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병 우 충청북도 교육위원

   
1988년 2월 24일 저녁 힐튼호텔. 대연회장에서는 만조백관과 국내외 귀빈들이 만장한 가운데 성대한 퇴임식이 치러졌다. 방송사 합동생중계까지 된 그날 행사는, 식순은 의례적인 포맷이었으나 의미나 규모는 예사 수준이 아니었다. 건국 이래 초유의 ‘대통령 퇴임식’이었으니.

역대 대통령 중에 임기를 무사히 마치고 걸어 내려간 최초의 사례였던 만큼, 가히 ‘역사적’이라 할만했다. 중계방송 내내 아나운서가 최상의 칭송을 입에 달고 있는 것도 어색하지 않았다. 그만큼 경건하고 감회어린 분위기였다.

“평화로운 정부 이양으로 우리 헌정사에 새로운 지평을 여시고…”로 시작된 아나운서의 밝은 목소리, “40년 뿌리 깊은 권력 지상의 풍토에서 권력에 집착하는 인간의 속성을 물리치시고…”하고 이어지는 모 청년단체대표의 송별사에도 숭앙의 진정이 묻어났다. “저희들은 정직하고 성실한 분을 일찍이 믿지 못했던 어리석음으로 얼굴이 뜨거워짐을 감출 길이 없습니다.…각하를 대통령으로 모신 것을 크나큰 자랑과 영광으로 여기며 감사한 마음 길이 간직할 것입니다.”

이어, 각계에서 봉정한 기념품이 바쳐진다. 금융, 통신, 체육계에서 올리는 무슨 무슨 탑들, 그리고 교육계와 문화예술계의 기념병풍들….

그리고는 ‘그분’의 고별사가 이어진다. “인간은 나라를 위해서 등장할 때가 있고 퇴장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역사의 흐름과 시대적 요청이라고 할까요? …본인은 민주주의의 꽃밭을 가꾸는 농부의 자세로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 왔습니다.”

우레 같은 박수가 터지고 이름 높은 시인의 축시가 간판급 성우의 낭랑한 목소리로 헌정된다. “님이시여, 겨레의 빛이 되고 역사의 소금이 되소서…” 꾀꼬리 같은 음성이 북녘 방송 톤으로 고조될 무렵, 바리톤의 <선구자>가 장엄한 피날레로 이어지고 감동이 방방곡곡에 메아리친다.

장히, ‘퇴임식의 전범’이라 할만했다. 규모로나 품격으로나, 다시 있기 어려울 행사였다.
그런데, 오늘 굳이 그날의 일을 세세히 되짚어 보는 것은, 요즈음 교육계의 퇴임 절기를 맞아 ‘퇴임식 문화’를 떠올리던 중, ‘그분’과 관련된 논란 하나를 듣고서이다. 그의 고향 합천군에서 수십억을 들여 조성한 공원을, 그의 아호를 따 ‘일해공원’으로 부르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의 죄과가 아무리 백일하에 드러나도 그에 대한 향수가 여전한 이들이 있다는 것 아닌가. 그들이 그 날 장면을 녹화로 되돌려 본다면 감회가 어떨까? 그날 송별사에서 “그분을 일찍이 믿지 못했던 어리석음으로 얼굴이 뜨거워진다”고 했던 이는, 여전히 같은 심정으로 낯 뜨거울까?

그 날 행사의 주역들 중엔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는 이도 있고 요직에 오른 이도 있다. ‘그분’보다 먼저 세상을 뜬 이도 있다. 모두들 공인이기에 거명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본인들은 그 정도가 무슨 죄라고 숨길까 싶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살짝’ 민망하고 면구스럽기는 해야 할 것이다. 최소한 그래야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또한, 요즈음 ‘사법살인’ 관련판사 명단공개를 두고도 “인격살인”이라며 ‘도끼눈’을 뜨고 달려드는 시각도 있는 것을 보면, 공개거명은 조심스럽기도 하다. 그날 퇴임식에서의 ‘수고’ 쯤이 역사적 죄과라 할 것까지야 없으니, 굳이 거명하는 건 과하다 싶기도 하다.
다만, 한 사람은 말하자. 축시를 바친 김춘수 시인. 고인이라서가 아니라 그의 문학외적 행보에도 합당한 평가가 따라야 하므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절창<꽃>으로 우러름 받는 김춘수. 그가 ‘그분’에게 받은 국회의원 한 자리에 감읍해 눈이 멀고, 낯간지러운 헌시까지 올렸다고 믿고 싶진 않다. 학생들이 ‘존재론적인 인식’이라고 배우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그의 꽃이 되고 싶다… 잊혀지지 않는 의미가 되고 싶다.”는 고아한 명구조차 시정잡배의 ‘의리’표현 정도가 되고, 그렇다면 우리 문학사에 그런 손실이 없겠기엡.

김춘수의 ‘퇴임식’에선 그것들이 떠올려졌을까? - 아니! 덕담도 부족할 퇴임식에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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