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두 사진은 언론 행보에 있어서 당선자 김대중과 당선자 노무현의 차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나는 98년 1월 22일자 <조선일보> 2면에 실린 사진이고, 다른 하나는 지난 1월 9일 <한겨레>에서 찍은 사진이다.
김대중과 노무현. 두 사진이 상징하듯 두 사람은 대통령에 당선 직후 전혀 다른 언론 행보를 보였다.

거대언론 행사 들러
‘사주 추켜세우기’연발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 직후 첫번째 언론관련 행보는 <동아일보>였다. 98년 1월 15일 김대중 당시 대통령 당선자는 동아일보사 광화문 사옥 일민미술관에서 개최된 ‘호랑이의 눈 - 한국의 도전적 작가 10인전’ 개막식에 직접 참석했다. 이 행사는 김 대통령 당선 직후 참석한 일반인 대상 민간 행사 1호로 기록되고 있다.
이 자리에서 김 대통령 당선자는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뒤 “인촌 김성수 선생은 문화주의를 제창하고 동아일보를 창간했는데 참 큰 선견지명이 있으셨다”면서 “일민 김상만 선생도 많은 문화사업으로 유업을 받들었다”고 추켜세웠다. 그는 또한 “이제 김병관 회장께서 두 어른의 유업을 이어받아 광화문 한복판에 일민미술관을 세웠는데 우리 문화의 심장기능을 할 것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의의가 크다”고 말했다.
일민미술관의 ‘일민’은 김병관 당시 동아일보 회장의 아버지인 고 김상만씨의 호였다. 이 자리에는 김 회장을 비롯해 오명 당시 동아일보 사장 등이 내빈을 맞았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당선 직후 첫번째 언론관련 행보는 <한겨레>였다. 지난 1월 9일 오후 3시30분경 노 당선자는 한겨레신문사를 방문해 최학래 사장과 정연주 논설주간 등 간부들과 환담을 나눴다. 이날 방문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채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낙연 당선자 대변인은 당시 “신문사를 방문했다기보다는 북한 김정일 위원장을 두 번이나 만난 원로 언론인과 미국 워싱턴에서 아주 오랫동안 있었던 중견 언론인이 있기 때문에 그분들로부터 대북 및 한미관계에 대한 유익한 말씀을 듣기 위해서였다”라고 말했지만,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적었다.
이 대변인은 “믿을지 모르겠지만 나도 가기 전까지 몰랐다”면서 “서울국제포럼 초청 간담회가 끝나고 차를 타고 가는데 동선이 이상해서 물어보니 한겨레로 가는 길이었다”고 전했다.

조중동 눈치 안보고
‘대안언론 감싸시’ 적극

두 사람의 두번째 언론관련 행보는 더욱 극적으로 대비된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두번째 행보는 방우영 조선일보사 회장의 칠순잔치였다.
98년 1월 22일 저녁 조선일보 본사 7층 강당에서 성대하게 열린 방 회장의 고희 출판기념회에 김 대통령 당선자는 직접 참석했다. 이 자리에는 고건 총리, 김수환 국회의장 등 각계 인사 500여명이 참석했다. 김 대통령 당선자는 이 자리에서 방 회장의 왼쪽에 서서 함께 축하 케이크를 잘랐다.
김 대통령 당선자는 축사에서 “방 회장이 변함없이 한 길을 걸으며 대(大)조선일보를 만들어내고, 문화사업과 사학 발전에 큰 업적을 남긴 것을 높이 평가해 마지않는다”고 극찬을 하면서 “오늘 모임이 제2인생을 기약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두번째 행보는 인터넷 방송국 라디오21(www.radio21.co.
kr)의 개국 축하 전화 인터뷰였다. 노 당선자는 수많은 거대 언론의 인터뷰 제의를 뿌리치고 지난 2월 21일 오전 11시30분부터 40분까지 이제 막 개국하는 조그마한 인터넷 방송국과 짧게 전화 인터뷰에 응했다. 이날 인터뷰는 10분짜리 짧은 축하 메시지였지만, 지금까지 대통령 당선자들이 보여온 행보와 비교할 때 참모들이 말릴 만큼 파격이었다.
이 방송국의 주역은 지난 대선 당시 노 당선자를 위해 발벗고 나섰던 김갑수·명계남·문성근씨 등이다. 이들은 당선 이후에는 미련없이 털고 나와 새롭게 인터넷 방송국을 시작하고 있다.
노 당선자는 인터뷰에서 “참모들이 다른 언론사와 인터뷰는 하지 않으면서 라디오21과 인터뷰를 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말렸지만 나는 이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에 한다고 했다”면서 방송국 개국을 축하했다. 당시 인터뷰를 진행한 김갑수씨는 “노 당선자가 언론개혁의 또 다른 방법인 대안언론 육성과 사회적인 약자와 소수에 대한 차별철폐에 공감을 표했다”고 전했다.
이어 22일 노 당선자는 인수위의 당선자 집무실에서 국정현안에 대한 면대면 첫 본격인터뷰를 <오마이뉴스>와 가졌다. 당선 이후 외국언론과는 몇 차례 인터뷰를 가졌지만 국내언론과는 처음으로 가진 면대면 인터뷰였다.

실패한 김대중, 노무현의 5년 후는?

김 대통령의 언론관련 행보를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지금과 98년 당시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면서 “98년 초는 외환위기 극복이 절체절명의 과제일 때였다. 또한 김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90%를 넘을 때였기 때문에, 김 대통령은 잘만 하면 지역을 떠나서도 고른 지지를 받을 수 있고, 나를 반대했던 언론도 잘 대하면 최소한 균형 잡힌 보도는 하게끔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런 김 대통령의 생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김 대통령은 당선 초기 언론의 행사라기보다는 사주의 행사에 가까운 자리에까지 참석하며 조선과 동아를 껴안으려는 행보를 보였지만, 집권 내내 그들로부터 만신창이가 되도록 물어뜯겼다.
정확히 5년 후 노무현 당선자는 뚜렷이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런 모습에 불만을 표시하는 참모들도 보인다. 하지만 노 당선자는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말한다.
“자꾸 주변 눈치 살피고 관행 살피고 하는데, 그런 게 어디 있는가. 노무현 시대는 달라야지. 원칙대로 간다.”
김대중과 노무현. 누구의 선택이 옳았는지는 5년 후에 증명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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