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정해년(丁亥年)은 돼지띠의 해다. 입춘이 두 번 든 ‘쌍춘년’이라 결혼을 하면 백년해로하고 자녀를 낳으면 재물운을 타고 난다하여 황금돼지의 해라 불리기도 한다.

음성출신의 이기동 도의원은 59년 돼지띠 의원이다. 이 의원은 올해 중요한 기로에 섰다. 정치적 입지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수 있는 한나라당 조직위원장 공모에 신청했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올해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대권 후보가 정권 재탈환을 하기 위해 중요한 역할을 맡고 싶다”면서 “여러 다른 훌륭한 후보들이 계시지만 지방의원들의 전폭적인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며 자신을 어필했다.

   

이기동 도의원의 꿈,약사에서 정치인으로

이기동 충북도의회 의원은 음성군 음성읍 평곡리 토계울마을에서 전형적인 농부 아버지 슬하에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줄곧 우등생이었던 이 의원은 음성지역 선거에 큰 도움이 안되는 학교만 나왔다. 졸업생 수가 적은 평곡초와 한일중, 충주고등학교를 나왔기 때문이다.

음성지역은 역사 깊은 수봉초등학교와 음성중·고등학교 출신이어야 혈연 학연을 따지는 우리나라의 선거풍토에서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평곡초, 한일중 동문들이 결속력면에서는 훨씬 좋지만 수적 열세 때문에 불리한 입장이었다. 이 의원의 중학교 때까지 통신표를 보면 장래희망이 약사였다.

당시 한일중학교 교장이었던 김완태 전 국회의원의 영향을 받았다. 출세의 기준이 돈을 많이 버는 것으로 생각했던 이 의원은 서울약국을 운영하던 김완태 전 의원처럼 약사의 꿈을 가졌었다.

이 의원은 학창시절 고추를 따면 빨간고추를 따야 되는데 파란고추, 빨간고추할 것 없이 다 땄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이놈이 일하기 싫어서 그런다고 많이 혼났는데 그때까지 적녹색맹인지 몰랐던 것이다. 약사의 꿈을 포기한 이 의원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충북대학교 경영학과로 진학하게 된다.

대학교에 진학한 이 의원은 정치인의 꿈을 품게 된다. 2학년 때 총학생회장에 출마할 것을 다짐했던 이 의원은“밑으로 줄줄이 동생들이 있는데 무슨 돈으로 학생회장에 나서냐”며 완고한 반대에 부딪쳐 군입대를 결심한다.

군대를 가기위해 휴학한 이 의원은 81년도 음성·진천·괴산 지역구에서 국민당으로 김완태씨가 국회의원 출마를 했는데 선거를 도와달라는 권유를 받아 돕게 됐다. 이것이 이 의원의 정치인생 시작의 인연이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아버지의 동의를 얻어 학생회장에 출마하게 된 이기동 의원은 과 학회장에 이어 단과대 학회장에 당선된다. 이 의원은 그토록 바라던 총학생회장에 출마, 두 명의 후보와 경합하여 충북대 총학생회장에 당선되었다.

애송이에서 재선 도의원까지

충북대를 졸업한 이 의원은 “부모님이 재산가였다면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JC같은 사회활동을 해서 30대 초반에 정치현장에 뛰어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넉넉하지 못한 가정형편으로 정치인이 되기 위한 재정자립을 위해 성업공사(현 한국자산관리공사)에 입사했다. 성업공사에서도 이 의원은 노동조합 상근 부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성업공사에서 근무한 지 만 11년 만에 퇴사한 이 의원은 98년 6.4지방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가족과 함께 낙향한다.

만 37세에 낙향한 이 의원은 음성군수에 출마했다. 당시 정상헌 전 군수와 박수광 현 군수, 박덕영씨 등이 경합을 벌였다.
이 의원은“지금 생각해보면 내 자신이 너무 철이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며 “지역주민들이 생각하기에 애송이에 불과한 놈이 서울에서 갑자기 내려와 군수에 출마했는데 그렇지 않겠냐. 세상물정 모르고 나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행정자치부 장관을 역임한 김두관씨가 4년 전 33세의 나이로 남해군수에 당선됐었다. 이 의원은 이를 계기로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덤비게 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선거를 치러보니 의욕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고 한다.

군수출마로는 정치권 궤도에 진입이 어렵다고 판단한 이의원은 열악한 조건 속에서 다시 4년 후인 2002년 6.13지방선거에서 도의원으로 도전하여 당선의 영광을 안게 된다. 이어 2006년 5.31지방선거에서도 도의원에 당선하여 재선의원에 이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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