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꼭 숨은 청남대,“이리 오너라”
지도에도 안나오는 천하의 ‘요새’, 개방 앞두고 궁금증 ‘증폭’
YS, DJ도 개방약속 했으나 말뿐, 그동안 주민 재산 손실 커

지난 6일 노무현 대통령이 주민들에게 청남대를 돌려주겠다고 약속한 이래 개방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주민들은 ‘혹시나’ 했다가 ‘역시나’로 끝을 맺었지만 이번 만큼은 ‘빈말’이 아니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20여년 동안 철통같은 보안 속에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게 꼭꼭 숨어있던 청남대가 열린다는 것은 대단한 뉴스임에 틀림없다. 지난 94년부터 청남대 개방을 외쳐온 ‘충청리뷰’는 청남대와 관련해 전반적인 것을 기획 취재했다.

‘남쪽의 청와대’라는 뜻의 청남대는 충북 청원군 문의면 신대리 55만평 대지에 널찍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중 본관 등 시설면적은 3만평, 대통령이 숙소로 쓰는 건물은 600평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이 곳에 어떤 시설들이 들어와 있는지, 대통령 숙소는 몇 평인지 조차 가늠할 수 없었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개방 계획을 발표하면서 그나마 이런 숫자도 드러났다. 청남대는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고 외부 레이다 망에도 잡히지 않는 천하의 요새 그 자체였다. 그래서 요즘 청남대 활용방안을 모색하기 이전, 시설 개요부터 밝히라는 주문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이 지역에 청남대가 들어서게 된 배경은 모 장관이 지난 80년 대청댐 준공식에 참석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산 좋고 물 좋은 이곳을 추천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고 알려져 있다. 이찬희 문의개발추진위원장은 “한 장관이 이곳은 외부 레이다 망에 노출되지 않고, 큰 집이 들어설 명당자리라고 추천하자 전 전 대통령이 ‘그럼 별장 한 번 추진해보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문제의 모 장관이 현재 청주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어 이름을 직접 거론하는 것을 꺼린다.

공무원연수원 짓는다고 속인 정부
정부는 청남대를 지으면서 주민들에게 공무원연수원을 신축한다고 속였다. 청남대 건설로 90% 가까이 진행됐던 신대리의 전통 한옥마을이 하루 아침에 취소됐다. 지금 청남대가 들어선 바로 그 자리다. 그리고 군사정권은 지난 80년 교통부가 문의면 미천지역에 지정했던 국민관광휴양지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그중 휴양지 지정 취소는 주민들이 청남대로 인해 입은 가장 큰 피해사례로 꼽힌다. 정부는 당시 대청댐 건설로 수몰민이 된 문의주민들에게 국민관광휴양지라는 ‘선물’을 안겨 주었으나 83년 6월 이를 ‘없었던 일’로 만들었고 같은 해 청남대는 준공된다.
한 주민은 이렇게 하소연했다. “빚내서 대로변에 3층짜리 건물을 지었으나 휴양지 개발이 취소돼 손해만 봤다. 지금도 우리 가족들이 사는 곳만 빼고는 임대가 안돼 비어 있다. 면 소재지 상가 대부분이 이런 식으로 방치돼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정부는 휴양지 개발을 앞두고 대로변에 2층 이상의 건물을 짓게 하고, 선착장 유람선 2척과 모터보트 17척을 준비토록 했다. 결국 유람선은 충주호로 가고 빚을 얻어 구입했던 보트는 헐값에 팔리거나 마을 이곳 저곳에 방치됐다. 참고로 당시 보트 한 대가 집 한 채 값인 500∼600만원이었다는 것. 지금도 마을 주민들은 이 이야기만 나오면 분을 참지 못한다.
충북도, 청원군 등에서는 휴양지 지정 취소와 청남대는 관계가 없고 문의가 상수원보호구역이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대청호는 지난 90년 상수원보호구역과 수질보전 특별대책지역으로 지정됐다. 그러므로 수질보전 때문에 지금처럼 심한 규제를 받게 된 것은 국민관광휴양지 취소 훨씬 뒤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주민들은 지난해 관계기관에 청원서를 올리면서 “주민들이 분통을 터뜨리는 것은 순수한 대청댐으로 인한 피해라면 감수할 수도 있고, 국가발전에 기여했다는 위안을 가질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데 있다. 문의지역개발이 취소된 근본 원인은 청남대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조상들의 산소관리까지 제한받아
이 뿐 아니라 주민들은 90년대 초반까지 성묘나 벌초를 하러 들어갈 때마다 경비병들의 검문을 받았다고 말한다. 경호문제로 위수지역을 필요 이상으로 광범위하게 지정하고 공수부대가 주둔, 경비구역내 농지 경작과 조상의 산소관리까지 제한을 받은 것. 그래서 그동안 주민들은 20여차례의 집단시위를 벌였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호소문을 올렸고 지난해 청와대를 찾아가 요구사항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찬희 위원장은 “95년 시위 때 김영삼 대통령이 주민대표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수상분수대와 행운의 다리를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으나 지키지 않았다. 그동안 정부와 관계기관은 소득기반을 위해 지원금을 주고 융자로 딸기·포도·표고작목반 구성 및 장학기금 10억원을 준 것이 전부”라고 밝혔다. 또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문민정부 때부터 정문 경비구역이 축소돼 일반인들이 제2검문소까지 들어갈 수 있게 된 점이다.
신성국 안중근학교 청원군 청소년수련관장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해 왔다. “청남대는 경호원들의 별장이다. 이들이 대청호라는 아름다운 호수를 차지하고 있는 꼴이다. 청주시는 이곳을 끼고 호반도시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한데도 대통령 한 사람 때문에 시민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고 있다. 휴식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청주·청원지역 주민들은 얼마나 손해를 보는 것인가”라며 “대청호를 이렇게 방치해도 되느냐. 청남대는 문의 주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고 분개한 바 있다. 그는 지난 2001년 문의개발대책위원회를 꾸려 주민대표들과 청와대까지 쫓아가 23가지의 민원중 17가지가 차관급회의에서 통과되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대통령 경호실에 왜 청남대를 개방하지 않느냐는 질의를 해왔다.
한편 청남대 개방 약속은 선거 때마다 단골메뉴로 등장했다.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은 경비구역을 축소하고 마을에 장학기금을 내려 보내는데 그쳤고, 김대중 대통령은 청와대 주변 통행을 자유롭게 했지만 청남대 개방 약속은 외면했다. 김대중 대통령 만큼은 권위주의의 상징으로 일컬어졌던 청남대를 폐지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결국 현 정권으로 넘어오고 말았다.
/ 홍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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