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도 놀란다고 했던가. <시사저널> 최근호가 ‘괴담에 발목잡힌 대통령의 형’이라는 기사를 통해 노건평씨와의 인터뷰 내용을 보도하고, 그 가운데 차기 국세청장 인사에 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지자 그 동안 시중에서 떠돌던 ‘노건평 괴담‘은 일순간에 물위로 떠올랐다. 차기 국세청장 인사 개입설부터 서울경찰청에 전화를 걸었다는 설, 장관청탁용 이력서를 두 장 받아놨다는 이야기, 심지어 마타도어성 소문에 이르기까지 온갖 설들이 언론과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노건평 괴담’의 인화력

정확한 진상이나 경위를 따질 겨를도 없이 불이 붙어버리는 상황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대통령 친인척문제가 갖는 인화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청탁을 한 사람에게는 패가망신을 당하도록 하겠다고 노 대통령이 공언한 마당에 대통령의 형이 그 같은 구설수에 올랐으니, 여론이 들끓을 만도 했다.
사태가 순식간에 이렇게 확산되자, 청와대도 발빠르게 움직였다. 노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문재인 민정수석 경남 김해의 봉화마을로 내려가 노건평씨를 만났고, 이호철 민정1비서관이 부산으로 내려가 노 대통령의 친인척들을 만났다. 노건평씨를 만난 문 수석은 “장관 추천 부탁이 2건 있었지만 일종의 해프닝성으로 밝혀졌다”면서 “그러나 의혹이 제기된 것만으로도 대통령에게 누가 될 수 있는 만큼 그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당부하고 경고했다”고 밝혔다. 기자들과 노건평씨의 주장 사이에 엇갈리는 부분이 있어 이번 발언의 정확한 진상은 더 가려져야 하겠지만, 구체적인 청탁이나 인사개입의 흔적은 없다는 점에서 일단 해프닝성 소동으로 일단락되는 분위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소동이 국민정서에 미친 영향은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당장 ‘서민 대통령’은 그래도 다를 것이라는 기대가 “노 대통령의 친인척도 어떨지는 지켜봐야 안다”는 긴장으로 변화하는 기류가 읽혀진다. 실제로 이번 일이 아직 ‘별다른 일’이 없었던 단계에서 언론에 의해 문제로 불거졌으니 망정이지, 만약 별일 아닌 것으로 생각한 노건평씨가 들어오는 이력서를 계속 쌓아두는 상황으로 발전했으면 또 어떤 일이 있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청와대는 언론의 ‘과잉보도’를 원망할 것이 아니라 문제의 경각심을 일깨워준 언론에 오히려 감사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도 모른다.
이번 일을 청와대의 해석처럼 단순한 해프닝으로만 넘기고 지나갈 일은 아니다. 문제는 이번 소동이 이미 예고되었던 일이라는 점에 있다. 노건평씨의 자택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만 간다는 이야기는 차치하고라도, 이른바 ‘노건평 괴담‘이 시중에 흘러나온 지도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 게다가 최근에는 노건평씨가 TV 인터뷰에 잇달아 응하면서, 청탁성 이력서를 받아놓았다는 이야기를 자신의 입으로 꺼내기에 이르렀다. 물론 본인의 의도야 오해에 대한 해명과 결백의 입증에 있었는지 모르지만, 이 정도 되면 ‘괴담‘이 아니라 ‘사실’로 드러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청와대는 진작에 상황을 감지하고 대책을 강구했어야 했다. 시중의 ‘괴담‘을 넘어 대통령의 형이 직접 TV에 나와 ‘이력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마당에, 청와대의 대응은 너무 안이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려웠다. 그러다보니 결국 청와대가 모르고 있던 친인척문제를 언론이 들추어내고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허둥대는 모습을 보인 꼴이 되어버렸다. 그런 점에서는 이전 정부의 재판이었다. 이전 정부들에서도 여러 차례 겪었듯이, 대통령 친인척문제는 일단 터지고 나면 백약(白藥)이 소용없는 성격을 갖고 있다. 오직 철저한 예방만이 유일한 대책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일을 계기로, 청와대가 대통령 친인척들의 부조리를 원천 차단하기 위한 상시 감시체제를 구축키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대통령 친인척이 감시를 받아야 할 무슨 죄인은 아니지만, 친인척 문제의 어려움과 특성을 고려할 때 대책은 철저할수록 좋을 것이다. 우리 국민정서상 친인척 문제는 이제 정권의 성패와 직결되는 문제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노건평 괴담‘에 비할만한 일반의 관심사는 아니었지만, 지난 주 청와대 기자실에서 내내 시비거리가 된 것은 송경희 대변인이었다. 기자실 개방과 함께 도입된 정례 브리핑의 취지를 송 대변인이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청와대 정례 브리핑이 시작된 것은 대통령 취임식이 있은 다음날인 지난 26일부터였다. 이제 정례브리핑에서 기자들은 대변인을 향해 자유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되었고, 대변인은 그에 대한 청와대의 입장을 밝혀야 하는 책임을 안게 되었다. 그 대신 기자들은 이전과 같은 비서실 출입 취재가 금지되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지난주 사흘간의 정례 브리핑에서 송 대변인이 청와대의 입 역할을 제대로 해주지 못했다는데 있었다. 오전 10시와 오후 3시 두차례에 걸쳐 있는 브리핑에 걸리는 시간은 지난 주의 경우 짧으면 3분, 길어야 10분이었다. 현재 쌓여있는 국정현안들에 대한 궁금증을 감안한다면 턱없이 짧은 시간이다. 송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이런 말씀이 있었다”는 내용만 간단히 전달하고 단상에서 내려오곤 한다. 기자들의 질문을 본격적으로 받고 답하려는 모습은 아니다. 단상에서 내려온 송 대변인에게 기자들이 질문을 던지면 송 대변인은 조심스럽게 한두 마디 대답하다가, 흔히 “대답할 위치에 있지 않다”거나 “잘 모르겠다”는 대답으로 대신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브리핑 대신 비서실 출입을 제한 당하고 있는 기자들의 입장에서는 취재의 제약만 가져온 ‘개악’(改惡)이라는 불만이 터져나올 상황이다.
애써한 답변이 청와대 다른 관계자에 의해 뒤집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 27일 오전, 바로 전날 국회에서 특검법이 통과된 상황이라 노 대통령의 입장에 대한 기자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러나 막상 정례 브리핑에서 송경희 대변인이 발표한 것은 “국회결정은 존중하나 외교관계 및 국익을 고려해 여야간 타협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는 몇 마디의 말뿐이었다. 당연히 노 대통령의 거부권행사 여부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이 나왔다. 마이크를 이미 놓은 송 대변인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뜻이냐”는 물음에 “내 생각엔 지금까지 국회가 결정해주길 바란다는 것이 대통령의 뜻이었고 어떤 방식으로든 국회가 결정했으므로 그걸 존중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의 말에 충실한 어법이었지만, 맥락상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시사로 해석되었고, 각 언론들은 일제히 ‘거부권 행사 의사 없다’고 보도하였다. 그러자 바로 다음날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청와대의 입장은 아직 미정이다”라며 언론보도에 제동을 걸었다. 전날 송 대변인의 해석이 사실상 뒤집혀지는 상황이었다.

예고된 사고를 막아야 실패하지 않는다

지난 주 며칠간의 청와대 브리핑을 보면, 백악관 브리핑에서 기자들과 애리 프라이셔 대변인 사이에 오가는 날카로운 질문, 그리고 절제되면서도 핵심을 짚는 답변을 연상하던 사람들에게는 전혀 성에 안차는 청와대 브리핑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송경희 대변인의 내정이 발표된 것은 지난 10일. 청와대의 입이 누가 될 것이냐를 주시하던 사람들에게 그는 낯선 의외의 인물이었다. 아나운서, 호텔홍보실장,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연구원 경력의 송 대변인은 정치권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경우였고, 그래서 파격인선이라는 말이 뒤따랐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정치권 밖에서 참신한 새 인물을 발탁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었다. 발표내용을 읽기만 하면 되는 기존의 대변인 역할만을 생각한다면 크게 문제될 상황은 아니었다.
그런데 문제는 새 정부가 출범하고 나면 청와대 기자실 운영이 전면적으로 변화된다는데 있었다. 이미 인수위원회 때부터 청와대 기자실의 개방은 기정 사실화되었다. 그리고 기자실이 개방되면 정례 브리핑이 도입되는 것도 예정된 일이었다. 정례 브리핑이 실시되면 대변인이 국정에 관한 기자들의 온갖 질문에 답해야 하는 역할을 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따라서 청와대 대변인은 국정 각 분야를 꿰뚫고 있음은 물론이고, 매 사안에 대한 청와대의 입장을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정치적 감각과 판단력이 요구되는 자리가 되어버렸다. 여기서 혼선이 발생하면 청와대의 공신력이 무너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반드시 경험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정치나 국정관련 일을 직접 해본 경험이 없는 송 대변인이 그 같은 역할을 감당해낼 수 있을까 하는 우려는 새 정부 출범 이전부터 계속되어왔다.
사실 청와대 브리핑에서 드러나고 있는 문제는 송 대변인 개인에게 전적으로 책임이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일을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여 적재적소에 사람을 쓰지 못한 인사에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청와대 브리핑이 변화하고 그에 따라 대변인의 역할이 변화할 것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채 대변인 인사를 했다는 이야기밖에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청와대 브리핑에서 빚어지고 있는 난맥 또한 이미 새 정부 출범 이전부터 예고되었던 일이라 할 수 있다.
새 정부 출범 직후 불거진 이 두 가지 문제는 사안의 성격은 다르지만, 공통적인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정권의 운영에서 생겨나는 잘못들은 대부분 미리 예고된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을 떠올려보자. 두 아들의 구속이 있기 전에 ‘대통령의 아들들’에 관한 온갖 소문이 시중에 흘러 다녔다. 아태재단이 청탁과 비리의 온상으로 지목 받기 이전에 아태재단을 둘러싼 구구한 설들이 또한 시중에 유포되었다. 사고가 예고되었을 때 미리 챙기고 바로잡았더라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사고는 소리소문 없이 오지 않는다. 많은 경우 소리와 소문을 앞세우고 그 뒤에 사고가 터져나오곤 했다. 소리소문이 횡행할 때 경각심을 갖고 확인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그것이 정권이 실패하지 않는 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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