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재조정 문제가 전면에 불거지면서, 한미관계는 물론 국내 정치와 한반도 정세에도 대단히 미묘한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도날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주한미군 지상군의 후방 배치 및 일부 병력의 철수를 공식적으로 언급한데 이어, 토마스 허바드 미 대사도 한미동맹에 변화의 여지가 많다며, 지상군에 의존한 전력 구조를 해공군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재편할 계획이 있다는 것을 거듭 확인했다.
특히 미국의 이러한 주한미군 재조정 입장은 노무현 당선자측과도 대체적인 합의를 통해 나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노무현 정부 출범과 함께 주한미군 재조정 문제가 한미간의 핵심 현안이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이를 두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은 김대중 대통령에 이어 노무현 당선자가 한미간의 갈등을 적극적으로 해소하지 않아 미국의 안보공약을 약화시킨 것이라고 비난하며 논란을 키우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일단 미국의 지상군 감축 및 해공군 강화 입장은 오래 전부터 나온 것으로, 이는 대북한 억제에 중심을 둔 주한미군의 역할을 중국 견제 등 동북아 전체로 확대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추진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전방배치 지상군이 후방으로 이동하고 일부가 미국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주한미군의 군사력 전체가 약화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럼스펠드 장관과 허바드 대사가 주한미군 재조정 입장을 밝히면서 공군력과 해군력을 강화할 방침을 분명히 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러한 미국의 주한미군 미래상은 예견된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현 시기가 주한미군 재조정 문제를 풀기에는 대단히 민감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이는 비난 부시 행정부의 한국의 차기 정권 길들이기, SOFA 개정 문제, 한국의 MD 참여 문제 등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미국이 밝힌 것처럼, 지상군 전력의 후방 배치와 일부 철수, 그리고 해공군력의 강화가 이뤄질 경우 한반도의 군사력 균형에도 엄청난 파장을 몰고올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이는 전방배치된 주한미군의 대단히 복잡한 ‘억제력’에 대한 이해에서 한국의 딜레마를 유추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주한미군은 북한의 남침 억제력으로 설명되어 왔으나, 때로는 남한의 북침 억제력으로, 탈냉전 이후 가장 중요하게는 미국의 북폭 결정을 신중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즉, 북미간의 첨예한 대결 상태에서 미국이 북폭을 추진하려고 할 경우, 가장 큰 걸림돌 가운데 하나로 북한의 야포 사정거리에 놓인 전방배치 미군 지상군의 안전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94년 클린턴 행정부가 북폭을 검토했을 때, 역설적으로 주한미군 사령관이 이에 대해 반대했던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 미군은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벌어질 경우, 개전 3개월 이내에 5~10만명의 미군 사망자가 나올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 바 있다.
이후에 미국은 주한미군 지상군의 안전 문제를 최우선적인 한반도 전략으로 삼아왔다. 클린턴 행정부 때 주한미군이 적극적으로 소요 제기를 해, 전역미사일방어체제(TMD) 구축의 최우선 지역으로 한반도를 삼은 것이나, 북한의 야포에 대응한 다양한 전략과 무기체계의 개발 및 배치에 박차를 가해온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북한과 미국 사이의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전방배치된 주한미군 지상군의 후방 이동이나 감축이 추진되는 것이 대단히 위험하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오늘날 한반도 전쟁의 가장 높은 시나리오가 미국의 북폭과 북한의 보복공격에 의한 전쟁 발발이라고 할 때, 주한미군 지상군의 후방배치와 감축을 통해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판단을 미국이 내린다면, 북폭 결정은 그만큼 용이해질 수 있다.
럼스펠드가 밝힌 것처럼 지상군은 뒤로 빼거나 줄이고 해공군력은 강화할 경우, 미국의 대북한 공격 능력은 향상되는 반면에 북한의 보복 공격에 의한 피해 규모는 줄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주한미군 지상군을 재조정하는 것은 상당한 시간을 요하기 때문에 위와 같은 전망은 지나친 우려일 수 있다. 그러나 향후 북미관계의 전망 역시 대단히 불투명할 뿐더러 핵문제가 풀린다고 하더라도 북미간의 갈등 요소는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는 점 역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지상군을 일부 철수하는 것은 당장이라도 가능하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대단히 미묘한 시기에 주한미군 재조정 문제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출범을 앞둔 노무현 당선자의 치밀한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 표면적으로 볼 때 용산미군 기지 이전을 비롯한 지상군의 후방 이동 및 일부 감축은 노무현 당선자가 밝혀온 수평적인 한미관계 및 동맹관계 개선의 ‘기회적인’ 측면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특히 용산기지 이전문제를 포함해 인구 밀집 지역의 미군이 일부 철수하고 후방배치된다면 지역 주민들의 민원이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며 도시의 균형적인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앞서 설명한 것처럼 북미간의 대결구조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한미군 재조정이 추진되면 한반도의 불확실성은 더욱 높아지게 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또한 미군 재조정 방향이 육군은 줄이고 해공군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남으로써 한국군의 기형적인 전력 구조가 장기화될 가능성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노무현 당선자는 주한미군 재조정을 서둘러 추진할 것이 아니라 먼저 핵문제를 비롯한 북미간의 대결구조를 상당 부분 해소한 이후에 주한미군 재조정 작업에 들어갈 것을 미국에 적극적으로 제안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에서 미군의 억제력이 대단히 복잡하고 다양해진 시점에 주한미군에 대한 전략적 사고가 어느 때보다 긴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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