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이주노동자가 서툰 한국말로 라디오 방송을 진행한다. 고급 접객업소 종사 여성은 유명한 정치인들의 숨겨진 모습에 대해 말하기도 한다. 점잖은 목소리로 비평 방송을 내보내던 진행자의 입에서는 때때로 육두문자가 쏟아진다. 정치인들의 잘못된 언행, 보수신문의 편향적 논조 등은 이 방송에서 거침없이 욕먹을 각오를 해야 한다….”

2003년 2월 21일 오전 9시. 국내 최초의 인터넷 라디오 방송국 <라디오21>(www.radio21.co.kr)이 첫 방송을 내보내고 본격적인 방송활동에 들어갔다. 지난해 12월 19일, 색다른 형태로 선거운동을 주도하던 ‘노무현 라디오’가 발전적 해체(?)를 한지 꼭 2개월 만이다.
<라디오21>의 포부는 ‘사회적 약자와 소외 계층의 목소리를 대변하겠다’는 것. 하루 24시간 내내 방송을 내보내는 <라디오21)에서는 동성애와 이주노동자의 차별문제에서부터 비정규 노동자, 장애우의 문제, 여성, 인권, 보수신문의 보도 행태와 정치인들의 행보, 문화비평 등 지금껏 누구도 아우르지 못했던 광범위한 주제들이 모조리 도마 위에 오른다.

날방개그, 순(Soon) 아줌마 시대…?

무엇보다 <라디오21>이 사람들의 귀를 모으는 것은 이런 무거운 주제들이 결코 무겁지 않게 청취자들에게 다가서기 때문이다. 이선영의 뉴스&커피, 노정렬 이유니의 ‘시사개구(開口)’, 이정열 손병휘의 심야방송대국, 라디오 해방구, 변희재의 스타 바이러스, 구봉숙의 ‘날방개그’, 순(Soon) 아줌마 시대…. 프로그램 이름만 들어도 웃음이 나올 정도다.
<라디오21>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프로그램 진행자들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 특히 자신들만의 독특한 목소리로 프로그램을 진행할 4명의 칼럼리스트들은 익히 잘 알려진 이들이다.
영화배우 문성근씨는 새로운 형식의 비평프로그램 ‘문성근 칼럼’(매주 월∼금 오전10시)을 통해 언론과 정치권에 일침을 가한다. 최근 개혁국민정당 경기도 일산 덕양갑 지구당 위원장으로 선출된 시사평론가 출신 유시민씨도 ‘유시민 칼럼’(매주 월∼금 오후 5시10분)을 맡았고, ‘서프라이즈’의 논객 서영석 국민일보 정치부장도 ‘서영석 칼럼’(매주 월∼금 오전 0시)을 진행한다. ‘안티 조선’ 연예인으로 유명한 명계남씨는 매주 토요일 저녁 8시부터 두 시간 동안 ‘명계남의 미디어 살리기’를 통해 본격적인 미디어비평가로 변신한다.
‘노무현 라디오’를 통해 많은 팬들을 확보한 개그맨 노정렬씨는 이유니씨와 함께 ‘시사개구(開口)’라는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같은 서울대 출신 선후배로 ‘메인스트림(?)’이기를 거부한 두 사람은 주로 ‘서울대 제일주의’를 깨는데 앞장 설 예정.
이 외에도 <라디오21>에서 주목받는 진행자는 지난 2000년 9월 파격적인 ‘커밍아웃’을 선언하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연예계를 떠나야 했던 홍석천씨. 홍씨는 자신과 같은 입장의 사람들이 더 이상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라디오21>을 통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겠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후 4시10분 이민정씨와 함께 진행하는 홍씨의 라디오 프로그램 명칭도 ‘홍석천 이민정의 커밍아웃’이다.
커밍아웃에는 또 민중가요 5인조 혼성그룹으로 잘 알려진 ‘ZEN’(www.zennara. com) 멤버들도 참가한다. 이 프로그램에서 그룹 ZEN의 역할은 다양하다. 연일 집회와 시위현장을 누비는 이들은 때로는 게스트로 프로그램 진행에 함께 하고, 때로는 ‘시민리포터’로 집회 현장의 장면들을 생생하게 전달하기도 한다(박스기사 참조).
<라디오21>이 ‘언론개혁’을 외치고 나선만큼, 차별화된 뉴스프로그램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법. <라디오21>은 매일 오전 9시 이선영씨가 진행하는 ‘뉴스&커피’를 시작으로 색다르고 빠른 뉴스를 전달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매일 오후 1시에 진행되는 정치평론 뉴스쇼 ‘뉴스21’, <라디오21> 대표를 맡고 있는 김갑수씨가 전하는 ‘뉴스플러스’(매주 월∼금 밤10시)를 통해 지상파 라디오의 뉴스프로그램과 경쟁하게 된다.
특히 이들 뉴스 프로그램들은 <라디오21>이 자체적으로 모집한 국내외 리포터들이 시민리포터로 활약하고, <오마이뉴스>와의 제휴를 통해 2만이 넘는 뉴스게릴라, 상근기자들이 현장의 생생함을 목소리로 전달한다. <라디오21>의 뉴스 프로그램들은 향후 <오마이뉴스>에서도 들을 수 있다.

시민리포터, 국내외 생생한 목소리 전달

운영방식도 독특하다. <라디오21> 김갑수 대표는 “철저하게 열린 의사소통을 통해 민주적인 방송국으로 모범을 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까지 뽑은 PD와 구성작가 등 20여명에 달하는 전 직원들을 모두 ‘정규직화’한 것은 그 첫 발인 셈.
그러나 아직은 재정구조가 취약하다. 새로운 대안언론을 표방하고 나선 인터넷 라디오방송국 <라디오21>의 지속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청취자들의 끊임없는 사랑과 자발적인 ‘청취료 납부’에 달려 있다. ◑

● 인터뷰/<라디오21>로 돌아오는 연예인 홍석천씨
“세상의 차별 터놓고 말할 것… 가게 오픈한 것처럼 기쁘다”

갑수씨가 전화했을 때, 그저 고맙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죠. 물론 이전에 <라디오21>이 뭔지, 뭐하는 곳인지도 전혀 몰랐지만…, 프로그램을 같이 하자는 말에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대하빌딩 <라디오21> 사무실에서 만난 홍석천씨는 오랜만에 밝게 웃는 듯 했다. 지난 2000년 9월, 연예인으로서는 파격적인 ‘커밍아웃’을 한 뒤로 받았을 고통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정도. 자의반 타의반 연예계를 떠났던 그에게 팬들 앞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된 일은 그야말로 ‘꿈에도 그리던 일’이 아니었을까.
“지금 심경요? 너무 반가워서 표현할 수 있나요…. 마치 예전에 내 가게를 오픈 할 때처럼 기쁜 마음입니다.”
21일 오전 9시 개국한 <라디오21>의 프로그램 진행자로, 홍씨는 잠시 접었던 꿈을 다시 펼 수 있게 됐다. <라디오21>에서 그가 맡은 프로그램은 ‘커밍아웃’. 세상 사람들은 곱지 않게 쳐다보는 단어지만, 그에게는 인생을 바꾸도록 만든 중요한 단어다.
“커밍아웃 이후에, 커밍아웃 하지 않았다면 절대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을 만나게 됐죠. 그들은 나를 ‘깨 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상당히 머리가 아팠지만 이들로 인해 언제나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철저하게 사회적 약자, 소외계층, 성적 소수자들이 주인공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누구나 차별을 받고 있습니다. 심지어 부자나 권력자들도 차별을 받죠. 그러나 정작 자신들은 그것이 ‘차별’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인정하기 싫을지도 모르죠. 제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세상의 많은 것들이 차별이라는 것을 솔직히 털어놓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
그러나 이렇게 ‘돌아오는 길’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홍씨의 말을 빌리자면 ‘커밍아웃 문제가 잠수할 때까지’ 조용히 지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나 하나 바보가 돼서 다른 이들에게 또 하나의 지식을 준다면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했죠.”
홍씨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이유는 또 한가지가 있다. 20대 초반의 젊은이들로 구성된 민중가요 그룹 ‘ZEN’이 함께 사회적 약자들의 말들을 전하는 것. 홍씨는 이 때문에 가슴이 뛴단다.
그룹 ZEN은 지난 99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5인조 혼성 민중가요 그룹. 편우혁, 이남가, 김민선, 이혜영, 김동환 등 5명은 앞으로 매일 홍씨와 호흡을 맞추며 노동자들의 알려지지 못한 목소리들을 전한다. 때로는 게스트, 때로는 리포터가 이들에게 맡겨진 일이다.
“늘 배우는 자세로 방송을 한 번 해보려고 해요. 우리가 알고 있지만 잘 알려지지 못한 노동자들의 이야기도 하고, 성적 소수자나 장애우 문제 등 미처 몰랐던 부분은 공부도 해가면서 말할 거예요.”
김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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