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덕 현 편집국장

   
전두환씨가 다시 부활하고 있습니다. 지금 경남 합천에서 벌어지는 일해공원 논란을 보면 또 한번 심한 좌절감을 느끼게 됩니다. 아직 역사적 심판은 아니지만 그를 단죄한 공소장의 잉크도 마르지 않았는데 멀쩡한 공원을 그의 아호를 따 일해공원으로 개칭하는 것을 놓고 난리라고 합니다.

전두환씨의 쿠데타 집권으로 졸지에 유명세를 탔던 합천의 황강 주변엔 ‘새천년생명의 숲’이라는 공원이 하나 조성돼 있습니다. 이 공원을 다름아닌 합천군이 일해공원으로 바꾸려 한다는 것입니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대통령을 배출한 것에 주변 사람들이야 그 긍지가 남다를 수도 있겠지만 행정기관이 앞장 선다는 소식은 정말로 할말을 잊게 합니다.

모든 것을 양보해 애초부터 일해공원으로 이름지어졌다면 잘못된 역사도 역사라는 명분하에 그대로 유지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것은 전두환씨가 생생하게 살아 있는 상황에서 새로 공원이름을 지어 그의 뜻을 기리겠다는 처사이니 이 황당함을 어찌 표현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합니다.

누구는 반세기가 넘도록 전범을 추적, 응징하며 국가와 역사를 바로 세우고 있는데 우리는 광주의 대학살이 자행된지 채 30년도 안 돼 그 당사자를 응징은 커녕 되레 영웅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광주학살 피해자들의 피눈물은 안중에도 없는 것같습니다.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유신시절 긴급조치 판결에 참여한 판사들의 명단을 공개해 파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물론 당시 재판에 참여한 판사들은 억울해 할지도 모릅니다. 나라가 온통 살벌하던 상황이었는데도 유독 판사에게만 책임을 묻는 처사로 비쳐지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긴급조치의 근거가 된 유신헌법은 국회를 통과한 실정법이었기 때문에 “당시 고민하지 않은 판사가 없었다”는 당사자들의 하소연을 마냥 외면할 수 만은 없습니다. 사실 그 때는 너무도 살벌했습니다. 선술집에서 막걸리 한잔 들이키며 대통령을 입에 올렸다고 잡혀가고, 북한만 얘기해도 당장 빨갱이로 몰리던 시절이었습니다.

경찰이 대학에 상주하며 툭하면 학생들을 잡아 가던 때라 시위도 건물 옥상이나 나무꼭대기 심지어 전봇대로 올라가 해야 그나마 몇마디 외칠 수 있는 분위기였으니 당시 시국사건을 맡은 판사들의 고충이야 오죽했겠습니까.

하지만 사법부의 판결은 국가적 정의 실현의 최후 보루라는 점에서 인식되고 접근돼야 합니다. 만약 시대적 현실과 사회적 추이 때문에 판결이 달라진다면 이는 법적용의 편의적 발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번 긴급조치 판사들에 대한 명단 공개는 반대파가 얘기하는 역사 바로세우기를 빌미로 한 인적청산이 아닌 대한민국의 정의실현을 위한 뼈아픈 시행착오인 셈입니다. 유신체제였기 때문에 긴급조치 판결이 어쩔 수 없었다는 강변은 ‘사법부의 정의’라는 명제마저 위태롭게 합니다. 당시 시국 사건에 진정 가슴앓이를 한 판사들은 독재정권의 마녀사냥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지는 못했어도 스스로 법복을 벗는 것으로 항의를 표했던 것입니다.

역사 바로세우기를 입에 올릴 때마다 늘 무겁게 다가 오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과거 독재 및 권위주의 정권에서 무고한 사람들을 잡아 가두고 고문한 장본인이 지금 버젓이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국가안위를 걱정하는 목불인견 말입니다.

이 역시 역사를 쉽게 잊어버리는 국민성이 원흉입니다. 때문에 전두환씨가 부활하고 사법부가 통절의 아픔을 겪는 지금, 다시 긴급조치가 발동됐으면 합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역사를 잊으면 잡혀갑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