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석자 절반이 일반인… 결의에 찬 목소리에 박수로 화답

제16대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장인 국회의사당에는 ‘새로운 대한민국 하나된 국민이 만듭니다’라는 대형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초청 받은 다른 2명과 함께 청주에서 새벽 6시 30분, 아직은 컴컴한 여명에 출발했지만 식장에 들어온 시간은 아침 9시 30분이었다. 경축 플래카드의 깃발이 펄럭이고 벌써 도착한 사람들이 식장을 메우고 있는 모습을 보자 취임식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국민의 정부’를 거쳐 ‘참여정부’를 표방한 만큼 취임식에도 자발적으로 참여한 국민들이 많은 듯 했다. 참석자 4만5000명 중 절반이 인터넷을 통해 신청한 사람이라고 하니 노무현 정부의 주제는 ‘참여정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 또한 국민의 참여속에 당선되지 않았는가.
그래서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온 초등학생이나 그보다 더 어린 아이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어떠한 지위를 가졌거나 대단한 일을 한 사람들이 아닌 평범한 국민들이 대통령 취임식장을 메운 것도 신선했지만, 좌석을 일일이 지정하지 않고 큰 대열만 정해준 채 자유롭게 앉게 한 것도 권위주의 시대와 다른 그 무엇이었다. 식전행사 역시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아무리 떠들고 왔다갔다 해도 이상할 정도로 제재를 가하지 않아 확실히 달라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행사는 일사불란한 가운데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도 과거 독재정권이 가르쳐 준 고정관념인지 모른다.

역대 대통령, 히딩크 전 감독 참석
그리고 안내를 맡은 희망봉사단 중에는 60대로 보이는 사람들이 끼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20대의 젊은층만이 아니고 할아버지·할머니들이 안내하는 것도 기분좋은 변화로 받아들여졌다. 식장에 들어가기 직전에 있었던 검색도 간단해 신분증과 초청장을 보여주자 뱃지를 나눠주는 것으로 끝이었다. 위험한 물건을 소지하지 않았는가 검사하는 과정도 간소했다.
날씨는 약간 쌀쌀하게 느껴졌다. 가수 양희은의 ‘상록수’가 우렁차게 울려 퍼질 때는 감회가 새로웠다. 식전행사를 하는 동안 귀빈석에는 역대 대통령과 국회의원, 외국의 축하 사절단, 기타 내외빈들이 차례차례 자리를 메웠다. 참석자들을 위해 식장안에는 대형 스크린이 설치 돼 있었는데, 주요 인사가 식장에 들어올 때마다 보여주었다. 최규하·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전 대통령의 얼굴이 보였고 히딩크 전 감독도 볼 수 있었다. 맨 나중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희호 여사와 함께 입장하자 모두 일어서서 맞아주었다.
본행사는 선서, 예포발사, 취임사, 축가 등으로 진행됐다. 대통령 내외가 입장하자 모든 사람들이 일어서서 기립박수를 쳤다. 노대통령은 안철수연구소장 안철수씨와 국내 최초 여성전투기 조종사인 박지현 중위 등 8명의 국민대표와 함께 단상에 올랐다. 이 또한 신선한 발상이었다. 취임사는 상당히 길었다. 대통령이 “특히 사회지도층의 뼈를 깎는 성찰을 요망합니다” “반칙과 특권이 용납되는 시대는 이제 끝나야 합니다” “정직하고 성실한 대다수 국민이 보람을 느끼게 해드려야 합니다” 등을 말할 때는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누군가 “맞습니다. 맞고요∼”라는 후렴구를 넣어 웃음꽃이 피기도 했다.

‘링컨 같은 대통령’
노 대통령은 원문에도 없는 “제 모든 것을 국가와 민족앞에 바칠 것을 굳게 맹세합니다” 라는 내용을 결의에 찬 어조로 말하면서 취임사를 끝냈다. 식을 마치자 대통령 내외는 식장 한가운데로 걸어가며 참석자들과 악수를 나누었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 손 한번 잡아보려고 난리가 났다. 의자 위에 올라가 “여기도 손 흔들어 주세요”라며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가운데 대통령이 청와대로 이동하고 귀빈들이 모두 자리를 떠났다. 취임식은 그렇게 끝났다.
여의도 한강시민공원 내 주차장으로 내려가자 전국에서 온 관광버스들이 열을 지어 있었다. 버스를 타자 안에 설치된 TV에서는 취임식 특집방송이 진행되고 있었다. 외국의 언론들은 노 대통령을 가리켜 “가난과 역경을 이겨낸 링컨 같은 대통령” 이라며 “북핵문제가 가장 큰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했다고 진행자는 말했다. 이제 노대통령 시대가 열렸다. 국민이 만든 대통령인 만큼 그에게 거는 기대도 크다. “서민들을 위해 일해주세요” “과외없는 나라를 만들어주세요” “지역갈등을 없애주세요” “장애인과 소외계층에게도 희망을 주세요” 등등. 그외에도 당장 국무총리 임명동의안과 대북송금 사건 특검법 처리 등 골치아픈 현안이 기다리고 있지만 취임식장에서의 노대통령은 희망 차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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