸르나연봉이 장엄하게 펼쳐져있다. 신성의 산 마차푸차레는 (6,993m) 우! 리를 향해 꼬리를 흔들어 준다. 어둠속에서도 고고한 자태로 서있는 저 장엄한 산들은 우리 모두에게 자연의 위대함을 알려주는 전령사이다.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자 모두의 숨소리조차 고요해지고,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희망을 노래한다. 이글거리는 붉은 태양이 불뚝 솟아오르자 탄성소리와 카메라 셔터소리가 요란하다. 삼삼오오 짝을 이뤄 저 멀리 보이는 위대한 산군들을 배경으로 추억을 기록한다. 우리가 단체사진을 찍는 사이 어느 외국 트레커는 함께 사진속의 동반자가 되었으며 다른 트레커들도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 준다. 자연 앞에서는 남과 여, 백인·흑인·황인·부유한 자·가난한 자가 모두 하나가 된다. 감동의 푼힐을 뒤로하고 고라파니로 내려와 아침을 먹었다. 다울라기리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우측으로 안나푸르나 남봉(7,219m)을 곁에 두고 급경사를 내려간다. 108번의 실타레가 감긴 보리수나무도 지나고 감귤 농장도 지난다. 염소떼에 길을 넘겨주며 휴식을 취하고 시카마을에서 밀크티도 한잔했다. 저멀리 다울라기리산(8,017m)과 안나푸르나산(8,091m) 사이를 흐르는 칼리 간다키 강이 보인다. 칼리 간다키 강은! 세계에서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강이다. 무스탕지역을 굽이쳐 흐르는 칼리 간다키 강은 마르샹디강과 만난 후 카투만두 북부에서 흘러내리는 트리즐리강과 합쳐 인도 갠지스강으로 흐른다. 시원스레 흐르는 강줄기를 따라 30여분 오르니 따또바니(1,190m)다. 따또바니는 온천물이 나오는 곳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으로 우리말로는 뜨거운 물이다. 모두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온천을 하러간 사이 난 롯지(여행자숙소)에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였다. 3일만의 샤워는 나에게 상쾌함을 선사하였다. 1월20일 마을 바닥 길은 널찍한 돌로 깨끗하게 깔려있어 정감을 준다. 길을 청소하는 아이는 당나귀 똥을 주워 밭에 거름을 주려고 한단다. 덕분에 길은 깨끗이 청소되었다. 유난히 귤나무 농장이 많은 이곳에도 서리가 있는지, 아니면 짐승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함인지 귤 농장은 돌담으로 둘러쳐져있고 돌담위에는 가시가 있는 선인장을 심어 돌담을 넘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 선인장은 기린초로 철조망에 의존한 문명의 방어벽보다 정감어려 보았다. 얼마 가지 않아 길이 무너져 있었다. 지반이 붕괴되어 어제 현지인 2명이 계곡으로 굴러 죽을 뻔 하였다 한다. 우리는 조심조심 절벽의 돌을 잡고 한 명 한 명 건너고 포터들은 지반붕괴를 ! 우려해 산을 돌아 우회하였다. 길은 도로공사가 한창이었다. 중장비 하나 없이 손으로 바윗돌을 부수고 축대를 쌓는다. 모두 인력에 의존한 방식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 하겠지만 중장비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답답해 보였다. 그래도 시멘트 축대보다 정감어린 돌로 싼 축대는 이 길에 차가 다녀 문명의 이기로 가득 찰 때도 정감이 있을 것이다. 넓은 길을 따라 중간 중간 거대한 산사태 지역이 보였다. 노년기 지형으로 자꾸 지반이 붕괴되는 듯 하였다. 오른쪽으로 칼리 간타키 강이 세차게 흐르며 트레커들의 피곤함을 적셔준다. 다나를 지나자 엄청난 물소리와 함께 거대한 룹세 차하라 폭포가 눈에 들어왔다. 룹세 차하라의 거대한 폭포줄기는 이방인은 발걸음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어느덧 무스탕 지역으로 들어왔다는 안내판이 보이고 주위는 더욱 황무지로 변해 가는 듯 하다. 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이 공사가 끝나면 이곳은 서양의 문명과 전통 문명 사이에 강한 충돌을 빚을 것이다. 제법 큰 마을이 나타났다. 오늘의 학교를 방문하기로 한 가사마을(2,010m)이다. 학교는 제법 크고 너른 운동장을 가지고 있었다. 랑탕과 안나푸르나에서 방문한 학교보단 제법 세련된 학교였다. 학생들은 방학이라 산에 나무하러 가는 등 집안일 돕느라 일찍 모이질 못하고, 4시쯤 되자 80여명의 학생들이 모였다. 학교운영위원장 말에 의하면 외지인이 학교를 돕자고 방문한 것은 32년 만에 처음이라 하였다. 우리는 김종민팀장의 주관으로 현지 학생들과 함께 풍선아트, 꼬리잡기, 줄넘기를 이용한 놀이, 함께 이어달리기를 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느끼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모두들 오래전 알던 사람들처럼 흥겨움이 넘쳤다. 현지학생들이 기뻐하는 천진난만한 눈동자는 그곳의 어느 자연의 풍광보다 아름다웠다. 우리는 준비해간 의류와 학용품 축구공 줄넘기 등을 건네며 나눔의 소중함을 느꼈다. 저녁식사 후에는 동네사람들이 감사하다며 우리의 숙소를 찾아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피로도 잊고 현지학생들과 주민과 즐거운 한때를 가졌던 탐사대원 모두 넉넉한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었으리라.
1월23일
급경사의 언덕을 올라 뒤돌아보니 좌로 닐기리봉이 정면으론 다울라기리, 투크체가 오른편에는 칼리 간다키 강줄기위로 무스탕 산군들이 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까그베니 마을 윗 쪽으로는 사과나무로 보이는 과수원이 보고 묵니나트로 향한 협곡은 황량한 그랜드캐년을 연상케 하였다.

저 멀리 우리 트레킹의 종착지인 토롱라가 보이고 양쪽으로 야카와캉(6,481m)과 캉츙캉(6,384m)이 위용을 자랑한다. 발을 옮길 적마다 먼지가 풀풀 올라가는 도로길을 걷으며 롯지를 통과 할 적마다 아낙네들은 그네들이 짠 알록달록한 목도리를 사라고 우리를 불러 세운다. 황량한 사막 산속에 나타난 묵티나트(3,600m)는 넓은 공터도 있고 자그만 시장! 도 형성되어 있으며 여유로워 보였다.

묵티나트(Muktinath)는 힌두교와 불교 사원이 모여 있는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티베트 불교의 중요한 구심처이면서 카트만두의 파슈파티나트와 함께 힌두교의 2대 성지 중 하나다. 네팔 사람들 평생소원이 바로 묵티나트를 방문하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 ‘영원히 타오르는 불’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암석의 갈라진 지표면 틈에서 천연가스가 새어 나오는데, 그 가스를 태우며 타오르는 파란 불꽃을 네팔 사람들은 창조의 신인 브라흐마의 현현(顯現)이라 믿고 있다.

1월24일“표고차 1,800m를 하루에 올라갔다 온다는 것 자체가 무리이니 몸에 이상이오면 바로 하산하라. 정상에 오르는 것이 최상의 목표도 아니고 내려가는 것이 낙오도 아니니 서로 최선만 다하자.”란 이야기를 하고 새벽4시 초등학생과 여선생님을 앞으로 하여 토롱라를 향해 출발하였다.

고소증세로 출발을 하지 못하는 김종민 팀장을 제외하고 38명의 탐사대원들은 밤하늘의 별빛과 조화를 이루며 지상의 실루엣을 만들고 있다. 햇살이 다가오며 희미하게 보이던 산은 바위절벽처럼 우리 앞에 다가섰다. 발을 헛디디면 온 길로 떼굴떼굴 굴러 떨어질 것 같은 급경사의 길은 대원 한명 한명을 아래의 묵티나트로 향하게 만들었다.

토롱! 라가 가까워질수록 투통을 호소하는 사람이 생겨나고 아침에 먹은 내용물을 신께 반납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대부분의 대원들은 졸음을 호소한다. 나또한 졸음과 싸우느라 정신을 못 차렸다. 앉아있어도 걸으면서도 졸음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집사람이 나를 도우며 오른다. 오후 2시 토롱라 정상(5,416m)에 도착했다. 이곳이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넘나드는 고개로지구상에서 가장 높다는 고개 토롱패스다. 이곳을 넘어서면 마르상디강을 따라 마낭 지역이다. 짙은 코발트색의 하늘아래 하얀 설산들이 우리를 반긴다. 바람은 우리를 저 순백색의 산으로 날려 보낼 만큼 세차게 분다.

어느덧 나를 괴롭히던 졸음이 세찬바람과 함께 코발트빛의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야카와캉(6,481m)과 캉츙 캉(6,384m), 푼트런 히말(6,466m), 젠장(6,111m), 출루(6,584m)가 우리 오지학교 탐사대원 모두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보낸다. 고개 한가운데에 돌무더기 탑이 있고 룽다 깃발 하나가 가운데 꽃혀 있다.

세찬바람에 펄럭이는 룽다를 바라보며 우리는 각자 적은 소원을 담은 캡슐을 이곳에 묻었다. 함께 오르지 못한 대원들의 소원도 함께 ! 隔殆 묻었다. 감동에 겨워 흐느끼는 대원들이 보인다. 그토록 갈망하던 곳 에 올라 소원을 묻은 대원들은 펄럭이는 룽다를 따라 각자의 소원을 널리널리 전파되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할 것이다.

난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우리의 귀염둥이 윤지와 형빈이 그리고 부모님의 건강을 기원하였다. 강한 햇살 아래 하얀 설산이 우리를 향해 미소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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